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너머의 예술들 Art beyond the Table

음식은 어떻게 예술 실천이 되는가

2022.11.02 | 조회 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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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ICK

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 식탁 위 연어가 붉은 빛을 띠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자연산 연어가 붉은 색을 갖는 것은 그 먹이가 되는 크릴새우 때문이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양식연어는 일부러 합성색소가 들어간 사료를 먹여서 붉은 색이 나도록 한 것이다. 이 밖에도 양식단지에서 배출되는 배설물과 기생충으로 인하여 주변 바다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다. ‘바다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야기시키는 양식연어를 계속 먹어야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2021년부터 영국 전역의 일부 박물관과 연계된 음식점과 카페에서는 연어 대신에 해조류나 조개류를 곁들인 요리로 점차 대체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구심점에는 예술가 콜렉티브 ‘쿠킹 섹션즈(Cooking Sections)’의 예술활동이 존재한다. 

쿠킹 섹션스의 클리마보어 프로젝트 웹사이트 갈무리(https://becoming.climavore.org) ©Cooking Sections
쿠킹 섹션스의 클리마보어 프로젝트 웹사이트 갈무리(https://becoming.climavore.org) ©Cooking Sections

 

비커밍 클리마보어(Becoming Climavore), 연어 대신에 굴을!

다니엘 페르난데스 파스콸(Daniel Fernández Pascual)과 알론 슈와베(Alon Schwabe)에 의해 2013년 결성된 이 콜렉티브는 런던을 기반으로 예술, 건축, 생태 및 지정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단체, 기관과 폭넓게 교류하며 협업한다. 이들은 특정 장소를 반영한 건축적 설치물, 비디오, 퍼포먼스 등의 작업을 통해 먹거리 체계 안에서 생산과 소비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해오고 있다. 특히 ‘기후식’이라 불리우는 ‘클라디모어’ 개념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식단에 관한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1]

2021년 영국의 권위있는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의 4개 후보 중 한팀으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2019), 퍼포마17(2017)을 비롯해 영국의 테이트 브리튼, 서펀타인 갤러리 등에서 열린 여러 국제적 규모의 전시에 참여했다. 그리고 올해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We, on the Rising Wave)>에 렉처 퍼포먼스를 통해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들은 스코틀랜드의 연어 양식장으로 파괴된 주변 환경에 주목하고 이들로 인한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피해 등을 관찰하며 ‘비커밍 클리마보어(Becoming Climavore)’ 등의 예술 프로젝트로 지속 가능한 식단을 제안한다. 대표적인 작업사례로는 2016년 스코클랜트 스카이 섬의 조간대 지역에 설치된 ‘굴 식탁이 있다. 이 설치물은 밀물 시에는 조개류와 해조의 서식지가 되고, 썰물 시에는 식탁 속 해산물들을 식재료로 활용한 식사를 하는 장소가 되었다. 홍조류 수프와 해초 스콘 등 가벼운 다과를 곁들인 식사가 이 곳에서 공개 워크숍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한편 지역의 어부, 정치인, 주민과 과학자들이 모여서 대안적인 양식업에 대해 논의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양식 연어 대신에 굴을 이용한 요리를 클리마보어 메뉴로 적극 소개한다. 굴은 하루 최대 150리터의 물을 여과할 수 있고 해수에 산소를 공급하는 생태계에 유익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클리마보어 메뉴에서 나온 굴과 홍합의 껍데기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그것들을 건설 자재로 순환한다면 시멘트 사용량을 줄여 건설 산업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현재 그들은 패각 폐기물을 수집하여 건축 및 인테리어 자재 등을 개발하기 위해 현지 전문가들과 협업 중에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https://becoming.climavore.org/에서 확인해보라.) 

해조류 양식자 Rory MacPhee와 간조 시간에 맞춰 진행한 퍼블릭 워크숍 ©Colin Hattersley
해조류 양식자 Rory MacPhee와 간조 시간에 맞춰 진행한 퍼블릭 워크숍 ©Colin Hattersley

 

식재료 생산방식과 식경험의 지속 가능성, 섞어라!

