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두 번째 편지] "노이즈 캔슬링이 막을 수 있는 것"

2025.01.25 | 조회 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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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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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1월 두 번째 인사를 맡은 밀짚모자입니다.

LA엔 거대 산불, 한국엔 폭설. 이제는 상투어가 됐지만, 요즘 기후가 이상해요. 시사도 당황스럽고요. 인터넷엔 혼란이 넘쳐요. 거짓 선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재앙의 돌파구는 존재해요. 다들 할리우드 사인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셨나요? 가짜 뉴스인데, 저는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어요. 멸망하는 세계에 몸을 맡긴 의연함을 느꼈거든요. 외로움도 읽혔고요.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지구처럼요. 외로운 파란 별, 창백한 푸른 점.

무엇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순응하느냐. 시대가 던지는 물음이죠. 이번 호 주제는 “노이즈 캔슬링이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원고를 교환하면서 놀랐고, 반가웠어요.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요. 노이즈 캔슬링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자 다르고, 활용법은 무궁무진해요. 핵심이 노이즈인지, 캔슬링인지, 혹은 노이즈 캔슬링 이후 재생되는 제3의 소리인지, 모두 다르게 판단하니까요.

더러운 정보가 넘치죠? ‘디지털 리터러시’는 시간만 낭비하는 언설이에요. 구체적인 방법론도, 이론적인 제안도, 현실적인 분석도, 전부 없어요. 본인을 리터러시의 대상으로 삼아 자멸해야 옳아요. 답은 정해져 있어요. 다양한 텍스트를 성실하게 읽으라는, 고전적이고 뻔한 결론이죠. 꼭 양질의 자료일 필요는 없어요. 반면교사도 중요하니까요.

한가한 편지가 교사로 작용하길 바라요.


노이즈 캔슬링 없는 이어폰으로 주세요

👒 밀짚모자

저는 유선 이어폰을 고집해요. 십만 원 중반대 제품을 중학생 때부터 쓰고 있죠. 한때는 비싸다고 여겨졌는데, 에어팟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네요. 음질에 까다로운 청취자는 아니지만, 귀에 익은 소리를 유지하려고요. 콩나물 디자인은 과시적이고, 헤드셋은 불편해요.

사실 가격은 논쟁적이에요. 케이블이 자주 망가지니까요. 고장이 반복되면, 아예 무선으로 갈아탈까 고민하기도 해요. 정보를 찾다 그만두죠. 제품이 너무 많고, 취향은 까탈스러워요. 애플은 흔하고, 삼성은 재수 없으며, 쓰던 브랜드는 지겨워요. 리뷰는 못 믿겠고요. 그에 비해 유선 케이블(MMCX)은 가격만 보면 되죠.

가장 큰 진입장벽은 부가 기능이에요. 저는 노이즈 캔슬링이 없는 제품을 원하거든요. 소음을 차단하려는 심리부터 이해 안 가요. 귓구멍을 막는 차폐형(PNC)이면 몰라도, 전자음을 생성해 파동을 소멸시키는 전자식(ANC)은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인생의 참고 자료를 배제하는 반지성주의라고 생각해요.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음악을 사랑해서는 대답이 안 돼요. 삶의 음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예술을 깊게 즐길 수 있겠어요? 된다 해도 문제예요. 우월한 문화로 저열한 일상을 덮는다는 전제니까요. 자기 멋에 취해 멸망할 뿐이에요.

최적의 환경에서 음악을 들으려는 마음엔 공감해요. 근데, 조용한 밤을 기다리면 되잖아요. 관건은 지속가능성이에요. 노이즈 캔슬링을 켜면 배터리가 두 배 이상 빠르게 소모돼요. 은유 아닐까 싶어요. 깔끔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잡스러움을 못 견디죠. 언젠가부터 깔끔함은 그다지 깔끔하지 못하고요. 낮은 해상도, 로파이(lo-fi)는 정적을 파괴해요. 상황을 통제하는 감각조차 사라지죠. 배경음은 알고리듬을 따라 알아서 움직여요. 장마철 비 오는 ASMR을 틀어놓는 기현상까지 발생하네요. 언제부턴가 바깥의 소리와 마주하려면 결단이 필요해졌어요.

예전에 동사무소 직원 스타일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밈이 돌았어요. 갤럭시 휴대 전화를 사용하고, 연예인에 관심 없으며, 길거리에 난 식물 이름은 꿰고 있는데, 화내는 법을 모르는 온순한 성격을 소유한 남성상이죠. 말이 동사무소지, ‘무해함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예시예요. 무해한 남성성은 한국 방송계도 제패했죠. 저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기억에 남네요.

세상이 유해하니까요. 드라마로 꿈꾸고,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죠. 당대에 필요한 환상이라고도 생각해요. 방향성도 적절하고요. 그런데, 충분하진 않아요. 인간은 모순으로 작동하는 존재고, 우린 복잡하고 이상한 캐릭터에 끌리잖아요. <나의 해방일지>를 기억하시나요? 모든 인물이 입체적이고, 특히 김지원과 손석구의 매력이 대단하죠. 선한 인성으로 몰아붙이지 않아도, 사랑을 유발해요.

