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2023.01.26 | 조회 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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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는 매표소 바로 뒤 벽에 선홍색 글씨로 ‘동물원에서 가장 위험한 건 뭘까요?’라고 적고, 작은 커튼이 있는 곳으로 화살표를 해놓았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답을 보느라 커튼을 걷는 바람에, 정기적으로 커튼을 바꿔야 했다. 커튼 안에는 거울이 있었다.

 

한번은 시내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데, 갑자기 지대가 높아지면서 왼편과 길 아래 멀리까지 바다가 보였다. 그 순간 천국에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도 지났던 장소였지만,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었다. 분출하는 에너지와 깊은 평화가 묘하게 뒤섞인 느낌은 강렬하게, 축복으로 다가왔다. 그 길을 지나기 전에는 바다와 나무들, 공기, 햇살이 저마다 다르게 말했지만, 이제 모두 하나의 언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무는 길을 안내했고, 길은 공기를 인식했고, 공기는 바다를 생각했고, 바다는 햇살과 모든 걸 나누었다. 모든 요소가 이웃해서 조화를 이루었고, 모두 친척이 되었다. 나는 언젠가 죽어야 할 인간으로 무릎을 꿇었고, 영원불멸한 존재로 일어났다. 작은 원의 중심이 된 듯했고, 우연히도 그 원은 훨씬 큰 원의 중심인 느낌이었다.

 

왜 사람들은 이동할까? 무엇 때문에 뿌리를 내리고, 모르는 게 없던 곳을 떠나 수평선 너머 미지의 세계로 향할까? 왜 스스로를 거지처럼 느끼게 만드는 겉치레투성이인 곳에 오르려 할까? 왜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고 힘겨운 이국의 정글로 들어갈까? 어디서나 대답은 하나겠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소망하며 이주한다.
나는 손을 마구 흔들어 인도와 작별했다. 태양은 빛났고 바람은 꾸준히 불어왔다. 머리 위에서는 갈매기가 울어댔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흥분했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일을 우리가 어쩔 수 있을까? 다가오는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 수밖에 없는 것을.

 

근본을 흔드는 공포, 생명의 끝에 다가서서 느끼는 진짜 공포는 욕창처럼 기억에 둥지를 튼다. 그것은 모든 것을 썩게 한다. 그것에 대한 말까지도 썩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힘껏 싸워야 한다. 거기에 말의 빛이 비추도록 열심히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피하려 하고 심지어는 잊으려 하는 고요한 어둠으로 다가오면 우리는 더 심한 공포의 공격에 노출된다. 우리를 패배시킨 적과 진정으로 싸우지 않았으므로.

 

지나가는 배에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너무 많이 갖는 것도 그만둬야 했다. 외부의 도움에 의존할 수 없었다.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물고기 여러 마리가 날개를 버둥대며 산 채로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눈부신 힘과 속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상적인 것은 그 속도가 아니라, 동물의 순수한 자신감이었다.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힘. 그렇게 한순간에 집중해서 현재에만 몰두하는 능력, 아마 최고의 요가 수행자들이 부러워할 능력이리라.

 

사방은 똑같이 좋고도 나쁜 방향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떠 있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는 바람과 조류가 정했다. 내게 시간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거리가 되었다—나는 삶의 길을 여행했다.

 

호랑이는, 아니 모든 동물은 우위를 가리는 수단으로 폭력을 쓰려 하지 않는다. 동물이 맞붙어 싸울 때는 죽이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고, 이때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잘 안다. 충돌에는 큰 희생이 따른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죽음만이 지속적으로 감정을 흥분시킨다. 삶이 안전해서 침체했을 때 그것에 대해 고민하게 하거나, 삶이 위협받고 소중할 때 달아나게 한다.

 

서투른 작별을 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인생에서 일을 알맞게 마무리 짓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야만 놓아버릴 수 있으니까.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꼭 해야 했지만 하지 못한 말을 남기게 되고, 후회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작별 인사를 망친 일이 오늘날까지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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