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감희와 공포물의 역사

2023.08.27 | 조회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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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감

싫으면 꺼(주시겠어요..)

※ 경고 : 이 글은 인터넷 공포물에 대한 직접적 언급과 사진을 포함하고 있음

 

(1) 빨간 마스크

나는 태어나자마자 교회를 다니면서 '영적임'이란 개념을 받아들였다. 성경에는 여러가지 영적 존재가 등장하는데, 너무 어릴 적부터 받아들인 탓인지 언젠가 나를 심판해 불지옥에 넣을 거란 야훼를 제외한 다른 존재는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야훼도 그 자체가 무섭다기보다는 심판이 무서웠을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영적 존재를 무서워하게 되고, 그러면서 곧 관심의 초석이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피아노 학원 오빠가 들려준 <빨간 마스크> 이야기이다. 너무 유명한 괴담이라 모두 알겠지만 짧게 짚고 넘어가자면,

 

늦은 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에게 한 여성이 접근한다. 그녀는 머리가 길고 아주 예쁜 여성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빨간색 마스크를 하고 있다는 것? 그녀는 아이에게 묻는다. "나 예뻐?", .. "예뻐요!" 아이의 대답을 들은 여성은 마스크를 벗는다. 귀 끝까지 찢어져버려 피가 뚝뚝 흐르는 입으로 미소 지으며.. 

 

여러가지 바리에이션이 있지만 기본이 되는 스토리는 저렇다. 이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괴담이었고, 나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저녁에 학원 밖으로 나가지 못해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나를 데리러 오게 해야 했다. 

왜 그렇게 갑자기 겁을 먹었을까? 생각해보면 빨간 마스크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친근하게 등장할 수 있는 존재였기에 그랬던 것 같다. 갑자기 말을 건 여자가 사실 공포(입이 찢어져서 징그러운)의 대상이라는 게..

 

 

 

(2) 영화 1

그 이후로 나는 한동안 인상적인 공포물을 접하지 않은 것 같다.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별로 없었기도 하고 무엇보다 심리적 준비가 잘 안 되어 있었다. <빨간 마스크>를 접한 것이 초등 2학년 정도의 일로, 반 친구가 서점에서 파는 <무서운 게 딱 좋아!>를 가져오면 읽었지만 <학교괴담>은 너무 무서웠다. 저승넷 편을 보고 너무 트라우마가 돼서 성인이 되서야 그 회차를 다시 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삼도천에서 팔 나오는 장면은 정말 무섭잖아요
그렇지만 삼도천에서 팔 나오는 장면은 정말 무섭잖아요

그러던 중 나는 사춘기가 찾아왔다. 동시에 부유하고 자유로운 집에 사는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의 집에는 당시 흔하지 않던 IPTV가 있어서 우리는 VOD 서비스의 성인인증을 뚫고 몰래 공포영화를 보곤 했다. 둘 다 겁이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 치킨게임 같은 심리를 가지고 "어? 너 이거 못 봐?" 하면서 비명을 지르며 공포영화를 보았다. 그 때 본 영화가 <쏘우>,<착신아리>,<피라냐> 등이 있다. <쏘우>는 무서워서 보다 말았고, <착신아리>는 닭털 브레스 덕에 끝까지 볼 수 있었고, <피라냐>는 나름 재밌었다.

 

 

 

(3) 인터넷 호러

아마 그 즈음에 나는 컴퓨터 사용법을 익히게 되었다. 컴퓨터를 쓰던 언니들이 결혼해 집을 떠났기에 나는 가족 중 유일하게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이제 나는 야생의 인터넷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니며 공포물을 탐구하게 된다.  

 

더 하우스의 플레이 사진
더 하우스의 플레이 사진

(3-1) 더 하우스 (여기서 플레이 가능: https://vidkidz.tistory.com/541)

더 하우스는 프란체스카 게임으로도 불렸는데, 당시에 기네스에 가장 무서운 게임으로 등록됐다는 소문이 돌아 인기가 좋았다. 플래시 게임이라 아무데서나 하기가 용이해서, 나도 친구들과 같이 하다가 결국 다들 무서워해 그만했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공포계의 선구자, 이런 거 안 무서워하는 애 협회장으로 생각했던 나는 집에 가서 홀로 플레이를 했다. 흑백 사진에 클릭으로 상호작용 요소를 확인하다가 점프 스케어를 당하는 류의 게임이다. 

