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란 말 그대로 뭔가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2024.07.02 | 조회 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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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

영감을 주는 메시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좋은 문장들.

 

# 『다시, 피아노』 앨런 러스브리저

영국의 유명 일간지 가디언의 편집국장이기도한 저자는 50대 후반 인생의 오후에 접어들어 쇼팽의 '발라드 1번 G단조' 연주에 도전합니다. 위키리크스 사건 부터, 일본 동북부 대지진, 아랍의 봄, 루퍼트 머독이 거느린 영국 언론의 전화 도청 파문까지 가디언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한 해였던 시기에 그는 하루 20분씩을 피아노 연습에 투자합니다. 어찌보면 미숙한 피아노 실력에 대한 긴 변명거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좋아서 하는 일에 너무 늦은 것은 없다는 것, 시간은 항상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삶을 기쁨으로 채워준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흥미진진한 뉴스들과 함께 말이죠.


내 창조적 유전자 안의 무엇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언젠가 읽었던 카를 융의 글 한 토막이 내 안에 꿈틀대고 있던 이물감을 가장 정확히 표현한다. "인간의 장수가 그들 종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라면 과연 사람이 태어나서 일흔, 여든까지 사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생의 오후에 해당하는 시기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시기여야 한다."

 

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치유의 과정과 유사하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서두를 수 없다는 말이다.

 

아널드 베넷은 《하루 스물네 시간을 사는 방법》이라는 짧은 책을 펴냈다. "주어진 책무를 완수하는 것만으로는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인생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까닭이다." 베넷의 해답, 즉 '심오하지만 지금껏 간과되어온 진실'은 매우 간단하다. 본질적으로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다만 깨닫질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시간이 추가로 주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필요한 시간이 모두 주어져 있다."

 

아마추어는 모든 취미가 본래 그렇듯 좋아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로 당신은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인들을 흡족케 하며, 당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온정적인 자세로 연주를 들어줄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다.

아마추어란 말 그대로 뭔가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는 '사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아마레amare'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발라드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도 벌써 석 달이 넘었다. 중간 평가를 한번 해볼까? 아무래도 헤드라인은 코다의 절반가량을 머릿속에 집어 넣었다는 게 될 것 같다. (…) 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는 소심함에 갇혀 지난 40년을 허송했지만, 사실은 내 안에 그런 능력이 계속 존재해왔던 것이다. 어쩌면 지금 당장 독일어를 시작해도 해낼 수 있을지도, 자바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을지도, 대수학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 깨달음이란, '교양과 문화로 충만한 노후의 그림이 사실상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과 '실재할지 그 여부조차 불분명한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만드는 것이 사실은 오늘의 삶을 헛되이 보내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 언젠가는 죽고 마는 인간 존재의 필멸성에 대한 직감이 내 뒷덜미를 잡아챘다는 소리다. (…) 그래서 늙을 때까지 마냥 미룰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레슨을 다시 받기로 결심했다.

 

노리코가 자신의 연주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넌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거야. 청중은 그저 근사한 저녁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연주회장을 찾은 거지 널 평가하고 트집 잡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란 말이야.' 그 간단한 걸 서른이 넘도록 깨닫지 못한 거예요. '아, 그냥 무대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즐거움 비슷한 걸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구나' 하는 걸 말이죠."

 

실력이 나아지는 과정도 단순한 선형이 아닌 듯하다. 어떤 부분이 문득 연주가 순탄하게 되었다고 해서 다음 날 같은 부분을 반드시 더 빠른 템포로 더 완전하게 연주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다. (…) 빠른 속도는 오로지 느린 템포로 연습하는 과정을 거쳐야 달성할 수 있다는 역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템포를 원하는 만큼 속 시원히 끌어올리지 못한다고 좌절할 게 아니라 묵묵히 연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돌파구가 찾아와 손가락이 건반 위를 날아다닐 거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쿡이 말하는 아마추어란, "음악 없이도 그 자체로 충만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음악이 주기 때문에 음악을 삶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이며, 음악을 업으로 하거나 생계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니라 오로지 연주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내가 혹시라도 어떤 가치를 더할 수 있다면 발라드라는 작품에 대한 나만의 관점, 바로 그것뿐일 것이다. '올바른' 방식을 흉내만 내보았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테니 말이다.

어차피 완벽한 연주란 불가능하다. 나는 그저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1년 넘게 매달려온 개인의 탐험이 맺은 결실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을 뿐이다. (…) 나의 인식 세계는 여든여덟 개의 건반으로 한정되는 좁고 익숙한 공간으로 줄어든다.

 

그렇다, 시간은 있다. 아무리 정신없이 바쁜 삶이라 할지라도 시간은 있다. (…)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을 냄으로써 삶의 질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머니께서 옳으셨던 거다. 악기를 배우게 하신 선택이 옳았고, 음악이 삶에 기쁨을 더할 것이라는 혜안이 옳았으며, 악기를 다룰 줄 알면 낯선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깊고 오랜 우정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역시 옳게 하신 거다.

 

걸작은 극장이나 콘서트홀이 아니라 음악 애호가들의 피아노를 통해 그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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