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글, "mp3가 필요 없어졌던 나처럼"

2023.04.05 | 조회 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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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글

사진과 노래 그리고 글

 

 

Weston Estate, "Daisies"

카더가든, "그대 작은 나의 세상이 되어"

권진아, "Raise Up The Flag"

aespa, "ICU 쉬어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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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친구들이 학교에 mp3를 가지고 오기 시작했다.

 

TV 프로그램이 끝나면 나오던 짧은 뮤직비디오가

그때의 나에겐 음악 감상의 전부였다.

 

그래서 어디서나 노래가 듣고 싶으면 듣고

내가 모르던 수많은 곡을 담아 다니는 모습이

그렇게 동경스러울 수 없었다.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무언가를 사달라고 조른 일이

 

그리고

며칠 뒤 나에게 선물이라며 주셨다.

 

드디어 mp3가 생겼다는 사실에

얼마나 기뻤던지

그 순간의 감정이 아직도 여기 있다.

 

그런데

신이 난 채로 한참을 만지던 나는

금세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mp3가 아니었다.

 

똑 닮은 휴대용 라디오였다.

 

그날 처음으로

허탈함과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mp3가 아닌 라디오였는지

굳이 여쭤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유를 알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나는

라디오를 처음 듣게 되었다.

 

 

학교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으며 라디오를 들었다.

 

밤에는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펴둔 채 또 들었다.

 

거기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사연을

이해할 리가 없는 초등학생이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이들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매일 만나고

뻔히 아는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접점 없는 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사람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 결과에서 서로 무엇을 느끼게 되는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DJ의 선곡부터

사연자들의 선곡까지

 

내가 아는 노래는 단 한 곡도 없었다.

 

매번 새로운 노래를 타의로 들으며

깨달았다.

 

내게도 취향이 있구나.’

 

어떤 노래는 다시 듣고 싶어

이름을 적으려 종이와 펜을 꺼내게 하고

 

어떤 노래는 빨리 시간이 지나서

다시 DJ가 재밌는 이야기를 하기만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좋아할 수도

나는 싫어할 수도 있다.

그걸 알게 되었다.

 

아니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사실들을 하나씩 만나게 되는 것도 즐거웠다.

마치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조금 더 자라

교복을 입게 되었을 때도

라디오는 계속 들었다.

 

그동안 즐겨듣던 프로그램의

DJ가 몇 번 바뀌었고

제목과 PD가 바뀔 때도 있었다.

 

여전히 라디오는 아늑했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직접 겪지 않고서도

알게 되는 것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내가 어느 순간부터

라디오에 나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이렇게 재밌고 좋은데

내가 좋았던 점을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다.

 

나만 알고 있기 너무 아깝다.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주 많은 시간을 지나온

지금은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

 

라디오가 싫어져서는 아니다.

 

여전히 그 감성이 그립곤 하다.

 

하지만

라디오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왔다.

 

예를 들면 유튜브라거나

 

하루는

평소처럼 유튜브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오늘을 살고 있나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라디오에 나가고 싶어진 그때처럼

 

나도 유튜브에서 그런 이야기 좀 해보면 안 되나

 

어떻게 자랐고

무엇이 좋고 싫고

요즘 하는 걱정은 이렇고

앞으로 이런 순간을 꿈꾼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렇게 듣고 싶었다.

 

 

라디오 DJ가 꿈이던 때는

마음이 마음에서 끝나던 나였다.

 

지금은

마음이 행동이 되는 나이다.

 

맞은 편에 앉은 게스트

옆에서 대본을 보는 PD

테이블 위 커피

조용한 스튜디오

내가 입을 열면서 시작되는 방송

 

마음은 행동이 되었다.

 

첫 녹음이 끝나고 소식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넌 참 인생 재밌게 산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네.

 

사람들 앞에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뻔뻔해지기로 결심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친구가 어떤 생각을 한 것처럼

 

이 방송에서 소개될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에서

누군가 어떤 생각이나 마음이 들길 바란다.

 

라디오를 들으며 잠들던 나처럼

편하게 느껴졌으면 하고

 

mp3가 필요 없어졌던 나처럼

낯설지만 재밌어서 친해졌으면 좋겠다.

 

각자의 취향이 있으니

모두가 좋아할 순 없겠지만

누군가는 좋아해 줄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내가 행복할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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