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행복의 지도> 에릭 와이너
- 내가 여행에 가져간 것은 성경이 아니라 여행 안내서인 《론리 플래닛》 몇 권과 헨리 밀러의 말처럼 “사람의 목적지는 결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확신뿐이었다.
- 사회과학자들은 전문 용어로는 ‘역逆인과관계’, 평범한 사람들의 표현으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를 아직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하다지만, 혹시 행복한 사람이 더 건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결혼한 사람이 행복하다지만, 행복한 사람이 결혼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아닐까? 내가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가 아니라 어떤 곳에서 무슨 이유로 행복을 느끼는가다.
-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세대는 소인배의 세대, 서서히 움직이는 자연과 심히 유리된 사람들의 세대, 생기 넘치는 충동이 죄다 꽃병에 꽂아놓은 꽃처럼 서서히 시들어가는 세대가 될 것이다.” 스위스인들이 사실은 지루하지 않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밖에서 보기에 지루하게 보일 뿐이다.
- 어쩌면 행복은 이런 건지도 모른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 어쩌면 스위스의 지금 상황은……그저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 쉽게 해주는 것이라서 ‘행복해지기’도 더 쉬운 것 같다.
- “그럼, 카르마 씨, 우리의 가장 위대한 업적과 가장 커다란 실패가 모두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세상을 바꿔놓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합니다. 좋습니다. 일주일 단위로 보면 그게 흥미로운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40년을 놓고 생각한다면, 글쎄요. 3세대가 지나면 우리는 흔적도 없이 잊힐 겁니다.”
- “누구나 자기만의 신이 있어요. 그리고 누구나, 아이들까지도 전부 구루가 있죠. 각자의 구루가 그 사람을 흔들어 깨워서 현실을 보게 해요.”
- 미국에는 행복한 사람이 거의 없지만, 모두들 끊임없이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부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하지만,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 “자신이 행복한지 자문하는 순간 행복이 사라진다.” 이 남자는 존 스튜어트 밀이다.
- 삶을 기록하는 건 실제로 삶을 경험하는 걸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20분 동안 나는 테라스에 앉아 강물의 포효에 귀를 기울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완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수첩도, 카메라도, 녹음기도 없다. 그저 나와 삶이 있을 뿐이다.
- 나는 다시 태어나도 지금과 똑같이 살 것이다. 내 생애의 모든 순간, 지금까지 만난 모든 사람, 지금까지 했던 여행, 내가 이룩한 성공, 내가 저지른 실수, 내가 겪은 불행이 모두 내게 딱 맞았다. 그것들이 전부 좋았다거나,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난 저속한 숙명론 따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은 모두 내게 딱 맞았다. 그러니까……괜찮았다. (...) 괜찮다는 말은 출발점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고맙다.
- 어쨌든 좋은 삶, 행복한 삶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자기보다 큰 어떤 것에 유대감을 느끼며 자신이 우주라는 레이더 스크린의 작은 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의 일부임을 깨닫는 것이다.
- 중요한 건 은행 잔고가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태도다. 그래도 좋은 펜이나 자동차나 뭐 그런 물건의 매력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그런 물건들은 잠재적인 행복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런 물건들이 우리를 바꿔줄 거라고 자기도 모르게 믿어버린다.
- 명예는 아랍 세계의 기반이다. 우리처럼 해방된 서구 남자들도 명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월스트리트의 중역들이 이미 수백만 달러나 되는 연봉을 더 올리려고 일주일에 80시간씩 일하는 건 명예를 향한 끝없는 욕망 때문이다. 같은 무리의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얻고 싶다는 욕망.
- 우리가 남을 돕는 건 그럴 만한 능력이 있거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답을 받으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다. 이것을 가리키는 단어가 하나 있다. 사랑.
- 이 도시는 우주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안다. 그 자리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삶이란 원래 이처럼 덧없는 것이라는 생각 덕분에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런 생각 덕분에 항상 조심하는 자세를 잃지 않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생각 덕분에 삶이 연약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 위대한 사상가들은 오래전부터 창의성과 행복이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칸트는 “행복은 이성의 이상이 아니라 상상력의 이상”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행복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엇을 창조하기 위한 첫 단계는 바로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 긍정적인 심리학 운동의 창시자인 마틴 셀리그먼도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좋은 일이 실제보다 많았던 것으로 착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우울한 사람들은 과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가 최고의 충고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간의 자기기만은 행복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건 우리가 믿는 대상이 아니라 믿는 행위 그 자체다. 무엇을 믿든 상관없다.
- 심리학자 노먼 브래드번은 《심리적 복지의 구조》라는 책에서 행복과 불행이 우리 생각과는 달리 반대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아예 다른 동전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행복한 사람이 가끔 발작처럼 불행을 느끼는 것도 가능하고 불행한 사람이 커다란 기쁨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 벤저민 프랭클린은 행복이란 “가끔 다가오는 커다란 행운보다는 매일 일어나는 자그마한 행운에서 생겨난다”라고 썼다.
- 자신을 사랑하려면 인종, 민족, 언어, 요리 중 무엇에 관해서든 하여튼 정체감이 확고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그 정체감을 되새기며 살지는 않더라도 정체감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 지금 내게 남은 건 책꽂이에 가득 꽂힌 자기계발서와 “고민하는 문제가 있다”라거나 “그게 무슨 의미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짜증스러운 말을 수시로 입에 담는 버릇뿐이다. 태국 사람들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 “행복한 사람은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삶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냥 산다.”
- "행복해지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 사람들은 의미 있는 삶을 원하는 거니까요. 의미 있는 삶과 행복한 삶이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 행복은 부산물이다. 너새니얼 호손이 말했듯이, 행복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어깨에 내려앉는 나비와 같다.
- 일단 삶을 게임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러니까 그저 체스 게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이 훨씬 더 가볍고 행복하게 보인다. 개인적인 실패는 “극단의 여름 공연에서 실패자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된다. (...) 앨런 워츠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인간은 자신이 한바탕 연극이며 아주 기운차게 그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 우리는 지금 상당히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항상 내일이면 더 행복한 곳, 더 행복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탁자 위에 꺼내놓고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절대 어느 한 가지에 마음을 완전히 쏟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이건 위험한 짓이다. 항상 한 발을 문 밖에 놔둔 상태로는 어떤 장소도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
-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에요." 톨스토이의 말은 거꾸로다. 불행한 나라들은 모두 똑같지만, 행복한 나라들은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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