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의 교육 장소를 만들기 위해 오랜 항공기와 기차를 사버린 예술가가 있다. 아프리카 가나의 아티스트 이브라힘 마하마(Ibrahim Mahama). 그는 대학시절 부터 관심이 있었던 주제를 꾸준히 마을로 가져와 자신의 스튜디오, 공공조각, 예술교육 장소가 되기를 바라는 그의 말에 따르면, 완전히 버려지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을 어떻게든 재구성하면 새로운 공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1] 그가 진행해 온 일련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신념은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가나,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눈으로 보면, 오래된 식민시절의 기차, 혹은 소련의 항공기가 북부지역 척박한 마을에 옮겨놓는 일이 무슨 소용인가하는 생각이 들 수 도 있겠지만, 새로운 경험이 척박한 곳에서는 스펙터클을 구현하는 것이 전무후무한 전략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접근가능한 예술, 그리고 사회를 향한 예술, 이러한 문법은 언제까지 유효 할까.
공공 장소에 대한 개념은 제도와 사회의 요구에 의해 생성된다. 공간은 그들의 포용성, 접근성에 따라 공간의 형식과 구조, 컨텍스트에 따른다. 그러므로 공간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공간개념이 유동적이며 컨텍스트에 따라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는 희미하며 중층적이고, 또한 논쟁적이다. [2] 전통적으로 볼 때 공적 공간은 교회, 학교, 병원, 미술관, 도서관, 공원, 주민센터 정도가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사회가 점점 더 고도화 되면서, 공동체를 대변하는 공간은 실질적으로 축소되고, 오히려 어떤 공간에 분할 된 미학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감성의 공동체가 부유하는듯도 하다.
공공장소에 가능성을 개입시킬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수많은 대중이 오고가는 곳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서있을 물리적인 조각이 아니라, 사회의 의식, 대중이 공통감이라는 유대를 경험하고 사회 전체의 선순환을 위한 윤리와 미학을 설립하는 씨앗을 심을 수 있을까. 근대화를 거치면서 부상한 개인은 파편화된 내적 상태를 가지고 있다. 독일의 문화비평가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탐정소설에 등장하는 개인을 도시의 이름없는 군중 속에 길을 잃은 원자화된 모나드로 본다. 그들의 상호 관계는 정서와 신뢰를 벗어버렸고, 판에 박힌 일을 하며 그저 비밀유지와 편집증, 관음증의 아노미적 관계에 사로잡혀있다. 또한 크라카우어는 ‘호텔 로비’ 라는 장소를 통해 현대의 장소성을 비유적으로 드러냈다. 한 공간에 머물러 있어도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우리는 존재한다. [3] 그렇다면 우리는 같은 곳에 존재하면서 공동체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진행된 <169클뤼스하위즌Klusehuizen>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마약,불법점거등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당시 낙후 지역 활성화 정책으로 시 정부 로테르담 개발기구, 도시계획부서,시의회에 의해 추진 되었으나 관 주도의 프로젝트는 실효성이 없었다. 이에 두명의 프로젝트 매니저 이너커(Ineke Hulshof)와 프란스(Frans van Hulton)를 통해 이 이 블록이 활성화 되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이었던 것은 1유로라는 가격에, 건물에 대한 공동 소유권을 가지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건물 보수에 대한 법적 통제와 책임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집을 꾸미는 프로젝트였다. 대부분 건축, 디자이너 등 전문가그룹이 많았지만 보수를 위해서는 전문지식이 필요했기에 이너커와 프란스를 통해 전체 과정이 진행되었고 주기적인 미팅을 통해 많은 결정을 함께 진행해 나갔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집을 얻게된 주민들은 집을 꾸리는 동안 지역에 애정을 가지게 되었고 열린 공동체를 형성하는 역할을 해냈다. 관주도로 진행한 방법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4]
한편 로테르담의 카든 드레흐트 (Katehndrecht)지역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페닉스 푸드팩토리 Fenix Food Factory>는 2차세계 대전부터 술,매춘,폭력으로 악명이 높았던 지역에 있었던 창고를 개조한 문화 공간이다. 두 명의 사업가 코이만(Christian Cooiman)과 제일스트라(Tsjomme Zijlstra)는 시 당국으로 부터 창고를 임대받아 양조장, 카페, 사이다 전문숍, 베이커리, 치즈가게, 소시지 가게등 건강한 먹거리 추구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여 하나의 큰 식음료 블럭을 창조해냈다. 푸드팩토리 운영재단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투자가 사업에 도움이 되는 것을 이해했고, 초기부터 커뮤니티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행위예술을 하는 대학생들과 광장에서 돼지를 키우고 나누어먹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중국인 커뮤니티를 위한 교회를 새로 짓는 등 시설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세계에 5개 밖에 없는 서커스 스쿨을 유치하고 쇼머를 연결해주기도 했다. 120명의 지역 주민들을 초대하여 프리런치를 진행하거나 난민들을 위한 스페셜 디너를 진행하며 삶에 녹아들도록 했다. 이들은 비전을 먼저 세우고 시정부를 설득하여 프로젝트를 협력하여 진행했기에 프로그램에 투자할 수 있었다.[5] 이후 수많은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했다.
