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생명이 터져나온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맞이하는 봄은, 팬데믹으로 모든 일상이 멈춘 3년전의 봄과 더욱 대비되며 그 환희가 더욱 증폭이 되는 듯하다. 봉오리가 터지는 듯 하더니 갑자기 만개한 봄꽃이 모두의 마음에 축제 같은 시간을 선사한 4월의 첫 주말이었다. 유독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던 지난 3년, 집에 갇혀버린 인간은 아주 오래 자연을 그리고 여행이 가능했던 장소를 그리워했다. 단절과 공백은 역설적으로 더욱 본질적인 가치를 향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오늘날의 동시대 현대인들은 자신의 생기를 바닥까지 휘발시키며 생존한다. 자연에서 뿌리째 뽑혀 나와 콘크리트 숲에 부유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이 스스로 회복을 위해 의탁할 곳은 오직 자연 뿐이다.
‘정원’과 ‘텃밭’으로 대표되는 생활공간으로 들어온 자연은 인간이 자연과 맺을 수 있는 관계의 가장 친근한 메타포다. 수많은 노래에서 평화가 머무는 안식처는 종종 ‘언덕 위의 작은 집’, ‘옥상 텃밭이 있는 집’, ‘작은 정원이 있는 집’ 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신만의 작은 정원을 열망하는지 보여준다. 특히, 정원은 인간이 도시속에서는 잃어버린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우는 장소이자 잠시 멈추고 사유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공간이다. 어떤 노학자는 은퇴 후 정원을 가꾸며 생명을 매일 매만지는 일이 너무나 경이롭고 설렌다고 했다. 떨림이 없는 삶은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젊은이들이 사회에서 마모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1] 자연의 변화 속에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존재적 권리이자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이 아닌가.
언제나 늘 그래왔듯 생명을 돌보는 일은 인간의 영혼에 이롭다. 땅을 가꿀 때는 세상을 향한 돌봄의 태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에서는 돌봄의 자세가 그다지 권장되지 않는다. ‘수선’보다 ‘교체'를 우선시하는 문화는 파편화한 사회망과 도시 생활의 빠른 속도와 결합했고, 돌봄을 폄하하는 가치체계를 세웠다. [2] 나를 잠시 내려놓고 타자를 돌보고 키워내는 일은 무한경쟁구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칫, 무능함으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타자에 대한 돌봄이 우리의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실천이며 공동체를 위한 예술이 가져야할 태도 역시 타자에 대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일테다.
정원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정원은 인간의 마음을 닮았다. 상처난 인간이 회복되는데에는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이러한 시간성을 공유하는 정원과 인간은 서로를 돌보며 치유와 재창조가 일어난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정원에서 일하고 나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감각한다고 한다. 그는 정원의 시간을 '타자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정원은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저만의 시간을 가지며, 수많은 저마다의 시간들이 교차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비로소 정원에서 타인을 위한 걱정, 염려라는 것을 천천히 배워나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정원에서 일하는 것은 '존재'와 '시간'을 주면서 불확실한 기다림, 참을성, 느린 성장이 곧 특별한 시간 감각을 불러온다고 한다.[3]
여기에 정원사의 마음으로 돌보는 작가 김이박의 <이사하는 정원>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이사를 자주 다니던 자신의 모습을 화분 속 식물에 투영하며 동병상련을 느낀 작가는 식물의 언어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병든 식물을 위탁 받아 건강하게 만들어 돌려주는 일종의 ‘식물 요양소’를 운영한다. 이 때 참여자들의 사연도 수집하는데, 그 이유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생활 방식, 심리 문제와 식물의 상태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병든 식물은 병든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 병든 식물의 모습을 드로잉으로 남기고 식물과 집사의 관계를 진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식물을 돌보지 못했던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채집하며 식물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도 생기를 불어넣는다.[4] 살아있는 식물을 키우는 일에는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적당한 시간에 맞춰 빛과 물을 주고 바람을 넣어주며, 때가 되면 흙을 갈아주면서 한 생명의 성장을 돕는 일이다. 김이박 작가는 식물은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지만, 무늬와 색과,형태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우리를 지켜봐주고 있다고 한다.[5] 어쩌면 관계 맺는 일은 끊임없이 타자를 지켜보며 귀기울이는 일이다.
