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2024.06.06 | 조회 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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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빼미의 없음』 배수아 중단편집

올빼미

제발 '모든 걸 이루었다'란 표현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건 마치 '모든 것이 끝났다'는 말로 들리니까요.

영혼이란 얼마나 불확실하고 정처없는 존재인지 당신이 알 수만 있다면, 마지막 그날까지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북역

그렇지만, 사실 가장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것은 그토록 찾아헤매는 과정과 노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이미 모두 다 알고 있는 그 사실 중에 그냥 있는 건지도 모르지. 달이나 별, 아니면 우리가 매일 부르고 있는 노래처럼 이미 모두 다 당연히 알고 있는 그런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에서.

 

올빼미의 없음

우리의 미래는 일부 물리학자들의 생각대로 이미 결정된 상태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영원히 그 내용을 결코 알 수 없다면, 결정된 미래와 그렇지 않은 미래 간의 차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가 자라나는 동안 한 사람이 늙어갔으므로. 우리가 건강한 동안 한 사람이 병들었으므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한 사람이 죽어 있게 될 것이므로. 삶은 죽음에 빚지고 있는 것이므로. 한 사람이 죽고, 그리하여 남아 있는 자들의 죽음이 보류되는 것이므로. 이 세계의 상태를 하나의 문장으로 나타내자면 다음과 같다: 자연은 조화를 유지하고, 인간은 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욱 철회불가한 사건인 것이 분명한가? 그것뿐인가? 우리, 숨쉬고, 노래하고, 사랑하며, 글을 읽었던 우리는 과연 그것뿐인가? 의미 없이 일어나는 일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죽음 앞에 선 우리들 자신보다 더 의미없는 것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 없음이란 무엇인가, 없음이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리고 없음이란 도대체 왜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우리가 곧 없음에 불과하다면, 그러면 우리는 왜 지금 여기 있는 것인가.

영혼의 고통이자 곧 육신의 고통이 되는 그 상실이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대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으므로.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

 

무종

하지만 아무 말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던 것은, 이 모든 장면이 단지 꿈속을 지나가는 그림자이며, 우리가 간직한 모든 비현실과 마찬가지로, 이 순간의 통증이나 부자유 또한, 실제의 우리를 전혀 방해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를 가장 훌륭하게 꿈꾸게 하는 것은 다름아닌 통증이나 부자유일 것이므로 그것에 저항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빠리 거리의 점잖은 입맞춤

상상이 없이도 우리는 내일이 어제나 오늘과 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으리라는 예감으로 가득 찬 시절, 언제나 너무 늦게 찾아온 불꽃.

 

밤이 염세적이다

바다에 오기 전까지는 세계가 이처럼 너울대며 부유하는 물결 위에 떠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지속적인 지진 부드러운 물결의 지진. 우리들의 존재는 오직 파의 무한한 연장이 만들어낸 우연한 입자들의 연속운동이니, 아무도 그것을 못박지 못한다. 아무것도 단단한 것은 없어라. 아무데도 단단한 벽은 없어라. 당신의 얼굴, 당신의 푸른 얼굴을 향해 손을 내민다. 닿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밀어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날아갔다. 모든 것들 위로. 모든 것들.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모든 형상들. 이름을 가지게 될 모든 의미들. 세계가 당신으로부터 나온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문을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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