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8월 첫 번째 편지 인사말을 맡게 된 모래시계입니다.
스쳐 지나간 사람에 대해 그리워한 적 있나요? 혹은 아주 오래전에 멀어진 사람을 최근에 만난 적이 있나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쉽사리 잊히지 않기 마련이죠. 그럴 때마다 먼저 연락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방해가 될까 망설이곤 해요.
8월 첫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인연’입니다. 뻔한 말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 정해진 방법은 없어요.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행여나 틀리지 않았는지 노심초사해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걸까요?
잠시 경직된 마음을 내려놓고 갓 나온 따끈따끈한 글을 천천히 읽어볼까요. 어느새 페이지의 끝에 다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지도 몰라요. 엉뚱하고 하찮은 연애부터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을 사랑하는 원숭이 이야기까지. 우리의 이야기는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어요. 마치 인연처럼요.
엉뚱한 이야기
⏳ 모래시계
여러분은 어디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시나요? 시끌벅적한 홍대? 화려한 강남? 저는 개인적으로 사람이 많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고즈넉한 카페에서 상대방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엉뚱한 이야기일수록 좋아요. 의례적인 이야기는 소모적이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찝찝함을 남기니까요. 붕어빵은 왜 겨울에만 파는 걸까? 유럽에서 양념치킨 장사를 하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요.
살다 보면 한 번쯤 너무 유치하지만, 무척이나 흥미로운 생각을 해본 적 있지 않나요? 아무에게나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친한 친구나 마음 맞는 사람에게 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생각. 저는 하도 많아서 잊어버린 적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하고는 합니다.
엉뚱한 이야기하면 저는 망원동 원숭이가 떠올라요. 물론 당연히 실제로 존재하는 원숭이는 아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서 영감을 받아 저의 상상력을 혼합하여 창조해 낸 피조물이랍니다. 망원동의 작은 가게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원숭이는 낮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는 가게 정리를 해요. 이때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을 틀어주면 좋아하죠. 재즈 음악을 듣는 원숭이. 흥미롭지 않나요?
이번에는 망원동 원숭이가 처음으로 유급휴가를 내어 덕수궁을 방문하는 에피소드가 떠올랐어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인간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명분으로 승인받았지만 사실 망원동 원숭이는 그냥 나들이를 가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그리고 무더운 여름 날씨 때문에 덕수궁 근처 고즈넉한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죠. 참고로 망원동 원숭이는 커피 대신 차를 마십니다. 자신과 카페인은 상극이라나 뭐라나.
이쯤이면 저의 상상력은 제 역할을 다한 것 같군요.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가 보죠. 얼마 전 홍콩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훈련소 동기 형을 만났어요.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각자 배치받은 부대로 흩어지던 날, 사회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지 4년이 지나버렸으니 오랜 세월이 흘렀네요.
맥주와 마른안주를 곁들이며 우리의 대화는 왁자지껄 끊이지 않고 이어져갔어요. 지난 세월의 공백은 자취를 감추었죠. 마치 4년 전 훈련소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캔자스주의 한 시골 지역에서 먹은 전형적인 미국식 스테이크에 대한 날카로운 논평부터 대학교 캠퍼스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푸드트럭 사업에 관한 구상까지, 참으로 엉뚱한 이야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형은 “한국에서 만난 모든 인연이 나에겐 소중하다”면서 예상치 못한 반가움을 전했어요.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갈 인연에 불과하더라도 그 사소한 인연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누군가 또한 존재하기 마련인가 봐요.
햇빛에 바래진 종이처럼 서서히 희미해지는 인연은 억지로 붙잡지 말고 기억 속에 묻어두는 것이 예의이겠지만 가끔 되살려내고 싶은 경우도 존재하죠. 엉뚱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아도 편한 상대라면 더더욱.
그럴 때는 소소한 일탈을 범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구나 요즘은 언제든지 여러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새삼 인스턴트 메시지가 꽤 유용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자, 이제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하고 싶었지만 지나간 세월의 벽에 막혀 망설였던 인연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자고요.
“잘 지내시죠? 저와 엉뚱한 이야기를 나눌 의향이 있나요?”라고요.
망한 데이트를 추모하며
👒 밀짚모자
저는 “사람 많은 곳 싫어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의심해요. ‘사람 많음’의 기준이 지나치게 관대하거든요. 움직이기 힘든 밀집도, 대화를 방해하는 소음은 누구나 싫어하지요. 편안한 장소는 기본이에요.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한다면, 차분하지만 사람이 많은 상황까지 공격할 용기가 필요해요.
‘사람 많음’을 ‘약속 하나에 세 명 이상이 모이는 경우’로 정의하면 어떨까요? 세 명부터는 대화가 깊어지지 않으니까요. 마음에 숨겨놓은 얘기, 사소하지만 나누고 싶은 감정은 통하지 않아요. 서로를 마주하는 위로는 불가능하죠. 모여서 놀 수 있을 뿐이에요. 때로는 ‘뇌를 텅텅 비우는’ 놀이가 필요하지만, 체력 소모가 심해 금방 지치죠.
