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일이 있어서 친구에게 말합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면 점점 더 복잡해집니다. 말하면 정리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혼란스럽습니다. 친구가 묻습니다. "그래서 뭐가 제일 힘든 거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왜 나는 계속 같은 말만 하는 걸까?
저는 몇 달 동안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요즘 너무 힘들어.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뭘 해도 뒤처지는 것 같아." 일기를 쓸 때도, 친구와 통화할 때도, 혼자 생각할 때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말은 계속 하는데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일기를 쓰면서 "내일부터는 달라져야지" 다짐했습니다. 친구가 "너무 많이 하려는 거 아냐?"라고 물었습니다. 맞는 말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면, 또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왜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야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야기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미로 속을 걷는 사람처럼, 지금 마주한 벽만 보일 뿐 미로의 구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다시 들려줬을 때
어느 날, 누군가 제 이야기를 다시 들려줬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당신이 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이런 패턴이 보이더라고요. 당신은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 방식대로 할 시간이 없다'는 말 같아요. 당신은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천천히 합의하며 가기를 바라는 것 같고요."
그 순간, 이야기 밖으로 나왔습니다.
제가 몇 달 동안 헤매던 미로가, 위에서 내려다보니 명확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가 아니라 "내 방식과 환경이 맞지 않아"였습니다. "뒤처진다"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속도로 가지 못해서 답답하다"였습니다.
누군가 제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맥락을 정리해주니 보였습니다.
도구만으로는 안 되는 이유
도구들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나를 설명해주는 언어를 줍니다.
그런데 도구만으로는 이야기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성격 유형 검사를 해도, 강점 테스트를 받아도, 여전히 "그래서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 앞에서 막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구는 틀을 주지만, 내 이야기를 그 틀 안에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제가 "주도력이 강점"이라는 결과를 받았을 때, 그게 제 삶의 어떤 순간에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여전히 제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혼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야기 안에 있을 때는 혼란이 가득하니까요.
작은 실험을 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반복해서 한 말이나 고민을 적어보는 겁니다. "요즘 힘들어"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시간이 없어"를 언제 어디서 말했는지. 그걸 적어두고 나면, 어렴풋이 패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패턴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건 여전히 누군가와 함께 들여다봐야 명확해집니다.
이야기가 흐르기 시작한 곳
그러다 '강점 생태계'라는 곳을 만났습니다.
각자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실험하는 곳. 그런데 그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도구를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봐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비슷한 패턴이 다른 순간에도 있었나요?"
질문을 받고,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함께 들여다보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이야기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웅덩이에 고여 있던 이야기들이, 누군가와 함께 들여다보니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흐르면서 맥락이 보였습니다.
"아, 나는 빠르게 결정하고 실행하는 게 편한 사람이구나."
"합의 과정이 길어지면 에너지가 소진되는구나."
"내가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은 이런 조건을 갖춘 곳이구나."
이 패턴들은 누군가 가르쳐준 게 아니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안전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곳에서, 함께 들여다보니 자연스럽게 드러났습니다.
이야기 밖으로 나와야, 다시 쓸 수 있다
왜 생태계에서는 되었을까요?
혼자 있을 때, 저는 제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화자이자 독자였습니다. 이야기를 쓰면서 동시에 그 이야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태계에서는 이야기를 함께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패턴을 발견해주고, 맥락을 정리해주고, "이 이야기는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네요"라고 들려줬습니다.
그때 저는 이야기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밖으로 나와야, 제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어 힘들다"는 이야기는, "내 방식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야겠다"는 이야기로 다시 써졌습니다. "뒤처진다"는 이야기는, "내 속도로 가는 자리를 만들어야겠다"는 이야기로 바뀌었습니다.
작은 질문 하나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번 주에 가장 많이 한 말은 뭘까?" 그걸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가까운 친구나 동료에게, "내가 요즘 자주 하는 말이 뭐야?"라고. 그들이 들려주는 패턴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이야기의 구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은, 그 패턴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아, 맞네"로 끝나지만, 함께 들여다보면 "그래서 이건 어떤 의미일까?"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생태계가 주는 안심입니다.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흘려보낼 수 있고, 함께 들여다볼 수 있고, 결국은 다시 쓸 수 있는 자리.
💭
당신은 지금 어떤 이야기 안에 있나요? 그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볼 준비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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