이주와 난민의 삶을 들여다보는 믹스라이스(현,이끼바위 쿠르르)가 진행한 〈믹스 프룻Mix fruit〉 (2016-2018)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네덜란드 아른헴 도심 곳곳에 존재하는 텃밭은 이주민들의 여가를 위해 시작되었다. 작가가 마련한 워크샵에 참여한 이주민들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모국의 식물을 점토로 빚어 물질적 형태로 구현하면서 고향의 맛과 시간, 공간, 사람들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고향의 식물이나 과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상의 즐거움이 되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본래 그들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들은 떠나온 사람들 사이에 오늘의 서로를 치유한다. 짧은 시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이주의 상황과 배경을 묻는다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지만, 점토를 만지면서 꺼내는 과거의 상처는 또 다른 맥락에서 관계가 생겨난다. 작가는 대화가 촉발되는 자리를 마련하고 그들이 나누는 사연들을 함께 들으며 돌본다. 공동체가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온 작가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그 시간이 축적되고 전해지는 것, 시간을 공유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6]
정원 한가운데 세워진 갤러리가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하여 전세계 미술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하우저앤 워스(Hauser and Wirth). 현대 미술 작품과 건축 및 자연 풍경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명소로 알려져 있다. 오너인 이반(Iwan Wirth)와 마누엘라(Manuela Wirth)커플은 영국 런던 남서부 서머셋의 농장과 18세기 건축물을 사들여 자연과 예술, 농장과 호텔이 어우러진 대규모 전원 갤러리 '하우저앤워스 서머셋'을 2014년 개관했다. 당시 문화재로 등재되어있던 건물에 5개의 갤러리와 교육시설, 레스토랑, 호텔, 작가 레지던스, 북숍을 만들어 하나의 아트 커뮤니티를 구성해냈다. 흥미로운 점은 갤러리 내에 지속가능한 환경을 고려할 전문가를 채용하여 탄소배출, 환경보존, 기후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이다. 갤러리 건물 뒤에는 세계적인 네덜란드의 조경 디자이너 피에트 우돌프(Piet Oudolf) 가 만든 야외 정원과 조각 전시를 함께 선보인다. 조경 디자이너는 대지를 캔버스 삼았고 수많은 화초를 자신의 표현의 도구로 삼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생동하는 자연 그 자체로서의 예술작품을 구현해냈다.[7]
도심에서 떨어져있어 접근성이 나쁘다는 우려와 달리 2019년까지 65만명의 관객이 찾았고 주변 시민들이며 학생,노인, 일반인들도 입장료 없이 방문하도록 했다. 상업 갤러리 임에도 공공성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 곳의 특징이다. 지역 주민, 예술가, 큐레이터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공 프로그램과 레지던시를 제공하는 다목적 예술센터를 운영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민을 고용했다. 예술을 통해 교육, 환경보호, 지역 커뮤니티와의 협업까지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식의 아트 커뮤니티로 확장시키며 사회사업의 형태로 나아간 갤러리다. 갤러리가 시장 너머의 사회와 공동체의 영역을 사유하는 제스처가 수많은 기관에 영감을 주었고 향후 의뢰 받은 프로젝트를 통해 장소와 역사성을 재맥락화하는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으며 민간과 공공영역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라는 것, 가능한 최고의 나를 성취하라는 것이 이 사회의 명령이고 그 전차에 탑승하여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는 아직도 잠재된 어떤 가능성에 기대고 싶어한다. 하지만, 팬데믹을 통해 더이상 과거와 방법으로는 성장이 불가능함을 경험적으로 배웠다. 하지만 한 사회에 뿌리깊이 농익은 관습은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창조적인 존재를 잡아앉히기 쉽다. 생명의 에너지는 흐르고 돌보고 또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지 막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가까운 정원을 거니며 사유하고 배워야 한다. 소란스럽지 않게 존재하는 그대로 지켜보고 인내하며 존재의 결을 따라 흐르도록 곁을 내어주는 섬세함이 요구되는 시간이다.
[1] KBS다큐인사이트 2022.12.29방송, “인생정원 - 일흔둘, 여백의 뜰” Youtube채널- KBS다큐
[2] 수 스튜어트 스미스, 고정아 옮김, 『정원의 쓸모』, 윌북, 2021, p78.
[3] 한병철,『땅의 예찬-정원으로의 여행』, 김영사, 2023,p.23.
[4] 김지연, 『보통의 감상』, 선드리프레스, 2020, pp.43-50.
[5] 프럼에이, <식물을 사이에 둔 우리들, 꿈꾸는 정원사>, 2020-12-01, https://froma.co/acticles/531
[6] 퍼블릭퍼블릭, PP TALK#1, <Document the undocumented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예술가 인터뷰-토크프로그램 세션 1, 조지은2022.10.01. 프로그램 중
[7] 자연주의 정원으로 유명하며, 뉴욕 하이라인 프로젝트로 유명세를 얻었고, 국내에도 울산 태화강 정원조성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oudolf.com
[8] 헤르만 헤세, 두행숙 옮김, 『헤르만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이레, 2001,p.17.
강은미 / PUBLIC PUBLIC 콘텐츠 디렉터
virginia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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