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신년 첫 번째 편지의 인사말을 맡은 모래시계입니다.
새해가 밝았네요. 우스갯소리로 “새해 아침에 동해나 갈까?”라고 말했더니, 차가 밀릴 거라고 들었어요. 여태껏 일출은 거실 창밖에서 봤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양양 고속도로의 정체는 엄청나더라고요. 태양은 지구에 사는 조그만 생명체가 자신을 보기 위해 교통체증을 감수하고 바다로 향한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까요?
이번 편지의 주제는 “텍스트힙에 얽힌 조그만 단상”입니다. 2025년 첫 편지인 만큼, 텍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해요. 의미 부여를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최근 열풍인 ‘텍스트힙’은 단순히 텍스트를 좋아해서 시작된 것일까요? 밀짚모자의 말처럼, 멋지지 않다면 읽는 이유가 없죠. 기저에 깔린 맥락을 읽어내야 해요. 유행은 언제나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니까요.
서로의 원고를 교환하여 읽는 내내 같은 듯 다른 의견 차이를 느낄 수 있었어요. 한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이 텍스트에 묻어난다는 사실은 참 신기해요. 철자의 개수는 정해져 있지만 이걸 통해 만들 수 있는 텍스트의 개수는 무한대라는 것도요.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 모래시계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해가 찾아왔어요. 신년 목표는 다들 잘 세우셨나요? 목표를 글로 적으면 달성할 확률이 42%나 높아진다고 하니, 귀찮더라도 꼭 써보는 게 어떨지요?
저는 출국 준비 때문에 바쁘네요. 이 글이 배송되는 토요일에 저는 런던에 있을 예정이에요. 런던에서 브뤼셀, 암스테르담, 베를린을 지나 프라하와 빈을 여행하고 로마와 피렌체, 베른과 바르셀로나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파리에 도착할 거예요. 이동할 때마다 기차를 탈 계획인데 인터넷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책을 가져가려고요.
제 글을 읽으신 독자분이라면 하루키의 책을 가져갈 게 뻔하다는 것도 아시겠죠. 할 말이 없네요. 왜냐하면 정말로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챙겨갈 예정이거든요. 양도 많고 충격에 강한 양장본으로 만들어져서 텍스트를 좋아하는 기나긴 떠돌이 여행객에게는 적합한 책이에요.
『먼 북소리』는 하루키가 그리스에서 3년 동안 살면서 쓴 여행 수기예요. 아쉽게도 제 여행 계획에 그리스는 없지만, 여행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공통점 삼아 텍스트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건 흥미로워요. 하루키의 텍스트와 제가 느낀 심상이 한데 모여 나만의 여행 수기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도 있겠죠.
요즘 텍스트 열풍이 불고 있어요. 마케팅 업계에서는 “텍스트힙”으로 부르고 있죠. 독서조차 나만의 방식으로 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보여 마음에 들어요. 텍스트에 심취한 이들에게 독서는 고리타분하고 수동적이지 않거든요.
텍스트힙 현상을 바라보면 독서도 놀이가 될 수 있겠다 싶어요. 인상 깊은 구절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하고, 블로그에 독후감을 적을 수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텍스트는 구분될 수 있어요. 독서가 ‘읽는 행위’만을 지칭한다면, 텍스트는 읽고 쓰는 것을 포함하여 관련된 모든 맥락을 끌어안을 수 있거든요.
어렸을 때 한글과 컴퓨터를 켜고 아무 문장이나 단어를 쓰고는 했는데요. 어느 정도 양이 차서 한 문단 정도에 이르면 마음속으로 큰 뿌듯함을 느꼈어요. 그때 제가 독수리 타법으로 입력한 텍스트는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저는 그 텍스트를 아끼고 사랑했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텍스트를 써보는 게 꿈이에요. 감정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연대의 힘으로 텍스트를 매개 삼아 포근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 토요일 우편함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해요.
많이 읽고 이야기할수록 텍스트의 힘은 커져요. 텍스트는 눈으로 읽을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으며 입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으니까요.
새해를 맞아 독서를 결심한 동생이 저에게 물어봤어요.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해?” 질문을 듣는 순간, 수많은 방법론과 가르침이 생각났지만 모조리 무시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책은 그저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냥 읽어”라고 대답했어요.
차가운 대답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대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음악을 듣기 위해 화성학과 코드를 배우고, 영화를 보기 위해서 연출과 카메라 구도 잡는 법을 공부하지 않듯이, 책도 마찬가지겠죠. 재밌게 읽으면 그만이에요. 텍스트를 두려워 말아요.
