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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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가 TV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했던 일화다. 남편 이상순과 나무 의자를 만들다가 남편이 보이지도 않는 의자 밑바닥에 사포질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여기 안 보이잖아. 누가 알겠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때 이상순이 했다는 대답이 "누가 알긴? 내가 알잖아."였다. 어느 누구도 의자 밑바닥을 들여다볼 일은 없을 테니, 불필요하게 힘을 빼지 않아도 된다는 이효리의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상순은 사포질을 멈출 생각이 없다. 내가 아니까.
나만이 아는, 나만이 볼 수 있는, 나만이 기억하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하기. 타자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의 자신의 행동과 규율의 수준은 바로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일 수 있다. 그것이 나를 위한 영역일 땐 단단한 자존감으로, 다른 사람을 위한 영역일 땐 윤리의 문제로 떠오른다. 이 둘의 공통분모는 내가 나를 자랑스럽게 느낄 수 있는 영역이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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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필터인 동시에 고통의 확성기가 되는 일, 그러니까 고통의 전달자가 되는 건 기자로서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 사용자로서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많은 고통과 죽음이 보였고 애도는 자꾸만 사적 영역으로 유배되는 것만 같았다.
필터 버블 안에서 각자 둠 스크롤링을 하는 개인들에게, 연대의 가능성은 남아있을까? 그 안에서 저널리즘은 어떤 역할이라는 것을 할 수가 있을까?
글쓰기는 내 오랜 꿈이었고, 글쓰기와 정면 대결을 피하다 발이 푹 빠진 게 저널리즘이다. 숱한 나의 단점들, 부단한 자기 의심과 자기부정을, 지나친 호기심과 끈덕진 집요함을 직업윤리라며 긍정해 주는 직업을 처음 만났기에 쉽게 그만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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