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두 번째 편지] "여름 생존법"

2024.08.24 | 조회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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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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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안녕하세요. 8월 두 번째 서문을 맡은 밀짚모자입니다.

저는 웬만한 인사를 날씨로 시작하는데요, 요즘같이 더운 날엔 투정을 부리기 쉬워요. 만나자마자 토라지면 꼴불견이죠. 그래서 거짓말을 한답니다. 폭염이 얼마나 끔찍하든, 깡그리 무시해요. 뻔뻔하게 “의외로 날씨 좋네?”라고 말해요. 얼굴엔 땀이 맺혀 있고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겠죠? 같이 웃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하순 편지 주제는 ‘여름 생존법’이에요. 생존이 필요한 계절이니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나요? 록 페스티벌은 즐기셨나요? 검정치마 여름 노래는 반복 재생하셨나요? 아니면 탄산음료를 쟁여두고 벌컥벌컥 들이켰을까요? 여름이라서 짜릿한 경험들이죠.

의외로 방법은 다양해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고요. 이번 호 원고를 교환하며 새삼 차이를 느꼈답니다. 저는 성숙한 인간일수록 차이에 끌린다고 믿어요. 여름 생존 전략이 좋은 ‘스몰토크’인 이유죠. 오밀조밀 마음을 담은 ‘스몰토크’는 전혀 작지 않거든요.


끌어안은 여름은 덥지만

👒 밀짚모자

이제 정치 얘기는 피할 수 없어요. 기후 위기 시대엔 날씨마저 정치적이니까요. 저는 상황이 마음에 들어요. 무해한 주제는 지루하잖아요. 정치는 세상에 필요하기도 하고요. 물론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죠. 생트집을 잡으며 싸움을 걸거나, 혼자서 폭주하면 위험해요. 저는 둘 다 전문가 수준이지만, 특히 후자가 대단해요.

“오늘 너무 덥다.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 여름은 점점 뜨거워지겠지. 기술 발전으론 극복할 수 없어. 전기가 부족해서 원전까지 짓잖아. 에너지를 안 쓰는 게 답이야. 근데 녹색당이 원외정당인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

안 그래도 더워서 짜증 나는데, 숨이 막히죠? 제 ‘추구미’예요. 사실 저는 눈치를 많이 봐요.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답니다. 올여름엔 ‘더위 대책’이 요긴한 주제였네요. 무더위 생존법을 공유하면 의외로 많은 정보가 드러나거든요. 정치적인 입장은 물론이고, 사적인 취향까지 묻어나요.

저는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어요. 더위를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세상과 마주하는 용기죠. 저는 집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아요. 땀이 많고 더위에 예민해 잠에 들지 못하더라도요. 잠 정돈 설쳐줘야 현대의 여름이라 할 수 있죠. 사실 힘들어서 제습기를 샀어요. 5만 원짜리 작은 친구로요. 물이 차는 걸 보니 작동은 해요. 제 몸이 둔한지 체감은 안 되네요. 그러다 제습기가 뜨거운 공기를 뱉는 현장을 목격해 좀처럼 쓰지 않게 됐네요.

필명이 밀짚모자인데요, 실제로 쓰고 다닌답니다. 햇빛을 막아주고, 패션으로도 예뻐요. 더위가 절정일 땐 양산도 유용하고요. 서점 마일리지로 우양산을 구매해 애용하고 있어요. 생뚱맞은 초록색이 매력적이에요. 크기가 작고 내구성이 약해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쉽게 뒤집어지는데, 그것마저 취향이에요. 당황하지 않고 바람을 반대 방향으로 이용해 우산을 다시 뒤집는 순간, 침착한 자의식에서 우아함을 느낀답니다. 고물에 익숙한 의연함도 멋지고요. 휴대용 선풍기를 사지 않는 이유예요. 위기에 대처하는 노련미가 안 보이잖아요. 전원이 꺼지지 않도록 보조배터리를 연결해 봤자, 주렁주렁 거추장스러울 뿐이죠.

낮에는 도서관으로 피서를 가요. 편한 용모로요. 한국은 외모주의가 심각하지만, 적어도 여름엔 자유로운 분위기가 허용됐으면 좋겠어요. 작은 사회 운동을 하고 있어요. 저는 외출하기 직전에 물을 뒤집어쓰고, 젖은 머리 그대로,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잠옷으로 입던 옷을 걸치고, 양산을 들고 나간답니다. 신나는 날에는 공유 자전거로 달려가고요. 여름 바람을 가로지르죠. 시원하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와 친구가 중요해요.

일본 여름 영화는 비교적 낭만적인 경우가 많아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시골 풍경을 천천히 쓰다듬는 드라마예요. 여름은 덥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죠. 반면 <썸머워즈>는 예쁜 그림을 빠르게 달려가는 애니메이션이에요. 컴퓨터 열기를 얼음물 페트병으로 식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어 저도 시도했어요. 선풍기 뒤에 얼린 페트병을 둬서 차가운 공기를 순환시켰답니다. 2시간 만에 다 녹더라고요. 귀찮아서 페트병을 쟁반 없이 방치했는데, 바닥에 물난리가 났더라고요. 여름이구나 싶었죠.

그에 비해 인간은 비관적이에요. 여름을 좋아하는 친구조차 더위는 힘들어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같이 고통받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얻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함께 거리를 걷다 보면, 땀으로 외모를 망칠 수 있는 계절은 지금밖에 없다고, 심지어 해가 오래 떠 있다고, 나름 멋진 추억이라고 생각하게 돼요. 실제론 욕밖에 안 하지만요. 욕으로 더위를 버틸 수 있다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잖아요.

