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실에 관해 두 번 알려주게 될 것 같지만 나는 첫 글로 <시작하는 방법>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자꾸 쓰고 싶다로 오타를 내는 걸 보니 아직도 그걸 쓰고 싶은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시작하는 방법>을 쓰기 위해선 나의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고 그럼 일요일에 보내야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첫 글은 <죽음 후>가 됐다.
<죽음 후>를 주제로 떠올린 건 주연이의 메일링을 보고 나서이다. 그 메일에서 주연이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읽었고, 감상 메일로 나의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을 보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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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후에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죽어서도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해서 보고 죽어서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 ..아니면 죽음 후는 60억 농담 같았으면 좋겠어요 .. 대신 전화도 없고 연락도 안 하고 .. 무한한 시간 속에서 뭔가를 배우고 만들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살고 싶네요.
가장 먼저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썼지만 사실 구라다. 나는 죽음 이후가 행복하면 좋겠다. 왜냐면 지금 고통스러우니까 다른 선택을 하게 됐을 때 그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하하 사후세계라니 순진한 생각을 하는구나~ 하는 말이나 생각 같은 걸 받기 싫으므로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근데 이건 또 상태에 따라 바뀌긴 한다. 저걸 썼을 때는 너무 지쳐있어서 그냥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내가 사후 세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면 ..
나는 나이를 먹지 않고 싶다. 늙는 건 두렵다. 나는 하루하루 살았을 뿐인데, 심지어 내 나름대로는 충실히 살기도 했는데 큰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
또 나는 최근 뉴진스의 무대를 보며 그 중 누군가의 나이 먹음을 느꼈다. 징그러운 얘기일까? 그런데 어쨌든 나는 이 말을 하고 싶고 이 언급이 필요하므로 그냥 썼다. 뉴진스에게 전해주지 마시오.. 그 느낌은 화장법이나 얼굴의 변화에서도 느껴졌지만, 무대에서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그 멤버는 무대에 무척 능숙해지고 매력을 좀 더 어필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이를 먹어서 그랬다기보단 그냥 프로가 된 영역일 수도 있겠지만, 그 순간엔 나이를 먹었다고 느꼈다.
나는 아이돌, 특히 남자 아이돌은 그들의 데뷔 직후의 순간을 좋아한다. 아직 외모도 일반인에 가깝고, 또 무언가를 기대하고 열심히인 모습들 .. 그런 모습을 솔직히는 사랑했다.
나는 그런 것에 가치를 많이 부여한다. 미래를 기대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려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 늙어도 못하는 일은 아니다. 다만 이 나잇대 즈음에는 남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주는 가치는 아닌 것 같다. 나이를 한 20살쯤 더 먹으면 변화가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다.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가치가 의미 없어지는 순간이 오는 걸 싫어한다. 하긴 누가 좋아하겠어. 근데 늙으면, 사람들이랑 어울리면 그렇게 될 것 같다.
요즘엔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즐겁다. 그래서 지금 당장 대가리가 깨져서 사후세계로 가게 된다면 사람 안 보고 지식이나 쌓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근데 다른 사람은 죽음 후가 어떻게 되길 원할까? 일단 주연이는 죽어서 사람을 만나서 뭘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 내가 없으면 주연이가 슬플까? 모든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나는 영원히 발견되지 않으면 뭐라고 생각할까? 나를 생각할까? 나를 그 정도로 안 좋아할 수도 있지만 주연이는 좋은 애니까 몇 번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주연이는 한 번은 다시 만나고 싶다. 하지만 한 번 만나면 나라는 사람은 분명 다시 보고 싶어할 텐데... 그럼 지금이랑 뭐가 다르지...
뭐라고 결론을 내고 싶지만 사실 많은 개잘난 사람들도 못 냈을 것이다. 존나 무책임한 말 같다고 느끼지만 사실이다. 그냥 말을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역시 그냥 죽어서는 아무것도 없으면 좋겠다. 이런 고민도 안 하고 누군가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하고 죽어서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해서 보지 않고 죽어서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고 죽어서 60억 농담같은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사후 세계를 궁금해하지 않고 죽어서도 괴로워하지 않도록.
죽음 후에 관해 또 다른 사람과 한 대화도 쓰고 싶지만, 그러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그건 죽음 후 (2)로 쓰기로 했다. 이미 머리도 포화됐다. 그럼 모두, 다음주 일요일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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