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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챗지피티(ChatGPT) 시대의 예술, 인간을 다시 마주하기

보이지 않는 노동에 관한 예술

2023.02.27 | 조회 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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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관점을 나눕니다.

TIME 기사에서 사용한 오픈에이아이(OpenAI)의 달리(DALL-E-2)가 생산한 이미지 [출처: 웹페이지 갈무리]
TIME 기사에서 사용한 오픈에이아이(OpenAI)의 달리(DALL-E-2)가 생산한 이미지 [출처: 웹페이지 갈무리]

  2023년 1월 18일 타임지의 단독 기사 <OpenAI Used Kenyan Workers on Less Than $2 Per Hour to Make ChatGPT Less Toxic>는 국내의 여러 지면에도 인공지능 챗봇의 열풍과 그 이면을 소개하며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챗지피티(ChatGPT)의 윤리성 강화를 위해 시간당 2달러도 안되는 돈으로 아동 성학대⋅자해⋅폭력⋅증오⋅편견 등 혐오 및 차별 단어를 레이블링 해야하는 케냐 사람들의 인권에 관한 리포트였다.[1] 

  이 기사의 첫 이미지는 오픈에이아이(OpenAI) 사가 개발한 그림 인공지능 달리(DALL-E-2)가 생성한 것인데, 타임지에 따르면 “많은 흑인 노동자들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인쇄 스타일로 표현해달라(The endless images of African workers sitting at the desk in front of the computer screen in a print style)”는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한 후 얻어낸 것이다. “윤리적인” 인공지능이라는 첨단 테크놀로지 이면에 놓인 인간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는 모순을 보여주는 예시다. 

  실리콘 밸리나 케냐가 아닌 국내의 사정은 어떠할까. 챗봇 ‘이루다’가 알고보니 동의 없이 가져온 수만개의 연인 대화 샘플로 딥러닝했던 사실이나 미술을 전공하는 남자 대학생 컨셉의 챗봇 ‘강다온’이 “카메라 설치해뒀어요”라는 데이트 범죄를 연상케하는 발언을 했던 것 등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2] 이처럼 인공지능의 장밋빛 미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Claire S. Copley Gallery>, Los Angeles, California, USA, September 21–October 12, 1974 [출처: https://michaelasherfoundation.org/]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 <Claire S. Copley Gallery>, Los Angeles, California, USA, September 21–October 12, 1974 [출처: https://michaelasherfoundation.org/]

   미술의 역사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에 관한 현실을 드러내고자 한 노력은 제도비판 예술에서 엿볼 수 있다.[3] 이 예술에서는 완전무결한 ‘화이트큐브’의 속성을 걷어내고자 하였고, 예술작품을 조명하는 것 대신에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 이를테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을 전시장 건축물 그 자체라든가 작품을 판매하거나 큐레이팅하는 인력 시스템, 전시장을 관리하고 청소하는 행위 등 미술세계 유지를 위한 모든 형태의 노동을 드러내고자 했다.

미얼 래더먼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1939-)가 미술관 안과 밖을 8시간 동안 닦는 퍼포먼스 <유지관리 예술(Maintenance Art)>(1973)라든가 마이클 애셔(Michael Asher)가 텅빈 갤러리를 전시한 <클레어 코플리 갤러리(Claire St. Copley Gallery>(1974) 작업은 그러한 예일 것이다. 예술의 세계를 지탱하는, 그러나 저평가되고 은폐된 노동의 존재를 잘 보여주는 작업들이다.

 

조영주 <노란 벤자민과의 동거>, 라이브 퍼포먼스, 경기도미술관, 2022 [출처: 필자 촬영]
조영주 <노란 벤자민과의 동거>, 라이브 퍼포먼스, 경기도미술관, 2022 [출처: 필자 촬영]

  그렇다면 21세기 한국으로 눈을 돌려보자. 인공지능 챗봇을 기능케하기 위한 케냐인들의 노동이나 미술관 청소가 ‘고스트워크(ghost work)’라면 한국사회에서 ‘그림자 노동(shadow work)’으로서 ‘돌봄 노동’을 들 수 있다.[4] 저평가된 이 노동의 형태는 우리 사회에서 ‘맘충’이나 ‘노키즈존’으로 대표되는 육아와 연결되거나 사랑이나 효도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한편 가장 취약한 계층의 노동을 착취하면서 재생산됐다. 

  조영주 작가는 자신의 육아 경험를 기반으로 돌봄 이슈에 주목하고 관객과 교감하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퍼포먼스 작업 <인간은 버섯처럼 솟아나지 않는다(Human beings don't spring up like mushrooms)>(2021)에서는 앞을 보지 못하거나 다리 혹은 손을 편히 쓸 수 없는 등 불완전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4인의 퍼포머가 등장한다. 이들은 자기본위와 이타적 행위가 넘나드는 가운데 하나의 임무를 다같이 위태롭게 수행해나간다. 이 라이브 퍼포먼스는 돌봄이 지닌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각자의 생존을 위해 앞다투어 나아가는 참혹한 현실 또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한편 <노란 벤자민과의 동거>(2022)에서는 돌봄의 주체인 관객이 퍼포머에 의해 일정 시간 동안 케어를 받는 상황이 연출된다. 관객은 일시적으로 돌봄의 대상이 됨과 동시에 퍼포머와 함께 퍼포먼스의 주체가 된다.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주고받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 흥미로운 이 작업은 퍼포머와 관객의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신체성은 돌봄 및 통제의 경계 지점이 지닌 아이러니를 통해 돌봄의 의미와 가치를 환기한다.

 

Joseph Racknitz, Image of Kempelen's
Joseph Racknitz, Image of Kempelen's "The Turk", 1789 (소장: Humboldt University Library)

  1770년부터 80년 이상 유럽 전역을 돌던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는 기계가 사람과 체스 대결을 한다는 아이디어로 당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오토마타(자동기계) 안에 사람이 숨어서 기계 대신 체스를 두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챗지피티의 열풍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다시금 환기 시킨다. 인공지능 속에 내재 된 속성들이 드러내는 너무나 "인간적" 이고도 지나치게 “매끄러운” 환상 앞에 오히려 실제 사회 시스템 속에 자리한 부조리한 노동에 대해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1) BILLY PERRIGO, OpenAI Used Kenyan Workers on Less Than $2 Per Hour to Make ChatGPT Less Toxic (TIME, 2023년 1월 18일자 기사)

2) 조경숙(테크-페미 활동가) <"카메라 설치해뒀어요" 챗봇 윤리, 누가 만드나>, 시사IN vol.806(2023.2.28)

3) 미술평론가 안진국은 인터넷-디지털 기술의 은폐성을 제도비판 예술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안진국 『불타는 유토피아 - ‘테크네의 귀환’ 이후 사회와 현대 미술』, 갈무리 , 2020, pp.106-110.

4) ‘고스트 워크’는 현대 기술시스템에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불분명한 고용 분야를 일컫는 한편, ‘그림자 노동’은 공식 임금노동 체제에서 소외된 무급급의 가사⋅재생산 노동을 지칭한다. 이는 주로 ‘집안 여성’혹은 ‘주부’의 일이자 ‘일하는 남성’을 위해 조력하는 무상(무보수)의 일로 취급되었다. 플랫폼은 그림자 노동을 인력시장의 공식 경제 영역으로 편입한다. 이광석, 『디지털 폭식사회』, 인물과사상사, 2022, p.82.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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