곧 가을이에요. 여름이 끝나면 여름 욕도 못 해요. 그러니 우리, 남은 여름을 뜨겁게 보내면 어떨까요? 에어컨 없이 여름을 끌어안으면서요.


여름 드라이브

모래시계

여름, 좋아하시나요? 에어컨을 틀어놓고 이불을 덮는 일탈부터 짐을 잔뜩 챙겨 떠나는 바다 여행까지 할 수 있는 계절이죠. 사실 저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성숙하고 잔잔한 가을을 사랑해요. 여름은 끊임없는 움직임을 요구하는 계절 같아요. 휴양지는 사람으로 붐비고 에어컨은 지칠 줄 모르고 상시 가동되죠. 인위적인 추위와 미친 듯한 더위의 모순적인 공존이 실현되는 유일한 계절이에요. 이에 반해 가을은 봄과 여름 내내 열심히 달려온 우리에게 조금 쉬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주잖아요. 잠깐, 이거 저만 그런가요?

하지만 인생은 길고 앞으로 마주할 여름은 셀 수도 없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이 있듯, 이번 여름은 그저 조용히 보내기보단 나름의 추억을 만들기로 했어요. 날씨의 영향을 적게 받으면서 여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하다가 드라이브를 결심했습니다. 에어컨을 작동시킬 수 있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자유롭게 볼 수 있잖아요. 마치 정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 먹는 훌륭한 소금빵과도 같죠. 도둑질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드라이브의 매력은 바로 정해진 길이 없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이때만큼은 냉철한 내비게이션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를 필요가 없어요. 설령 잘못된 길에 들어서도 괜찮아요. 능숙한 택시 기사처럼 “길을 잘못 들어섰습니다. 조금은 오래 걸리더라도 양해 바랍니다”하고 스스로 되뇌면 될 일이에요. 늦게 도착해도 꾸중을 들을 일이 없고 어쩌면 아예 도착하지 않아도 되죠. 목적지는 제가 고르니까요.

드라이브를 할 때면 항상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은 드라이브에서 빠질 수 없는 감미료예요. 마치 약방의 감초 같다고 할까요. 저는 드라이브 전용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는데요. 아무리 귀찮아도 일주일에 한 번은 업데이트합니다. 이때 저는 꽤 신중하게 음악을 선정하는 편이에요. 가능하다면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음악적 기승전결’을 실현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구성하는 일과 닮았다고도 볼 수 있네요.

우선 첫 번째 트랙은 조용하고 잔잔해야 해요. 그런 다음 집에서 어느 정도 멀어져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에 다다를 때쯤, 그러니까 대략 여섯 번째 혹은 일곱 번째 트랙부터는 경쾌한 음악을 배치해요. 고개를 살짝 돌려보면 한강이 보이고 저 멀리 여의도의 스카이라인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죠.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즈음이면 다시 잔잔한 음악으로 돌아가요. 주차까지 마치면 드라이브는 끝에 도달합니다. 새로운 공간에 발을 디딜 때 차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의 제목과 아티스트가 떠오르고는 해요. 계속 기억에 맴도는 음악은 다음 플레이리스트 업데이트에도 살아남아요. 그렇게 드라이브와의 추억을 깊게 만들어가죠.

저에게 나름의 목표가 있다면 드라이브를 통해 이번 여름을 기억할 수 있는 음악을 찾는 거예요. 일종의 감각 기억을 활용하는 것이죠. 아직 제 마음을 송두리째 홀린 음악은 찾지 못했습니다만, 이를 명분으로 주말마다 드라이브를 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죠. 아무리 늦어도 나뭇잎이 노래지기 전에는 찾을 수 있기를 바라야겠어요.

감각 기억이 무엇이냐고요? 말 그대로 감각을 통해 느끼는 매우 짧은 기억을 말해요. 모든 사람에게는 감각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요. 바다 냄새를 맡고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놀던 적이 떠오르거나 TV에서 이순재 배우의 목소리를 듣고 <거침없이 하이킥>이 생각난다면 감각 기억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순간적인 감각 기억을 통해 관련된 장기 기억을 바로 연결한 것이죠.

감각을 통해 기억을 남긴다는 것. 참으로 멋진 진화론적 산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남은 여름을 어떻게 새기실 건가요?


✍️ 오늘의 한 마디

👒 밀짚모자: 밤하늘 좋아하세요? 저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예쁜지도 모르겠고요. 다만 별에 감탄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사랑해요. 지난 12일엔 페르세우스 유성우가 쏟아졌다고 해요. 1시간에 100개까지 보였다나. 저는 그날 밤 밖에 있었는데, 하늘을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어요. 사람 구경도 안 했고요. 유성우 소식을 흘려들었거든요. 아쉽지만, 설레기도 하네요. 제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 별을 바라보며 즐거워했잖아요. 방금 스쳐 지나간 낯선 청년이 그런 사람일 것 같아요. 데이비드 보위의 ‘Starman’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죠. 오늘은 자우림 버전에 끌리네요.

모래시계: 한 달여 만에 만년필을 집어 들었어요. 펜촉의 잉크가 모두 말라버렸더군요. 제 마음 한구석엔 ‘만년필은 거창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써야 한다’는 무언의 규율이 자리 잡고 있어요. 이유는 당최 모르겠어요. 거창한 목적의식이 무엇인지도 설명하기 힘드네요. 계속 고민하다가 왠지 모를 반항심이 생겨 오랜만에 만년필을 꺼내 의미 없는 낙서를 이어갔지요. 아, 헤밍웨이는 만년필보다 연필을 즐겨 사용했다는데 서랍에 고이 모셔둔 스테들러 연필이 괜히 생각나네요. 한 자루만 깎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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