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감시 영화의 대명사 트루먼쇼를 전혀 몰랐음에도 무언가 부끄러운 행동을 할 때면 내 인생이 실시간 중계가 되고 있고,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를 구경하고 있다가 어떤 시점이 오면 나의 치부를 낱낱이 들이밀며 비웃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지금은 뭐랄까.. 그러면 차라리 재밌겠다 싶기도 하다. 왜냐면 나는 관찰력이 좋으니까 안하은쇼를 빠져나가서 내 인생의 한 몫을 챙길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내 인생을 다시 계속 중계하는 안하은쇼2가 될지라도 ..
하지만 지금 글은 내 인생을 트루먼쇼 구성에 넣어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내 인생이 영화라면, 어떤 장면을 어떻게 구성할까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 이름은 하은이다. 하나님의 은혜. 줄여서 하은. 나는 조금 특이한 출생 과정을 거쳤는데, 우리 집은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고 더 아이를 갖지 않으려고 아버지가 정관 수술을 했다. 그런데 정관 수술이 뭔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엄청난 확률을 뚫은 건지 내가 임신됐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고민하다가 내 이름을 하나님의 주신 선물이라고 하은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하은이는 집에서 무척 예뻐함과 무관심과 배척을 동시에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사실 어렸을 때의 기억은 확신을 못하겠다. 예뻐했다고 들은 것도 부모님에게 들은 것, 배척을 당했다고 들은 건 상담사에게 들은 것, 당시의 진짜 느낌은 이제 기억 안 나는 것, 이제 생각해보면 그건 무관심이었다고 생각되는 것들.. 나이를 먹어서 기억이 안 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사람들은 25살이 넘어서까지 부모 탓을 하고 있으면 철없다고들 한다. 나는 철없음이 내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단어인 것만 같아서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곤 하지만, 사실 무척 신경쓰인다. 그래서 지금도 깊이 생각하면 화나곤 하는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하하 이런 상담같은 글을 보게 해서 미안합니다. 내 정신병을 너에게 보여줘서 미안해.
근데 사실 어렸을 때는 깊이 다루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꼭 들어갔으면 하는 장면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비가 무척 왔다. 바깥이 어두웠고 거의 모두가 집에 갔다. 나는 학교에 비치되어있던 노란 전화기로 집에 전화를 걸었다. 날 좀 데리러 왔으면 하면서.. 전화를 받은 아빠는 집에 있었음에도 짜증을 내며 그냥 걸어오라고 했다. 그 이후엔 어떻게 연출할까? 그건 내 인생이 어떤 장르가 되냐에 따라 다르겠지?
일단 영화의 세부적인 부분을 정하려면 큰 틀부터 정해야 하기 때문에 내 인생이 어떤 영화가 되면 좋을지 정해보자. 일단 미술 연출은 좀 귀여웠으면 좋겠다. 정말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미술이 들어간 영화도 좋지만, 그런 영화들은 왠지 좀 슬펐던 것 같아서. 그리고 내 인생엔 엽기 요소도 많고, 엽기스러운 연출도 하고 싶은데 귀여운 게 그런 거랑 딱 어울리잖아~ 그리고 난 귀여우니까~
중간에 화면 전환도 한 번 있었으면 좋겠는데~ 애니메이션이나 인형극이나 아이가 그린 듯한 허접한 그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말고 가끔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도 나오면 좋겠는데.. 수호 천사 같이 머리 위에 둥둥 떠다니는데 그렇다고 수호 천사라고 픽스한 건 아니고 여튼 그런 느낌의 캐릭터..

예전부터 좋아하던 일러스트레이터 님의 그림인데 전환할 때 나오는 캐릭터는 이렇게 눈이 엄청 크고 예뻤으면 좋겠다.

위나 아래 사진처럼 눈 아플 정도로 팝한 색감이 들어가면 좋겠다. 영화 자체는 약간 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화면 전환을 할 때도 야하면 좀 질릴 거 같아서 화면 전환이 들어갈 때는 오로지 귀여운 분위기만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근데 지금 디테일 얘기만 하고 정작 어떤 장르일지 어떤 스토리일지도 정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전반적인 무드를 생각하면 우울한 얘기가 되고 내 인생 스토리 자체를 바꾸고 싶진 않지만 그걸 잘라서 가리거나 상상을 넣거나 연출을 달리 하는 건 내 마음 아닐까? 그리고 미래도 역시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으음~ 이런 스토리면 어떨까. 하은이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이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일어나면 그게 마음에 드는 일로 바뀌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데 어느 날 상상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일이 자꾸 반복되자 너무나 소심한 성격을 가졌던 아이 하은이는 상상을 하는 것을 억제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아이였을 때는 무서운 상황이 일어나는 게 무서워서 상상을 억제할 수 있더라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그런 능력이 자기에게 있다는 걸 알면 톡톡히 이용하려 할 것이다. 여기서 개연성을 줘야 된다.
그래서 하은이는 스스로 상상을 하는 능력이 없어지는 것을 상상해 상상을 현실로 이루는 능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과해진 것이지, 하은이는 갑자기 인생이 개 꼬이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풀리는 게 없다. 스물여섯살쯤 먹은 하은이는 자기실현 능력이 없어진 것을 정말 후회하면서 살아간다. 어렸을 적의 자신에 대한 원망감과 자괴감이 심하다. 그런데 갑자기 상상을 실현하는 능력이 돌아오는데...?
솔직히 영화가 된다면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근데 쓰는 과정은 스스로는 재미있었다. 이제 내 인생을 어떻게 챠핑하고 어떤 새로운 요소를 여기에 넣을까?
근데 지금 머리가 포화돼서 더 못 쓰겠어요. 다음 주에 만나요~ ... (게을러진 하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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