 

(3-2) 2ch 계열 (구글에 검색하면 안 되는 단어 시리즈, 쿠네쿠네, 팔척귀신)

 

구글에 검색하면 안 되는 단어 시리즈

내가 보던 당시(*요즘에도 활발히 만들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현황을 잘 모르는 관계로 주의) 구글에 검색하면 안 되는 단어 시리즈는 구글에 특정 단어를 검색할 시 나오는 호러물로, 누군가의 예술 작품을 열화시켜 기묘하게 만든 미디어나 징그러운 합성 사진 등부터 시작해 지금 생각하면 부적절하게도 누군가가 고독사해 곤죽이 된 사진 등이 있었다. 당시에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진짜로 잘 몰랐거나, 혹은 그런 현장이나 예술품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의식이 없었어서 아무렇지 않게 소비해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거기에 의지와 관련없이 연관되게 된 사람들은 아마 많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사과를 해야 할까? 하지만 어디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그런 것을 소비한 만큼 앞으로의 미디어에서 실제 사람의 장애나 죽음이 값싼 스릴로 이용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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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네쿠네 (https://dsuplex.tistory.com/1119)

쿠네쿠네는 유명한 괴담이므로 여러가지 괴담이 있지만, 내가 처음 보았고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링크로 달아두었다. 전문을 읽기 어려운 사람을 위해 요약하자면,

시골에 놀러 간 남매가 논에서 놀던 중, 오빠가 동생의 부탁을 받고 멀리 꿈틀거리는 기묘한 것을 쌍안경을 통해 확인한다. 그것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고, 오빠는 알면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그만 미쳐버린다. 가족들은 미쳐버린 오빠를 시골에 두고 떠나는데, 마지막으로 오빠의 모습을 확인하려던 동생은 그만 ..

당시에 내가 무서웠던 지점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미쳐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까운 사람이 내 탓으로 미쳐버렸는데 어떻게 해줄 수도 없이 인간 외 취급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크툴루 신화와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 이야기를 적당히 섞은 것 같아서 하나도 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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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척귀신

팔척귀신도 당시에 정말 흥미로워했던 것 같다. 팔척귀신는 요약할 것도 없이 단순히 키가 팔 척 정도 되는 귀신을 만나서, 살기 위해 조부모님이 아는 사람에게서 제령의식을 받고는 다행히 멀쩡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는데... 그 보호가 깨졌다는 소식과 함게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결말로 끝난다. 

팔척귀신부터 시작해 내가 좋아하는 많은 2ch 괴담들은 이 찝찝한 끝맛이 매력이다. 우리 나라는 보통 귀신의 한을 풀어주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일본의 괴담은 갑자기 주인공이 없어져버린다거나, 영원한 봉인은 없다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는 이유가 왜일까? 왠진 모르지만 호러적으로는 재미있는 장치인 것 같다.

 

 

(3-3) 스레딕

구 홈페이지 로고
구 홈페이지 로고

검색해보니 여러가지 사정이 있지만 요새도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당시에는 나홀로숨바꼭질 괴담을 파고 들다 보니 찾게 된 사이트였다. 여러가지 게시판이 있고, 그 게시판 내로 들어가면 익명제로 다른 사람이 만든 게시판에 댓글을 달거나 내가 게시판을 만들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나홀로숨바꼭질이라거나 강령술 같은 오컬트 실황 연재를 보러 들어갔었다. 옛날에 봤던 것 중 기억나는 것은 <꿈중독> 스레다. 이건 괴담이라기보단 좀 슬프지만.. 스레딕 괴담은 괴담 자체가 아주 재밌었다기보단 현장성이 참 좋았다. 

 

 

(3-4) 로어

로어는 현재의 나폴리탄 괴담의 전신 격인 것일까? 궁금해서 넣고 싶어졌다. 로어는 일종의 도시전설 모음으로, 괴담 블로그 등지에서 누가 가져온 것을 읽었었다. 로어가 다른 괴담과 다른 점은, 일부러 공포를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신비롭고 짧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이야 너무 나이가 많아서 재미가 없지만 로어의 특징은 후에 생겨나는 다른 많은 인터넷 호러에 영감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4) 휴식기와 현재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
할로윈의 마이클 마이어스

그 이후 고등학생 때 나는 불면증을 겪었는데, 그것은 내 우울증 발병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고 급격히 괴담이나 호러 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새벽에 잠을 못 자서 계속 깨어있어도 귀신을 볼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무서운 게 없어지더라. 그 이후로는 공포와 관련해서는 캐릭터를 파고 들게 되었다.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같은 게임을 하고, 공포영화 역사에서 유명 캐릭터들이 나오는 <할로윈>,<나이트메어><에일리언>을 시리즈에서 일부 편을 보았다. 사실 보긴 했어도 크게 관심을 불태우진 않았는데 요즘 상태가 좋아서 공포영화를 좀 봐볼까 한다. 

 

 

오늘은 사감희가 공포물을 좋아한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쓰고 다시 읽다 보니 저는 일상 속 위협, 안심했을 때 다시 찾아오는 위협에서 공포를 잘 느끼고 또 그래도 보던 가닥을 통해 공포적 장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사실 이거 말고도 다른 큰 공포를 느끼는 요소가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믿는 것을 남들이 의심할 때 느끼는 공포'인데요. 이건 영화에서 많이 다뤄지는 요소라 다음에 내가 보고 싶은, 혹은 본 영화에 관해 글을 쓸 때 써볼까 해요~ 이번 한 주도 여러분이 읽어줘서 열심히 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모두 읽어줘서 고맙고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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