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글,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

2023.02.22 | 조회 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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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글

사진과 노래 그리고 글

 

 

백예린, "산책"

오예린, "Kiki"

네이비쿼카, "With You"

공원소녀, "One &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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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농장을 하는 토끼가 있었다.

 

토끼는 매일 아침 7시가 되면은 농장으로 향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노란 우비를 입고 나갔고

무더운 여름날엔 선크림을 잔뜩 바른 채로 나갔다.

 

그러고는

해가 저물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는 책을 잔뜩 머리에 이고서 깡충깡충 달려 나갔다.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토끼야, 오늘은 농장을 가지 않는구나? 책 읽으러 가니?”

 

아니야. 오늘은 당근들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해. 지난밤 읽었던 책에서 아주 좋은 이야기가 있었거든.”

 

고양이는 대답을 듣고 말없이 토끼를 보내주었다.

 

 

다음날 토끼는 물총을 들고 깡충깡충 길을 걸었다.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토끼야, 오늘은 농장을 가지 않는구나? 물놀이하러 가니?”

 

아니야. 오늘은 당근들에게 물총으로 밥을 줄 거야. 매일 물뿌리개로 주면 지겨워할 테니까.”

 

고양이는 대답을 듣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날 토끼는 큰 자루를 들고 깡충깡충 길을 나섰다.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토끼야, 그렇게 큰 자루는 어디에 쓰려고 그러니?”

 

당근이 맛있게 자랐어! 분명 모두가 좋아할 거야. 그러니 시장에서 팔려면 이렇게 큰 자루에 가득 담아가야 할 거야.”

 

고양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만큼 다른 동물들도 너의 당근을 사랑하길 바라.”

 

토끼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농장으로 향했다.

 

 

그날 밤 크고 무거운 무언가가

땅을 질질 끌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졸고 있던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근이 가득 담겨

자기 몸보다도 더 큰 자루를

토끼가 끙끙거리며 끌고 있었다.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는 어두워서인지

토끼의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인사를 건네지 않은 채

눈을 감고 다시 자는 시늉을 했다.

 

날이 밝았다.

 

토끼는 아침 7시가 되자

어제 당근을 담았던 큰 자루에

편지를 가득 담고 깡충깡충 농장으로 가고 있었다.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토끼야, 그 편지는 누구에게 주는 거야?”

 

이건 농장의 당근들에게 쓴 편지야. 당근 하나하나에게 쓰느라 밤을 새웠지 뭐야.”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는 그런 토끼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너의 당근은 다른 동물들에게 사랑받지 못했어. 매일 아침 7시마다 농장으로 달려갔다가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도 사랑받지 못했다고. 그런데 당근에게 편지를 썼단 말이야? 당근 대신 다른 채소를 키워봐.”

 

고양이야, 내 당근들이 다른 동물들에게 사랑받지 못했다고 해서 나도 당근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니야. 당근들이 상처받았을지도 몰라. 오늘은 편지를 읽어주며 위로해줄 거야.”

 

그래. 부디 당근들이 기뻐하길 바란다.”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는 등을 돌리고 누워 눈을 감았다.

 

그 뒤로 다시 깡충깡충 토끼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아침 7.

 

소나무 앞으로 토끼가 지나가지 않았다.

고양이는 그렇게 며칠 동안 보이지 않는 토끼를 걱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나무 앞으로 거북이와 노루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빵을 먹으며 지나갔다.

 

맛있는 빵 냄새에 배가 고파진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물었다.

 

얘들아, 그 맛있어 보이는 빵은 어디에서 파는 거니?”

 

그러자 고양이를 올려다보기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드는 거북이 대신

노루가 잽싸게 대답했다.

 

고양이야, 이 빵은 언덕 아래에 사는 토끼가 만든 당근 빵이야. 나는 당근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 빵은 맛있어! 금방 다 팔릴 거야. 너도 어서 가서 줄을 서.”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됐어. 나는 빵 안 좋아해.”

 

 

그날 밤.

 

토끼가 큰 수레를 끌고

농장으로 가는 길에

소나무 앞을 지나고 있었다.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그 모습을 보고 말을 걸었다.

 

토끼야, 네가 만든 당근 빵을 동물들이 아주 좋아하더라? 축하해.”

 

고마워, 내일 쓸 당근이 더 필요해서 지금 캐러 가는 길이야.”

 

그래. 어두우니 조심히 캐고 돌아가.”

 

토끼는 고맙다는 듯이 웃으며

다시 수레를 끌고 깡충깡충 뛰었다.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야.”

 

수레를 끌던 토끼가 멈추어 서더니 뒤를 돌아 고양이를 불렀다.

 

깜짝 놀란 고양이는 토끼를 보고 대답했다.

 

왜 그러니 토끼야?”

 

내가 당근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동물들도 당근을 좋아해 줄 거로 생각했던 것은 욕심이었던 것 같아. 심지어 언덕 위에 사는 토끼가 파는 당근은 다들 좋아하더라고.”

 

고양이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치고는 소나무 가지 위에 바로 앉았다.

 

매일 아침 7시에 농장으로 가고 달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게 내 당근이 마땅히 사랑받을 이유는 아니야. 하지만 여전히 당근이 좋았어. 그래서 다른 동물들도 같이 좋아할 빵으로 만들게 된 거야. 당근을 많이 팔고 싶었던 게 아니야. 당근을 같이 좋아하고 싶었던 거야. 설득하기 위해서 바꿔야 했던 것은 키우는 채소의 종류가 아니었던 거지. 내일은 네가 먹을 빵도 구워올게. 좋아했으면 좋겠다.”

 

됐어. 나는 빵 안 좋아해.”

 

토끼는 싱긋 웃으며

다시 수레를 끌고 깡충깡충 뛰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토끼에게 소나무에 사는 고양이가 소리쳤다.

 

토끼야, 빵 대신 당근을 줘.”

 

그러자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커지며 밤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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