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내가 믿고 있는 것에 관하여 #김상래

2024.09.02 | 조회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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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에바 알머슨(Eva Armisen), Magic
에바 알머슨(Eva Armisen), Magic

휴대폰 없이 크는 아이

“엄마, 나 이제 끝났어.”

오후 2시가 조금 넘으면 '031'이 찍힌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아이는 피아노 학원으로 갈 참이거나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하고 학교에 남아 회의한다는 내용 중 하나를 전달할 예정이다. “엄마, 나 데리러 올 거지?” 하고 물으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엄마가 데리러 갈게. 이따가 보자.” “응!” 하고 전화를 끊곤 한다. 나는 부러 전화한 아이의 예쁜 마음부터 아는 척을 해준다.

초등 5학년, 아이는 아직 제대로 된 휴대폰이랄 게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인터넷 사용하는 것 말고는 다른 용도로의 휴대폰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보통 마술 하는 친구들과 밴드로 채팅하거나 검색하는 용도로만 집에서 활용한다. 내가 데리러 갈 수 없는 상황이거나 늦는다든가 할 때는 미리 부모님께 얘길 해두거나 피아노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서 아이와 통화한다. 아이는 주로 학교에 있는 전화기나 옆에 있는 친구 휴대폰을 빌려 내게 전화를 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는 여전히 휴대폰 사용의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비단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알아 똑똑한 아이보다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 생각 주머니가 큰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은 철학 같은 것이 있다. 그런 연유로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단연 친구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미취학일 때부터 대다수 아이가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친구를 찾아주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황금 같은 어린 시절을 멍하니 앉아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힘껏 뛰어놀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전시회, 연극, 음악회를 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내 어린 시절의 경험과 맞닿아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와 동생들은 저녁 6시 이후에는 TV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보통 우리 자매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과자를 사다 놓고 수다 꽃을 피우거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곤 했다. 우리 집에선 그런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군기 반장이던 아빠의 역할이 제대로 잡힌 집이었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그런 철학 같은 것이 내가 성장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내가 부모가 되고 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꼿꼿함,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사에 휘둘리다가도 제자리를 금세 찾았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조금 더 보람되고 건전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우리를 오롯이 믿고 자유를 준 엄마와 다르게 아빠는 세상의 흉흉한 일에 휘말리지 않게 딸을 키우느라 엄격한 방식을 고수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이만큼 키워보니 흔들리지 않는 철학 같은 것을 갖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알아간다.

나는 단단해 보인다는 얘기를 주로 듣는 편이다. 하지만 나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약한 마음을 가졌는지, 그래서 수도 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쓰는 일로 풀며 살아간다는 것을 안다. 어제보다 더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쫓아갈 자신이 없어졌을 때 기존에 하던 일을 내려놓았다. 미래주의적으로 달리기보다는 천천히 걷기를 선택한 셈이다. 불나방처럼 살다가 나도 모르게 다가올 죽음을 맞이하긴 싫었다.

 

소신껏 사는 지혜를 주신 부모님

성인이 되는 동안 우리 집엔 자동차가 없었다.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하거나 학자금을 내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가진 나름의 철학 같은 것이 있었다. 건강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으면 최대한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 빚을 내는 일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부모님의 방식이라 불편해도 그에 따라 살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주 계곡이나 낚시터, 시골의 한적한 곳을 찾아 여행을 다니곤 했다.

지금이야 친정에 차가 있지만, 짐을 싣고 이동할 일이 아니면 부모님은 여전히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신다. 남들 좆아 사는 삶을 사신 적이 없었다. 수수하게 입고 몸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나는 우리 집이 엄청 부자인 줄로만 알았다.

남들 가진 것은 나도 있어야 남부럽지 않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텐데 부모님은 그런 것에 연연한 적이 없었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욕심 내지 않는, 한결같은 것을 내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것 같다. 남들 다 가진 휴대폰, 누구나 하는 게임, 유행하는 취미나 패션 같은 것에 휘둘리지 않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같지 않아서 기왕이면 좋은 방향에 썼으면 싶다. 스스로 즐겁고 만족한 것을 찾아 그것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일이 생을 조금 더 온전히 사는 데 도움이 되리란 것을 내가 알아가듯 아이도 배웠으면 좋겠다.

 

내가 믿는 것

열두 살 아이가 여전히 엄마와 함께 있길 원하고 등하교할 때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싱글거리는 것은, 그러니까 조금 천천히 사춘기에 진입하는 것은 어쩌면 온라인 세상에 덜 빼앗긴 덕분 아닐까? 아직 변성기 전이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앳된 티가 역력하다. “엄마, 나 학교 끝났는데 친구들이랑 조금만 더 있다가 피아노 학원 가도 돼?”하고 물으면, 왠지 모르게 입가에 싱그러운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아이 아직 엄마 품에 있구나 싶어 아이보다 내가 더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사는 게 맞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부모님이 내게 물려준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 같은 게 생겼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아이에게 그대로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 하나쯤 만들어 주면서 사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신당역 역무원 살해 사건’처럼 알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하는 사회에서 내가 내 안전을 지키듯, 우리 아이도 자신의 안전 정도는 지키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온라인 세계와는 되도록 천천히 접속하는 것이 낫지 않나 싶다. 내가 발 붙이고 사는 곳이 현실인지 가상인지 정도는 구분하면서 살아야 사람 간에 소통이라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내일도 우리 아이가 수업이 끝난 후, “엄마, 나 이제 끝났어. 친구들이랑 조금만 더 얘기하다가 가도 되지?” 하며 학교 전화기로 전화를 하거나 친구에게 잠깐 빌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오면 좋겠다. 되도록 문 걸어 잠그고 방으로 들어가는 일이 천천히 왔으면 싶다. 이런 시절도 머지않아 끝날 거라.

답이 없는 세상에서 내가 계속해서 찾아야 할 것은 나에 관한 생각과 내 가장 가까운 것을 우선 챙기는 소소하고 소중한 마음일 거다. 열두 살 아이가 마술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이 세상이 모두 아름다운 마술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은 아닐까. 누구도 속고 속이고 상처 입히고 상처 주지 않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려고만 하지 않고 함께 가자고 손잡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믿고 바라는 것이 아마 그런 매직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트 카드를 선택한 것 같은데 클로버 카드가 놓여 있는 그런 매직. 어떤 카드를 선택해도 괜찮은 것만 나오는 그런 매직이 현실이면 참 좋겠다. 그런 현실에선 아이를 더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아이에게 그런 안전 지대를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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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상래 

융합예술 연구센터 <아틀리에 드 까뮤> 대표, 인문·예술 커뮤니티 <살롱 드 까뮤>를 운영하고 있다. 국회도서관 <상상예술관> 칼럼니스트로 미술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문화> 필진으로 미술 에세이를 쓰며 블로그 <까뮤의 그림 배달>을 통해 그림을 나누고 있다. 학교와 도서관, 박물관 및 여러 기관에서 유아부터 시니어까지 문화·예술 관련 지식을 나누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창의융합예술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문화·예술로 가득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고 있다. 여러 권의 미술 서적을 집필 중이며, 저서로 <실은, 엄마도 꿈이 있었어>,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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