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글, "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2023.03.15 | 조회 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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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글

사진과 노래 그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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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쓰, "야간버스"

콜드,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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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전거를 못 탄다.

 

보조 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를 열심히 밟으며

아파트 단지를 누비던 때도 있었지만

두발자전거를 배우지 않은 채 어른이 되었다.

 

두발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학교 운동장을 갔던 날을 기억한다.

 

자전거에 앉아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차디찬 흙바닥만 내려보았다.

 

시선에는 온통 땅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당장이라도 페달을 밟으면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을 넘어지며

나의 두려움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닫곤

자전거를 타지 않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 자전거를 탈 일이 생겼다.

 

절대 없을 줄 알았지만

살다 보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런 순간은 도망칠 수 없다.

 

 

날씨 좋은 봄이었다.

 

데이트하러 바다 근처로

벚꽃 구경을 갔다가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곳을 찾았다.

 

신이 나서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 나아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니

스스로가 초라해졌다.

 

그래 그때는 겁 많던 어린 시절이었으니까.

지금은 어른이잖아.

용감하게 페달을 밟으면

의외로 잘 탈지도 몰라.

 

나는 자전거를 빌려

능숙한 척 앉아

페달을 세차게 밟기 시작했다.

 

핸들 조작이 미숙할 뿐

제법 잘 나갔다.

 

거 봐.

나 잘 할 수 있어.

 

예쁜 봄 바다와 맑은 하늘

그리고 벚꽃 잎과 함께 부는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하지만 그 순간은 길지 못했다.

 

꽃구경하면 걷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속도를 낮추니

중심을 잡기 어려웠고

금방 넘어질 것만 같았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아니고

여기서 다 큰 어른이 넘어지면

너무 창피할 거야.

 

절대 넘어져서는 안 돼.

차라리 멈추자.

 

그때 넘어지듯 몸을 기울여 한 발로 땅을 밟았다.

자전거를 멈추고 서니 맞은 편에서 그 사람이 왔다.

내 옆을 지나며 말했다.

 

안 타고 뭐 해?

 

다행히 내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지나가 줬다.

 

넘어져서 창피해질 것을 걱정하지 않고

그대로 빠르게 페달을 밟았더라면

계속 탈 수 있었을까

 

그러다 넘어지면

너무 창피하지 않을까

 

그대로 나는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돌아갔다.

 

그 이후로 아직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는 넘어져 아플 것이 무서웠고

다 큰 어른이 되어서는 내가 넘어지는 것을 남이 본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정작 친구가 흔들거릴 땐 옆에서

 

우리 아직 젊어, 넘어져도 돼. 도전하자!

 

라고 말하지만

과연 내가 자전거를 탄 상황에서

스스로 똑같이 격려하며 살고 있나 모르겠다.

 

넘어져서 아픈 것은 조금 덜 무섭다.

이제는 넘어지지 않아도 아픈 어른이니까.

 

문제는 넘어지는 것이 창피해져서

안장에 앉지도 못하게 된 겁쟁이가 된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자전거 한 대가 있을까

 

 

보조 바퀴도 창피하고

넘어지는 것도 창피하니

자고 일어나면 자전거를 타게 되는

마법이 일어나길 바란다.

 

매일 그런 마법을 꿈꾸며

자전거를 타지 않고 끌고 간다.

 

내일은 안장에 앉아 볼까

 

넘어져서 창피하더라도

뻔뻔하게 일어서고

몇 번이고 다시 타고 페달을 밟으면

언젠가 나도 남들처럼 자전거를 탈 수 있지 않을까

 

뻔뻔하게 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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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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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룡

    1
    about 1 year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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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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