지속 가능한 식단은 생산방식과 소비경험에 의해 만들어진다.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까’와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소비할까)’가 함께 고민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쿠킹 섹션즈가 현지에 굴식탁을 만드는 예술활동을 통해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는 실천적인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충북 괴산의 젊은 농부와 네덜란드의 디자이너는 자신들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요소들을 결합하여 식재료 생산방식과 식경험의 지속 가능성을 탐구한다. 

충북 괴산에서 농부의 가치와 철학을 고민하는 뭐하농(이지현 대표)은 ‘팜가든(Farm-Garden)’을 통해 생태적인 농업에 관한 실험을 지속한다. 농업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생산성을 지키기 위해서 한가지 품종만을 키우는 방식으로 발전되어왔다. 이것이 오늘날 병충해가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이를 막기위해 지나친 농약살포가 시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팜가든에서는 ‘동반작물’이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토마토와 바질을 한 공간에 키우면 토마토의 향이 훨씬 진해지고 당도가 올라간다, 바질 역시 향이 진해지는데 토마토를 공격하는 벌레들이 이 바질 향으로 인해 기피하게 된다. 또한 물을 잘 먹는 바질은  토마토가 과배습되는 위험으로부터 물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같이 심어져 있으면 서로 화학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동반작물’을 통해 지속가능한 작물의 생산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생태적인 관점 뿐만아니라 각기 다른 작물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볼륨으로 인한 경관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관한 논의까지도 포괄한다.[2]

뭐하농의 팜가든 취지와 의미 ©뭐하농
뭐하농의 팜가든 취지와 의미 ©뭐하농

 

한편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팅 디자이너eating designer)’ 마레이에 보헬장(Marije Vogelzang)은 기발한 상상력으로 음식의 미래를 그려보고 있다. 고기가 자라는 식물을 상상해서 만든 오브제 시리즈 ‘플랜트본(Plant Bone)’은 대체육고기에 관한 이슈를 하이브리드 모형으로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섬유소로만 만들어진 고기가 뼈에서 식물처럼 자란다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제작된 혼종적 형태를 통해 음식의 지속가능성을 타진해본다. 

‘가짜 고기(Faked Meat)’ 작업은 식물성 단백질을 원료로 한 대체육에 스토리텔링과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예를 들면 가상의 동물 ‘폰티’는 화산 근처에 살아 훈제 냄새가 나고, 허브와 같은 약초를 몸에 발라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때문에 허브 냄새가 난다. 또한 꼬리를 이용하면 핑거푸드 형태로 보다 쉽게 식재료를 소비할 수 있다는 설명하기까지 덧붙인다. 이처럼 가상의 동물을 설정하고 대체육에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보헬장은 대체육을 조명하고 먹는 행위에 즐거움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3]

‘플랜트본(Plant Bone)’ 시리즈  ©Marije Vogelzang
‘플랜트본(Plant Bone)’ 시리즈  ©Marije Vogelzang
‘가짜 고기(Faked Meat)’ 시리즈 중 ‘폰티(Ponti) 고기’ ©Marije Vogelzang
‘가짜 고기(Faked Meat)’ 시리즈 중 ‘폰티(Ponti) 고기’ ©Marije Vogelzang

 

적대적인 관계를 매개하는 예술실천, 음식 나누기

식재료의 생산과 식경험에 있어서 상생과 지속 가능성을 탐구하는 활동들은 살펴보았다면, 이제 사회적 부조리와 개인 차원의 갈등 한복판에서 음식이 일종의 매개 역할을 하는 예술작업을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고자 한다.  

믹스라이스는 2005년 이주노동조합장 강제추방에 관한 시위 현장에서 팬케이크를 나눠주는 예술활동을  진행하였다. <핫케익(Hotcake)>라고 명명된 이 작업에서 그들은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강제추방을 반대하는 움직임에 개입하여 시위대와 서울출입국관리소 조사과 직원에게 팬케이크를 전달하였다. ‘강제추방반대’, ‘stop crackdown!’라는 문구를 넣어서 말이다.