오늘날 이러한 공간의 탄생은 낯설지가 않으며 대중들 또한 이러한 방법론에 이미 익숙해져있다. 이제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는 문제는 철저하게 사회적인 영역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공간에 대한 갈망이 터져나오는 2023년의 서울은 너무나도 다이나믹하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각자의 몫을 할당하고 함께 모여 의기 투합하는 커뮤니티 기반의 민간 주도형 공간의 실험이 눈에 띄는 곳은 서울의 성수동이다. 대림창고를 필두로 등장한 수많은 창고형 공간들은 수많은 예술가와 기획자들을 모여들게 했다. 성수동 중심 지역에는 조금은 외진 곳, 송정동에 지난 2월 18일 새로운 공간의 오픈 소식이 들려왔다. 오래 된 다세대 주택인 코끼리 빌라를 개조하여 3년간 임대로 1유로라는 파격적인 조건의 공모를 통해 선정된 18개 브랜드의 주체가 한 장소를 공유하게 되었다. 로컬퓨처스라는 소셜 디벨로퍼 건축가 그룹이 주도한 순수 민간 프로젝트로 젊은 사업가들의 연대성장을 돕는 공간이라고 한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속가능한 로컬 기반의 캠페인을 도모하며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여정이 기대된다.
버려진 장소의 재생을 돕는 것은 인간 관계에 비유하자면 오랜 시간 끊어진 대화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의 제스처와 닮아있다. 단절된 관계에 숨을 불어넣는 일은 이 대화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컨텍스트가 흘러들어오는 큰 호수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로 뒤섞이면서 또다른 평화를 이루어나가는 길은 오히려 정치적이며 예술 언어로 설명하기에는 공백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공허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방식의 언어라도, 우리의 인식을 열어젖히고 있음에는 반대의 여지가 없다. 순수회화 작품이 뜻밖의 사유에 영감을 준다면, 이러한 커뮤니티 기반의 프로젝트는 사회의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게 해주면서 동시에 시대를 구성하는 공동체의 갈망을 뜰채로 거두어 펼쳐보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장소가 존속하고 또 다른 형태로 계속 등장하기 위해서는 생동하는 개인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협업이라는 에너지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1. Artist Ibrahim Mahama buys Ghana’s colonial-era trains and plans to turn them into ‘sculptures’ and education spaces,The Art Newspaper, 15 February, 2023.
2. “Beyond Placing and Distancing: Public Spaces for Inclusive Cities”, Harvard Design Magazine F/W 21, p75.
3. 오스틴 해링턴 지음, 정우진 옮김, 예술과 사회이론-사회학적 미학의 길잡이, 이학사, 2014, p248.
4. 김정빈+어반트랜스포머, 『플레이스메이커스: 네덜란드의 도시재생 이니셔티브』, 픽셀하우스, 2020, pp.81-97.
5. 위의 책. pp.144-155.
강은미 / PUBLIC PUBLIC 콘텐츠 디렉터
virginiak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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