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목소리, 빛나는 책장』 쓰지야마 요시오
어떤 책을 계기로 세계가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한 사람이 있을 텐데, 이는 몰랐던 지식이나 감정에 자극을 받아 세계의 해상도가 높아진 까닭이다.
책의 세계에서 쉽고 편한 성질만을 가져오려 한다면 인간의 정서를 건드리고 읽는 이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책은 경시된다. 그 대신 이해하기 쉽고 수월한 책만 수요가 늘어난다. 간단히 얻은 지식은 쉽게 잊히며, 독자의 내실을 넓혀주기 어렵다. 편리하지만 빈곤한 사회 현상에 책을 둘러싼 세계도 휩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잘 몰라도 조금은 흥미를 느낀 책이 있다면, 우선 그 책을 펼쳐볼 일이다. 펼쳐서 읽는 행위를 통해 그저 종이 묶음에 불과했던 물체가 '책'으로 인식된다. 그런 미지의 책이야말로 그 사람 자신과 나아가 세계를 풍성하게 한다.
서점 서가에 늘어선 모르는 책은 벽이 아니다. 그것은 끝없이 풍부한 세계다.
책장은 몸 바깥에 부착된 두뇌와도 같아서 풍부하게 만들어두면 지식과 감정의 총량도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살 수 있을 때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해도 책장에 꽂혀 있는 것으로 충분히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문학 연구자인 가메야마 이쿠오 씨가 재해 이후 소중히 여겨왔다는 수전 손택의 문장 한 구절을 거론한 것을 보았다.
'고통 받는 그들이 사는 바로 그 지도 위에 우리의 특권이 존재한다.'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은 주로 전쟁터의 사진에 대해 쓴 사진론인데, 동정심의 의미와 한계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지진 당시, 이미 벌어진 어마어마한 일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사자도 아닌 우리가 동정심을 갖는 것은 위선이 아닌가.'라며 그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에 주저했던 나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책이기도 했다.
서점에 있는 한 권의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정보이면서 동시에 머나먼 과거나 이국으로부터 온 목소리다. 그런 목소리는 마음을 차분히 한 뒤 몸을 약간 기울이듯 하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서점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고, 책이 전하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본래의 그 사람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하다. 서점은 지금, '거리의 대피소'가 되어가고 있다.
무슨 일이든 무언가 하나를 이해한다는 감각은,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생겨나기 마련이다.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같은 리듬으로 생활하면서 그 섬세한 변화를 깨닫게 된다.
매일 산책하는 길,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풍경, 겨울이 오면 매년 꺼내 입는 코트······. 같은 디테일을 반복하면서 그 사람 인생의 시스템이 구축된다. 우리는 그 작은 시스템을 통해 여름이 끝났다거나, 오늘은 운이 좋다거나, 그런 생활이 주는 깊이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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