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도시를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을 생각한다면 높은 빌딩과 대로가 어울러진 전형적 대도시의 이미지와 함께 듬성듬성 솟아있는 산봉우리, 그 사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는 아파트 단지와 같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반면에 일산을 생각한다면, 정원주택과 빌라가 비교적 많고, 일산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호수공원이 떠오를 것이다. 이렇게 각 도시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이미지와 전반적인 인상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정체성, 영어로는 identity의 어원은 라틴어identitas, identicus이며 idem 즉 동일하다는 뜻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체성은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배타적 공유성과 다른 비슷한 것과 통합되는 상관적 공유성을 모두 포괄한다. 정체성의 개념은 크게 두 가지 측면, 즉 동일성(sameness)과 개별성(individuality, oneness)이다. 도시정체성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그 도시의 자기다움, 즉 도시 내적 시각에서는 도시 의 ‘동일성’, 그리고 도시 외적 시각에서는 도시의 ‘개별성’내지 ‘차별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시 정체성은 도시의 역사, 문화, 사회경제적 특성 등으로 형성되며, 도시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인자가 된다.
그렇다면 도시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먼저 이를 형성하는 요인은 크게 자연환경, 인공환경, 문화환경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예를들어, 로마와 아테네와 같이 고대 건물이 잘 보존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와 연관된 산업과 문화가 발달된 도시는 역사와 같은 문화환경적 요소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와 같이 특정 지형이 도시의 전반적인 인상을 결정한 도시들은 자연환경적 요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거리의 배치, 건축물, 도시의 밀도와 같은 물리적 형태는 인공적 환경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넓은 대로, 탁 트인 광장, 웅장한 기념물과, 좁은 거리, 높은 건물과 같은 요소는 한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결정 짓기도 하지만, 그 도시의 사람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방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좁은 거리는 이웃 간에 친밀한 대화를 장려하고, 가깝게 관계맺음을 장려할 수 있는 반면, 광장과 같이 넓고 트인 공간은 더욱 공개적이고 다양한 주체가 모여 교류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할 수 있다. 이토록 특정 환경가운데 발달된 문화와 분위기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하나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한 도시의 정체성은 사실상 간략하게 가시화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요인이 아닌, 다양한 유무형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작은 규모에서 형성되는 도시 정체성
위에 나열한 도시의 역사, 지리적 특성, 물리적 환경과 같은 큰 요소들에 가리워져 잊지말아야 할 것은 사실 상 도시 정체성 개발은 종종 비교적 작은 규모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도시의 현대화가 진행되고, 본래의 역사적 특성이 희미해지며 점점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요소는 도시의 개발정책으로 인해 고유한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의 이웃이다. 예를 들어, 도시정책에 의해 형성된 특정 산업단지에 거주하는 이웃과 재개발로 인해 새롭게 건설된 신도시에 거주하는 이웃은 다양한 이유로 여타 지역과 확연히 구분되는 정체성을 공유할 것이다. 그들은 종종 정체성 형성을 위한 즉각적인 기준점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도시의 사람들은 그 도시에서 살고 일하고 소통하며, 그것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쉬운 방법이다. 여기에서는 단순히 이웃 간의 차이가 더 좁고, 많은 경우 이웃 주민들이 직접 추진한다는 사실로 인해 도시 개발이 사람들의 요구에 더 쉽게 도달하고 진행될 수 있다.
각 지역마다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예를 들어 커다란 평상에 고추를 가지런히 널어놓고 햇볕에 말리는 풍경은 도시 중심가 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인구밀집도가 높고 지하주차장이 없는 주택가 에서는 길거리에 외부인의 주차를 막아 놓기위해 주차금지 표지판이나 의자 같은 오브젝트를 갖다 놓는것을 흔히 볼 수 있는 반면에 비교적 공간이 여유로운 시골이나 지하주차장이 있고 외부인 출입이 어려운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 사진작가 Jan Dirk van der Burg(얀 디얼크 반 덜 벌그)의 “Typical Dutch(전형적 네덜란드식)”은 3년에 걸쳐 네덜란드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풍경들을 담아낸 사진작업이다. 길거리 쓰레기통, 정육점 간판, 집집마다 있는 장식품과 정원과 동네공원길, 등등과 같이 네덜란드 사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고 일상 속에서 한번 쯤 스쳐 지났을 법한 것들이다. 너무나 사소하고 일상적인 풍경이라 어쩌면 그 누구도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로 인식조차 하지 못 했을 법한, 개인과 공공의 구분이 모호한 영역을 사진으로 도큐멘팅하고 수집하여, 누구나가 알아보고 공감할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집 앞 골목에 놓은 오브제, 집 앞마당에 설치한 장식품, 식물화분, 작은 텃밭과 같은 것들은 어느 한 동네의 커뮤니티, 혹은 개인이 작은 규모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투영한 결과물이며, 그것이 곧 의도하지 않은 채 도시 정체성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곳에 생활하고 속한 사람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특징적 요소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종종 외부인에 의해 더 쉽게 발견된다.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우리가 건물을 형성하고, 그 후로 건물들이 우리를 형성한다" 윈스톤 처칠이 1943년 10월 28일 상원 회의 연설에서 1941년 5월 폭격으로 파괴된 하원을 이전과 동일하게 재건할 것을 요청하면서 한 말이다. 우리는 직접 살아갈 환경을 선택하고 그 공간을 각각의 편의와 취향에 맞춰 가꾸어 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일 마주하는 그 공간이 제공하는 환경에 적합한 생활방식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결국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고 마주하는 도시는 단순한 물리적 의미의 장소가 아닌 우리의 정체성이 투영되고 삶이 묻어나는 경험과 기억의 공간이고, 도시 정체성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지만, 그것은 항상 다른 어떤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도시에 대한 우리의 경험의 바로 그 기초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박다애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퍼블릭아트 리서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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