믹스라이스의 달콤한 핫케익을 드립니다. 100% 오뚜기표 핫케익가루와 100% 서울우유로 만든 핫케익입니다. 간식으로 맛있게 드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믹스라이스 드림.[4]

믹스라이스, <핫케익(Hotcake)>, 2005 ©mixrice.org
믹스라이스, <핫케익(Hotcake)>, 2005 ©mixrice.org

 

그들의 메시지는 명확했지만 식사를 나누는 우호적인 몸짓으로 전달되었다. 같은 음식을 나누는 행위를 통해 ‘이주노동자-출입국관리소’라는 적대적인 관계가 일시적으로 매개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사회-문화인류학자 해리 웨스트(Harry G. West)에 따르면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같은 사회적 몸통의 일부라면,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같은 사회적 몸통을 공유하지 못한다”. 특정 음식 섭취의 유무는 “사회적 자아와 타자 사이의 차이를 만드는 것에 있어 강력한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믹스라이스가 팬케이크를 나누었던 현장에서는 사회적 구조 내의 두 주체의 적대적인 관계가 극명하게 드러났지만, 팬케이크라는 음식을 같이 나누며 일시적이나마 같은 사회적 몸통을 공유하는 순간을 마주한 것은 아닐까.[5]

 

지금까지 논의된 예술활동은 음식을 기반으로 한 실천적 행위들로서 보다 흥미로운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과 상생의 가능성을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기에 앞서 쿠킹 섹션즈가 ‘클리마보어’ 실천을 위해 전한 몇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6] 

  • 양식 생선을 다시마, 김, 덜스(Dulse, 홍조식물의 일종)와 같은 밧줄로 기른 해조류로 대체한다. 이런 해조류는 해수에 산소를 공급한다. 또한, 밧줄로 기른 홍합이나 양식 굴을 먹는 것도 좋다.
  • 화학 물질이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현지에서 재배한 콩을 먹는다. 이는 질소와 기타 화합물을 토양에 붙잡아 놓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농부들은 땅의 비옥도를 향상하기 위해 콩을 함께 재배하거나 교대로 재배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농약과 변형 종자가 도입되기 전에 사용했던 방식)
  • 마트에서 판매하는 맛이 없는 표준 품종 대신 지역의 특정 조건에 적응하고 진화하면서 재배된 사과나 배를 선택한다.
  • 쇠고기 산업에 필요한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많은 땅이 필요하다. 실제 전 세계 콩 작물의 85%가 동물 사료로 사용된다. 그 단백질은 동물에게 먹이는 대신 스스로 직접적으로 섭취한다면 단순히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사용되는 토지 활용을 줄일 수 있다.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1] ‘클리마보어(Climavore)’란 기후를 뜻하는 영단어 ‘Climate’과 ‘~식 동물’을 뜻하는 ‘vore’ 접미사로 만들어진 단어이다. 육식이나 채식이 아닌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기후식’으로 나아가는 식단과 식품의 소비를 칭한다.

[2] 지난 8월 20일에 개최된 PUBLIC PUBLIC의 관객 참여 프로그램 <메타 조각공원을 위한 소멸지역피칭데이>에서 강연자로 발표한 내용이다. 

[3] 더 많은 흥미로운 작업 사례와 설명은 보헬장의 웹사이트 혹은 ‘가짜 고기’에 관한 소개 영상에서 참고하도록,  

[4] 믹스라이스 공식 웹사이트에서 작성된 표현을 인용하였다. 더 자세한 내용은 믹스라이스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것.

[5] Harry G. West, ‘We are who we eat with: Food, distinction, and commensality’, Politics of Food (eds. Aaron Cezar, Dani Burrows), Delfina Foundation, 2019, p.137.

[6] 정다람 기자,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여 식품을 선택하는 ‘클리마보어(Climavore)’ : 기후변화가 걱정되지만 채식은 어려운 당신에게, 비커밍 클리마보어’ (플래닛 타임즈, 2022. 7. 21) http://www.planet-times.com/2220


PP 구성원 일동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와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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