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모순: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충돌하는 순간

2024.12.06 | 조회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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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드 까뮤

그림과 글로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

모순: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충돌하는 순간
모순: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충돌하는 순간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기억의 지속>은 황량한 땅에서 녹아내리는 시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시간은 어떤 상황에서든 일정한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 가진 본질적인 엄격함과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리는 시계의 유동성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낸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시간의 모순이 느껴진다. 

 

카르페 디엠

삶은 모순투성이다. 어린 소의 가죽을 벗겨서 만든 값비싼 소파에 앉아 환경 뉴스를 보며 한참 고개를 끄덕여놓고는 시커먼 매연을 내뿜는 차를 몰고 동물원으로 달려가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는 동물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게 인생이다. 가죽 소파를 인조 가죽 소파로, 휘발유 자동차를 전기차로, 동물들이 좁은 우리에 갇혀 사는 동물원을 널따란 사파리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모순의 폭을 좁힌다 한들 오직 죽지 않을 만큼만 고기를 먹고, 환경 보호를 위해 삶의 편의와 즐거움을 모두 포기할 수는 없다.     

내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려면 모순을 인정해야 한다. 오직 모순을 줄이는 데만 골몰하면 단 한 순간도 제대로 살 수 없다. 어차피 언젠가 다시 비워야 할 걸 알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욕심껏 채우려 애쓰는 인간의 삶 자체가 모순이다. 동물 실험을 고수하는 회사가 판매하는 샴푸를 완전히 거르고, 오직 공정 무역을 통해서 수입된 커피만 마시고, 플라스틱이 전혀 없는 삶을 고집하면 어느 순간 삶이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그래서인지, 눈앞의 쾌락에 목을 매고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카르페디엠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가 쓴 라틴어 시의 구절, “지금 이 순간을 붙들어라, 내일이라는 말은 되도록 조금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에서 나온 말이다. 어쩌면 이만큼 철학적이고 옳은 말은 드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그중에서도 지금, 이 순간뿐이다. 내일이 올 거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사랑한다”라는 말을 미뤘다가 내일이 오기 전에 사랑을 잃는 사람도 있다. 내일이 오면 오랫동안 갈망했던 미슐랭 레스토랑에 꼭 가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식당이 문을 닫아버려 더는 갈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카르페 디엠만큼이나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또 다른 라틴어다. 고대 로마에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장군에게 죽음을 일깨우는 노예가 있었다. 개선장군이 시가를 행진할 때 노예가 그 뒤를 따르며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를 외쳤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다.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이 승리에 도취되지 않고 겸손하게 행동할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늘보다 내일에 중점을 둬야 한다. 찬란했던 오늘이 끝나면 언젠가는 그 불꽃이 사그라든다는 순리를 기억해야만 승리 앞에서도 겸허해질 수 있다. 메멘토 모리를 다르게 해석하면, 내게 주어진 눈앞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보다는 매 순간 내게 주어지는 모든 찰나를 둘로 쪼개어 바라보고, 오로지 현재의 감정에만 충실하기보다는 미래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옳다는 것이다.      

 

Present 

오늘을 즐길 것인가? 내일을 위해 오늘은 참을 것인가? 우리는 두 가지 조건 사이에서 매일 고민한다. 지금 당장 라면을 먹고 식욕을 채울 것인지, 내일의 몸매를 위해 오늘의 식욕을 참을 것인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오늘 당장 시험공부에 돌입할 것인지, 딱 오늘까지만 영화도 보고 뒹굴뒹굴하며 쉴 것인지! 우리는 매일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 중에서 누구의 욕구를 먼저 만족시킬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간다.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카르페 디엠을 메멘토 모리와 연결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present’가 그 답이다. ‘present’를 ‘현재’, 혹은 ‘선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재’는 ‘선물’이라는 말로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해석 또한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present’에는 메멘토 모리에 가 닿는 숨겨진 끈이 있다. ‘present’는 ‘~에 있는’이라는 뜻의 형용사로도 해석된다. 현재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지만 모두가 그 순간을 선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를 값어치 있는 선물, 즉 언젠가 포장이 걷혔을 때 반짝반짝 빛날 보석으로 만들려면 모든 순간을 제대로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 시간을 얻을 때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한 번 낭비한 시간은 억만금을 들여도 되찾을 수 없다. 그러니,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대신 지금 여기에 제대로 ‘있으면’, 즉 현재를 충실히 보내면 오늘과 내일을 동시에 만족시킬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메멘토모리 #카르페디엠 #present #모순 

* 글쓴이 - 김현정

제법 긴 시간 경제/경영 서적을 번역해 왔다. 책을 좋아해 공부도 내팽개치고 독서에 빠져 살던 학창 시절, 한 여성의 인생 여정을 그린 소설 <조개줍는 아이들>을 읽고 번역가의 꿈을 키웠다.

책이 좋아서 마흔 권이 넘는 책을 번역하고 나니, 이제 내 글도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세상을 향한 관심을 날실과 씨실처럼 엮어 브런치,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오래오래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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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ella

    0
    13 days 전

    전 메멘토모리를 항상 죽음은 늘 옆에 있으니 현재를 소중히 여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겸손하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도 있군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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