세계엔 악한 힘이 작용하고, 구조에서 자유로운 개인은 없어요. 각자에게 주어진 가능한 최선을 어떻게 행하는지가 관건이죠. 악을 배제한 천국은 도파민 중독을 유발할 뿐이에요.


음악을 사랑하지만 공연은 싫다

⏳ 모래시계

저는 태생이 차분한 성격이에요. 어렸을 때는 축구와 야구 대신 책과 놀았고, 학창 시절에는 집과 학교만 드나들었어요. 주위 친구들은 저를 ‘조용한 애’로 기억해요.

유일한 일탈을 꼽자면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홍대의 펍을 갔을 때가 되겠네요. 물론 술을 마시지는 않았어요. 그때는 펍이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단지 비틀즈 음악을 LP로 틀어준다길래 갔을 뿐이에요.

저는 음악을 정말 사랑하지만, 공연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소리의 크기에 압도되는 기분이에요. 음악을 감상하고 싶은데, 되려 음악에 짓눌린다고 할까요. 작년 겨울, 오아시스의 내한이 긴급 발표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죠. 물론 저도 오아시스를 좋아하지만, 공연에 갈 생각은 별로 없었네요. 제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음량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서요.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공연은 재즈바에서 듣는 재즈 라이브에요. 일반적인 공연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은 훌륭한 타협이 될 수 있죠. 하지만 그마저도 같이 갈 사람이 없어 자주 가지는 않아요.

‘음악을 사랑하지만, 공연은 싫다.’ 평면적인 사실보다 행간에 얽힌 내면의 심리를 파악해야겠죠. 노이즈 캔슬링을 켜고 큰 음량으로 음악을 듣는 건 좋아하거든요. 제대로 음악을 듣고 싶을 땐 귀가 소화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음량으로 기저에 깔린 베이스와 드럼을 하나하나 집중하면서 듣는 편이에요.

노이즈 캔슬링은 일종의 보호막이에요. 외부의 소음은 꽤 효과적으로 차단되고, 덕분에 나만의 공연장을 마련할 수 있죠. 정교하게 녹음된 음원을 듣는 건 관객의 환호 소리나 박수갈채를 들을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의도치 않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0에 수렴하며, 그러므로 안전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요.

안전이 보장되면 우리는 자유롭게 집중할 수 있죠. 그런데 반대로 분산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해요. 예컨대, 다섯 명 이상의 모임에서는 갑자기 말수가 적어진다거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약속을 잡으면 모두 네 명 이하로 만나네요. 대부분 두 명이서 만나고요.

두 명이서 만나면 서로에게 완벽히 집중할 수 있죠. 대화의 주제는 물 흐르듯이 흘러가고요. 제 경험상, 네 명까지는 이게 가능해요. 그런데 다섯 명부터는 조금씩 균형이 무너져요. 대화의 주제도 뜬금없이 전환되는 경우도 많고요. 앉아서 진득하게 대화하고 싶은데, 화제는 급변하고 서로의 관심사도 다르죠.

나쁜 게 아니에요. 단지 제 대화 기술이 다수의 모임에서는 별 소득이 없을 뿐이죠. 그런 점에서 저는 공연장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함께 음악으로 하나 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요. 여태 음악은 혼자 들어왔거든요.

결국 신년을 맞이하여 제 최애 밴드였던 보수동쿨러의 마지막 공연에 참석하려고 했어요. 음악으로 하나 된 시공간 속에 저도 조심스레 끼고 싶었어요. 그런데 말이죠. 티켓팅을 실패했네요.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하는 걸로.


📸 토요일 사진함

 🎞️ 우편배달부 두 명이 토요일에 마주한 순간을 공유합니다.

🌀 천재지변 시, 배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모래시계: 런던 하이드 파크를 산책하다 마주한 풍경. 평온하고 조용해요.
⏳ 모래시계: 런던 하이드 파크를 산책하다 마주한 풍경. 평온하고 조용해요.
👒 밀짚모자: 학교에 아기자기한 간판이 생겼어요. 나무랑 낙엽으로 글을 쓰고, 조명으로 테두리를 덮었네요. 
👒 밀짚모자: 학교에 아기자기한 간판이 생겼어요. 나무랑 낙엽으로 글을 쓰고, 조명으로 테두리를 덮었네요. 

✍️ 오늘의 한 마디

⏳ 모래시계: 유럽 일주가 시작되었어요.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은 런던을 거치고 브뤼셀에 머무르고 있네요. 우연의 일치로 호스텔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와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왔는데요, 처음 만난 사람과 스스럼없이 통성명을 하고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평소였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곧 헤어질 걸 알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일상에서 벗어난 자아는 이토록 자유롭고 색달라요.

👒 밀짚모자: 교환학생을 오면 영화를 덜 볼 줄 알았는데, 70편을 넘겼네요. 전부 일본 영화예요. 영어는 못 알아듣고, 일본어 자막은 속도에 부치거든요. 한국 작품은 배제했네요. 여기서 볼 수 있는 영화라면, 한국에서 무조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예전에는 일본어를 공부하려고 영화를 봤는데, 언제부턴가 사랑으로 변했나 봐요. 오타쿠가 돼 버렸어요. 망한 영화도 너무 좋아요. 도대체 모임을 왜 나가나요? 그 시간에 영화를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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