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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촉천민 남성 노동자 벨루타와 공장주의 여동생, 쌍둥이 남매를 키우는 이혼녀 암무가 서로 사랑한다. 카스트제도와 성차별의 관습을 어기고 몰래 사랑하는 둘은 그저 하루의 기쁨에, 작디작은 것들에 몰두한다. 〈작은 것들의 신〉은 구원이나 계몽, 해방을 약속하는 큰 이야기들이 어떻게 “역사의 악령”이 되어 “이 세상에서 아주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인 약한 자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증언한다. 작가는 “세상의 지극히 작은 것과 큰 것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주고, 그 연관성이 어떻게 인간 삶을 형성하고 인간관계를 결정짓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밝힌다.
해방을 약속하던 거대 서사들이 붕괴한 시대다. 일상의 작은 실천을 통해 우리가 정의한 대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은 매력적이다. 작은 실천이 단단한 구조에 ‘균열’을 낼 것이라고. 하지만 균열이 전복은 아니다. 누추한 현실과 구조는 여전하고, 때로 더 강화되곤 한다. 나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응원해도 자본주의가 응징되지는 않는다. 마을 공동체의 삶이 아름다워도 세상의 차별과 불평등은 엄연하다.
결국 이 작은 공간조차 경합의 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큰 것과 작은 것이, 권력과 욕망이, 저항과 포섭이 얽히고 다투는. 작은 것에 주목하는 이유는 여기에 자유의 가능성이 충만해서가 아니다. 여기서 사랑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다. 자유롭고 평등한 우정의 관계는 큰 구조를 바꾼 다음 만들어야 할 나중의 과제가 아니다. 큰 것과 작은 것 사이의 딜레마를 논리로 해결하기는 어려워도 우리에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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