힙하게 읽고 멋지게 뛰려면
👒 밀짚모자
저의 말할 수 없는 취미는 독서와 달리기예요. 예전엔 숨기지 않았는데, 요샌 언급하기 꺼려지네요. 유행 때문이에요. 텍스트힙과 러닝 크루의 이미지를 받아들이기 싫어요. 시류에 급하게 편승하는 느낌이잖아요. 예전부터 즐겼다는 설명을 덧붙이면, 더더욱 의심스러워지고요.
저의에 과시욕이 보이네요. 부끄러운 여가가 아니지만, 순전히 멋이 없다는 이유로 은폐하다뇨. 텍스트힙에 편승하는 독서는 힙하지 않으며, 러닝은 혼자서 즐기는 운동이라고, 고집스럽게 투정하는 태도예요. 쓰고 보니 꼰대 같지만, 새삼 진실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일관적인 입장이 없어요. 힙이 뭔지도 모르겠고요. 다만 사회과학 서적을 배제하는 독서 문화, 트위터 ‘똥글’ 수준의 에세이, 베스트 셀러 위주의 판촉, 숨 막히는 갓생 예찬, 조깅의 이미지를 박살 낸 <SNL>이 미울 뿐이에요.
텍스트힙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죠. 과시하는 맛이 없다면 왜 읽나요. 우린 조금 더 똑똑해지고, 새롭게 생각하며, 친구를 논파하는 재미로 공부하잖아요. 결과적으로 인생의 자산이 되고, 외로움과 마주하는 강인함을 주지만, 속물적인 욕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요.
작년 서울 국제 도서전이 대성했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동네 서점이 성지가 됐고요. 대형 출판사에 주문이 폭주하기까지 했네요. 저는 어리둥절했어요. 도서전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갔는지 궁금하네요. 구매 의욕도 놀랍고요. 보통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한편으론 응원했지만, 솔직히 소외감이 압도적이었어요.
러닝 크루는 황당했어요. 낯선 타인과 함께 뛰는 심리 자체가 의아해요. 아무런 이득이 없잖아요. 자신의 리듬에 맞춰야 가장 재밌으니까요. 한두 명이면 몰라도, 단체로 움직이면 전체적인 효율도 처참하고요. 친목이 목적이면 다른 모임에 나가면 되잖아요. 저는 제 달리는 몸을 사랑하지만, 밖에서 어떻게 보일진 알 수 없어요. 땀을 뻘뻘 흘리는 추한 몰골이 아닐까 싶은데요, 첫인상으론 최악이에요. 그러나 뛰겠다는 의지는 숭고하고, 진심으로 존중하고 싶어요.
흐름을 비틀어야 해요. 관건은 멋의 회복이에요. 누구나 자신 있게 달리기와 독서를 자랑하고, 타인의 욕구를 일으키는 세태를 원해요. 도파민이 썩는 세계에 틈새를 내야 하니까요.
세상에 제 이상형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지만, 담론의 발전을 위해 굳이 언급할게요. 다정한 품성, 아름다운 외모, 직업의 안정성, 꾸준히 쌓아온 교양, 지적인 유머… 전부 거부하고 싶지만, 여기서 벗어날 순 없어요. 이데올로기는 약자까지 합의한 통치 전략이니까요. 심지어 저는 약자조차 아니고요.
지배 구조에 대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저는 이상한 조건을 덧붙여요. 공부를 즐기며 외로움과 싸우는 성격, 쉽게 상처받지만 압도적인 웃음으로 버텨내는 인격, 러닝머신을 경멸하는 고집, 조금 방치된 외모로 구성해 낸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 눈이 너무 높네요. 저는 똥고집 말곤 만족시키지 못해요.
어떻게 매력을 재해석할까요. 방법을 모르겠어요. 다만 개인의 솔직하고 낯설며, 조금 윤리적인 욕구를 표출하면 무언가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네요.
📸 토요일 사진함
🎞️ 우편배달부 두 명이 토요일에 마주한 순간을 공유합니다.
🌀 천재지변 시, 배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한 마디
⏳ 모래시계: 여유로우면서 동시에 치열할 수 있을까요? 올해 제가 세운 목표에요. 곧 4학년이고 취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에요. 최선을 다하되, 원하지 않은 결과와 마주해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싶어요. 최근에 <프렌즈>를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요, 90년대 특유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너무 부럽네요. 사회생활을 시작해서도 매일매일 카페에 모여 앉아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요?
👒 밀짚모자: 신년이네요. 저는 뱀을 좋아해요. 미끌미끌 유연한 느낌이 매력적이에요. 혀도 귀엽고요. 막상 실제로 만난 경험은 거의 없네요. 뒤통수 정도만 봤어요. 잘 알지도 모른 채 호의를 갖는 성격인가 싶네요.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인간형은 취미나 관심사를 두고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는 ‘오타쿠’예요. 살면서 무언가를 그렇게까지 사랑한 기억이 없거든요. 요즘 문보영 작가님에게 푹 빠졌는데, 마음을 키울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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