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꼴통들의 버스 여정
2005년 나비 태풍이 휘몰아 치던 날. 친한 동기 언니와 전공 수업이 있었지만, 자체 휴강을 하고서 버스의 긴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거리가 제법 있는 곳이었다. 부산 대학교 근처에 있는 비봉 식당으로 갈 참이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국밥 집으로 가야 한다며 강의실을 나오자 몇몇 선배들은 혀를 차기도 했다.
나는 과에서 몇 안 되는 조용한 꼴통이지 않았나 싶다. 지하철을 타면 환승을 해야 하고, 버스는 한 번에 가지만 빙빙 돌아서 간다. 우리는 1시간을 30분 돌아가는 버스를 고르기로 했다. 부산의 버스를 타본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위치에서 그 시간의 스릴을 잘 느껴야 한다. 특히 속도를 내며 커브를 돌 때에는 버스에 자신의 몸을 스무스하게 얹어 가볍게 몸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자칫 잘못했다간 버스 커브와 함께 내 인생의 역주행도 찾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거센 비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에 쓸려가는 기가 막힌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비봉 식당으로 들어가 잔뜩 기대를 하고 국밥을 시켰다. 그날따라 생각했던 그 맛에서 벗어나 있었다. 실망을 하고서 식당을 나왔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워 만화방을 갔다. 나는 지금도 만화를 무지 좋아한다. 그런데 만화책도 재미가 없었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냥 집에 가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거리로 나오니 날씨는 좀 더 시커먼 어둠이 몰려오며 심각해져 있었다. 현수막이 넘어져 있거나, 홍보하는 바람 빠진 풍선들도 넘어져 있었다. 각종 쓰레기 봉투들도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날아다니고 있었다. 거리에 사람들도 서둘러 사라졌다. 갑자기 언니도 버스를 타러 가겠다며 인사를 하고는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돌고래군의 거품
나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강한 태풍 바람과 맞서다가 우산이 뒤집어져 버렸다. 그런 다음 아주 신나게 미끄러져버렸다.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필립 파레노作)이 녹아 버린 것 같은 물탕에 철퍼덕 주저 앉아버렸다. 여기저기 흙들과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확연히 흠뻑 젖어들어가는 양말과 찝찝함에 극단적 재미주의자처럼 씩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뉴스에서도 외출을 자제하라 했었는데 수업을 째고, 국밥 하나 먹으로 여기까지 와 있는 나를 보니 기가 막히긴 했다.
지하철에 앉는 자리는 많이 비어있었지만, 옷이 젖어서 앉을 수가 없어 열리지 않는 문 옆으로 기대었다. 그때 한참 시간과 장소와 상관없이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 자리에서 몇 글자를 적어갈 때쯤이었다. 어떠한 안타까운기운이 내 시선을 가져가 버렸다.
드디어, 돌고래군의 등장이다.
그도 누구와 마찬가지로 홀딱 젖어 있었다. 바지도 발목 위로 접혀 있었다.(기억하는 이유는 접힌 바지가 내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머리는 알 수 없는 거품을 묻히고 있었다. 당시 나는 생각한 것을 그대로 즉시 실천하는 병이 있었는데(요즘도 조금 그런 편이다) 그의 거품을 닦을 수 있는 휴지가 나한테 있다는 것을 바로 인지하고, 그에게 바로 건네주고 있었다.
이후에 이 사건을 두고서 여러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작업을 걸었네라고 말이다. 그저 내가 들고 있던 것은 반가움의 휴지였다. 하지만 나는 휴지를 주고 나서 깨달았다.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건네주고서 아까와 마찬가지로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과 다르게 나의 주위를 끌었던 것은 그의 시선이 무섭게 따라 붙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뿔싸, 이상한 사람에게 휴지를 줬구나. 도 하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피곤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음에 후회가 될 찰나에 그가 나를 두드렸다.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연락처를 묻는 질문을 휴대폰 액정으로 문자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순식간에 의심의 도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웃으며 휴대폰 번호가 없다고 말로 대답을 했다. 그 당시 나는 누군가와 연락하는 것에 대한 귀차니즘에 빠져 휴대폰을 정지한 상태였다.
그다음으로는 네이트온 아이디, 세이클럽 등등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정말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무언가 고민을 하는 거 같았다. 나도 순간 고민을 했다. 조금 전에 처음 봤던 비에 젖은 바지가 내 스타일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됐을 까. 잠시 머뭇거리는 그에게 블로그는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는 블로그 닉네임을 알려달라 했다. 닉네임 '료'를 적어주었다. 그는 지하철 노란 승차권에 적어달라며 볼펜을 주었다. 나는 잘 안 나오는 볼펜을 쥐고선 꾹꾹 눌러가며 '료'라고 적어주었다.
그는 내릴 정류장이 아까 지났다며 이번에 먼저 내려야 한다며 블로그 찾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기며 지하철을 먼저 내렸다. (이 모든 것을 휴대폰 액정으로 다 이야기하고 떠나심, 물론 나는 말로) 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남편과의 태풍 속에서의 첫 만남이다.
그의 닉네임은 돌고래군이다. 첫 만남에 머리에 거품을 묻히고 있어서 보는 순간 돌고래군이다! 라고 외쳤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외치고는 다음에 연락이 왔을 때 그에게 알려줬던 것 같다. 이제부터 당신의 이름은 돌고래군입니다. 라고.
거침없이 쳐들어오는 그의 몸짓
날씨와 상관없이 물길을 헤치며. 거슬러오는 놀람과 동시에 쳐들어오는 그의 몸짓. 흔들린 그녀의 미소와 눈망울에서 나의 어린 나비를 보았다. 실제로 보이는 잎이 하나 없는 나무들. 공원에 알록달록 빛깔의 색이 피어나고 있다. 반복되는 장면의 떠올림은 현장의 그곳으로 나를 안내해 주는 장치로 느껴진다.
나뭇가지에 물방울이 맺힌,
앙상한 힘을 실어둔 배치.
둘의 세계를 열광하게 만드는
젊은 검은 배경을.
*글쓴이 - 료
글/ 도서관/ 미술관에 곁들어 살고 있다.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다. 예술에 대한 욕구가 차오르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질주하는 본능은 태어났을 때부터 가진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인 것 같다. 그렇게 멍 때리기를 반복하다가 얻어걸리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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