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펼쳐진 세상
첫째를 낳던 날, 나는 직장을 그만뒀다. 진통으로 아침 일찍 찾은 산부인과에서 제일 먼저 유치원 원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원장님, 저 애기 낳으러 병원 왔어요. 오늘부터 못가요.”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졸업식을 코앞에 두고 그만두게 될지 몰랐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위해, 바로 전 날까지 붙잡고 있던 모든 일들을 다 놓았다. (첫째라서 예정일 보다 늦게 태어날 줄 알았다.)
바로 그 날, 첫째가 태어난 2010년 2월 17일 난 새로운 세상에 들어왔다.
잠을 푹 잔 날이 언제였을까? 닷새? 엿새? 열흘은 넘겠지? 오! 제발 그랬길. 코로나가 대유행하던 2021년 여름, 신랑을 시작으로 한명, 한명 코로나에 걸렸다. 코로나의 아픔은 아이들의 ‘각 방 사용!’이라는 큰 열매를 주고 끝맺음을 했다. 그 날 이후부터 내 몸은 편해졌지만, 여전히 깊은 잠은 들지 못한다. 아이들 방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쓰이는 건 뭘까? 낮 동안 에너지를 더 써야하는 걸까?
주방에서 펼쳐지는 예술
아이들을 키우며 잘 하지는 못해도 즐겁게 요리도 하고, 식물도 키우고, 집 청소도 하며 매일 매일을 지냈다. 반복되는 하루 중에 나만의 독창성을 뽐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바로 음식을 만들고, 그릇에 담는 시간이다. 내 음식에 레시피는 필요 없다. 그 때 그 때 다르니까. 이름은 똑같아도 할 때마다 맛이 달라지는 건, 나만의 재주일 것이다. 이제는 커서 "엄마, 그냥 다른 거 넣지 말고 만들어요!"하는 첫째 아이의 요청이 있지만, 아직도 난 새로운 재료를 넣거나 새로운 양념으로 매일 새로운 음식을 재창조한다. 그리고 음식을 그릇에 담을 때 나도 모르게 예술적 욕구를 마구 쏟아낸다. '오늘은 이 접시를 할까? 저 접시를 할까?', '딸기를 세워서 담을까? 눕혀서 담을까?' 생각한다. 계절에 따라 컵과 그릇들을 바꿔주며 나만의 푸드 아트를 펼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똑같은 그릇에 담아도 음식재료에 따라 개성 있게 담으면 나 스스로 흥이 난다. 아이들도 좋아했다. 지금은 큰 반응이 없지만, 나 스스로 즐거우면 된 거 아닌가!
아이들의 생일이 있는 2월이면 난 여러 번의 생일파티를 준비했다. 신랑 말처럼 ‘生 일’이 아니라 ‘生 달’이 된다. 코로나 시기 때 인원제한으로 2월 한 달 동안 10번의 생일파티를 해 본 적도 있었다. 그 때마다 난 새로운 케이크를 준비했다. 베이커리에서 구입한 케이크를 매번 준비 하는 건 재미없다. 나만의 케이크는 재료가 다양하다. 누룽지, 생크림과 카스텔라, 머핀, 백설기, 꿀떡, 과일 등 초대한 아이들에 따라 취향에 맞는 케이크를 준비했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누룽지 케이크를 나도 만들어본다. 압력밥솥에 밥을 한 뒤 밥은 퍼놓고, 약 불에 15~20분 정도 올려주면 누룽지가 되면서 밥솥에서 차츰 분리가 된다. 살~ 살 꺼내 뒤집으면 누룽지 케이크 완성!! (누룽지 케이크를 개발한 엄마 감사합니다.)
요즘 다른 곳에 창의력 발산하며 조금 소홀해 지기는 했지만, 주방에서 다양한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햇살이 좋은 날
날이 좋으면 도시락을 싸고, 작은 돗자리 하나 챙겨 아이들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놀이터 앞으로 나갔다. 돗자리 위에 펼쳐지는 도시락 예술을 눈으로 감상하고, 입으로 느끼고, 놀이터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다 집에 들어온다. 때론 배낭에 김밥, 컵라면, 보온병을 넣은 후 호수공원으로 향한다. 초록 싱그러움이 가득한 그곳에서 자리 잡고, 보온병에 담은 물을 꺼내 컵라면에 담은 후 김밥과 함께 먹는 그 맛은 꿀맛이다. 산책도 하고, 밥도 먹고! 나에게는 일석이조다. 덴마크 화가 한나 파울리의 <아침식사 시간>은 정말 싱그러운 아침이다. '이렇게 햇살 좋은 날에는 야외에서 먹어야지!' 그녀도 나처럼 햇살과 초록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보다. 생동감 있는 자연을 벗 삼아 먹는 아침식사는 실내에서 먹는 아침식사 보다 훨씬 더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큰 주전자는 햇살을 머금고, 그 햇살은 식탁 위로 퍼지며 함께 할 가족들에게 따뜻함을 불어넣어준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가 되게 하소서~!'기도하는 마음이 가족들의 온 몸에 스며들 것이다. 이렇게 가족을 위해 생활하는 '한나 파울리'는 결혼 전 ‘한나 히르슈’로 음악 출판사 에이브러햄 히르슈(Abraham Hirsch)의 딸로 아우구스트 말름스트룀의 회화 학교와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왕립 예술 아카데미를 다녔다. 1885년~1887년까지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공부하며, 이후 파리에서 그림을 그렸다. 파울리는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1889)에서 <화가 베니 솔단 초상화> 작품으로 3등 메달을 받았고, 1893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컬럼비아 엑스포에서 미술의 궁전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였다. 하지만 그녀는 1887년 파리에 유학을 와있던 화가 게오르크 파울리(Georg Pauli)와 결혼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가정주부로서 출산과 가사를 돌보는 일에 더 집중했다. 화가의 아내로 살면서 간혹 그린 그림들을 보면 사실주의 그림이지만, 1887년에 그린 그림 <아침식사 시간>만큼은 햇살을 머금은 인상주의 느낌이 든다.
'그녀가 조금 더 파리에서 생활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침식사 시간>처럼 빛을 잔뜩 머금은 또 다른 작품들이 함께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첫째를 낳고 몸조리만 한 후 유치원 원감으로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젓는다. 물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자격증은 땄겠지만, 아이들을 낳고 키우던 만 4년의 시간은 그 무엇가도 바꿀 수 없으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 원감으로 복귀해 정신없이 달렸던 시간을 지내 봤으니까……
어느 새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2학년이 된 아이들과 함께 나아가기 위해 난, 집을 나선다. 그리고 글을 쓴다.
글쓴이 - 전애희
현재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하며 도서관에서 독서지도사로 독서연계, 창의융합독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림책과 그림은 예술이라는 한 장르! 예술을 매개체로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소통하는 삶을 꿈꾸며, 내 삶에 들어온 예술을 글로 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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