연애를 시작하더니 모든 대화를 연인 뒷담화로 마무리하는 친구가 있나요? 저는 그런 친구가 최악의 연애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둘이 나누는 진한 관계가 낯설기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뿐이에요. 인간관계는 찌질하고, 스트레스의 근원이며, 삶의 구원이니까요. 저는 오랜 기간 솔로지만, 연애에 긍정적이에요. 둘이 맺는 관계가 소중하거든요. 당대는 친구 한 명에게 전할 소식조차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카톡방 메시지로 단체 송신하잖아요.
하지만 연애 방식은 다양해질 필요가 있어요. 연애가 지겹고 뻔하다는 생각 해보셨나요? 이성애 문화는 의례로 가득해요.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 가고, 사진 찍고, 놀이공원 가고, 100일 선물을 교환하고, ….. 그야 데이트는 반복되죠. 오래 어울린 친구와도 매번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얘기를 하잖아요. 다만 우정에선 이런 불만이 적어요.
문제는 분위기예요. 연인이라면 응당 나눠야 할 대화, 다정한 상호작용은 종종 쓸쓸함으로 이어지죠. 마음에서 나오는 배려인지,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의무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둘이 맺는 관계지만, 전형적이죠. 사랑하는 관계라면 의례 따윈 필요 없어요. 카페에 죽치고 앉아 대화만 나눠도 황홀하니까요. 서로가 생활에 필요하고,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데이트 코스 따윈 사소하잖아요.
사실 저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어요. 의례적인 데이트를 못 견뎠네요. 사랑은 사적이고 특별한 관계일 텐데, 대화가 진부해요. 제 감정을 의심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이상한 대화를 유도해요. 솔직하며 부끄럽고 오글거리는 주제로요. 상대는 부담스러워하고요. 세상이 잘못되지 않았나요? 깊고 질척거리는 관계가 더 아름답지 않나요?
예전에 한승태 작가의 글을 읽으며 크게 공감했는데, 같이 읽어 보시죠. ”유난히 연애 운이 없던 어떤 작가는 연인을 찾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자신의 치부부터 털어놓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투덜댄 적이 있다. 그러니까 카페라떼 두 잔을 사이에 둔 채 머뭇대는 두 사람이 날씨나 영화 얘기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저는 지금도 엄마랑 한 침대에서 자요"라든가 "헤어진 여친(또는 남친)이 지난주에 아랫집으로 이사를 왔어요" 아니면 "저 작년 5월에 2번 찍었어요" 같은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편이 궁극적으로 서로를 위한 길이라고 말이다.”(고기로 태어나서) 그러니까요! 제가 찾는 대화예요.
이 글의 발단은 덕수궁 근처 카페였어요. 친구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노먼 포스터 전시를 보고, 덕수궁을 산책한 이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셨죠. 세 곳 모두 커플로 넘쳐났네요. 답답해지더라고요. 미술관, 고궁, 카페. 모두 좋은 장소죠. 하지만 지루해요. 노먼 포스터만큼 유명하고, 덕수궁처럼 역사가 깊으며, 말차 스무디보다 달콤해요. 꼭 그래야만 할까요? 엉뚱하고 하찮은 연애는 없을까요? 저는 영원히 짝사랑만 해야 할까요? 억울해서 진정이 안 되네요. 화를 못 참아서 그들이 따분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 예단해버렸네요. 이러면 안 되는데….
✍️ 오늘의 한 마디
⏳ 모래시계: 장마 기간 내내 카메라를 집에 고이 모셔두었어요. 제 실력이 부족한 탓인지 흐린 날씨에는 도무지 사진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더라고요. 물론 화이트밸런스를 조절하면 될 일이지만요. 아무튼 드디어 끈질겼던 장마가 물러나고 무더운 더위가 시작됐어요.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올해의 여름을 담아볼 예정이에요. 저에겐 습한 날씨보다 더운 날씨가 차라리 좋아요. 사진을 찍을 때 최고의 조명은 바로 햇빛이니까요.
👒 밀짚모자: 이상한 장마가 끝나더니 끔찍한 폭염이 이어지네요. 데이트고 고궁이고 모두 잊은 채 집에 머무르고 싶은 날씨예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면서요. 다들 더위 대책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휴대용 선풍기를 지참한다든가, 밀짚모자를 뒤집어쓴다거나, 텀블러에 얼음을 담는다거나, 여러 방법이 있겠지요. 양산도 좋겠네요. 저는 영화를 보고 있답니다? <썸머 타임머신 블루스> 같은 일본 여름 영화를 보다 보면 여름이 낭만적인 계절로 변하거든요. 여러분이 더위마저 사랑할 마음을 갖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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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_balance
예전에는 진지하게 에너지를 쏟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대화를 했지만 모래시계님 일화처럼 약간은 실없는 망상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는 게 즐겁습니다. 밀짚모자님처럼 많은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둘만 만나서 서로에 집중하는 것도 좋고요. 뭔가 남 이야기 같지 않아서 좋습니다. 저의 경우, 요즘 제 인간관계와 관련된 내 단상을 적자면 이렇습니다. 1. 모든 사람과 다 원만하고 비슷하게 관계를 맺을 수 없다. 2. 어떤 사람이든 계속 친할 수 없다. 그렇기에 기간제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 순간을 적당히 잘 지내기. 3. 그럼에도 나와 적당히 관계를 스쳐간 모든 인연들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정답은 없겠죠. 인연은 결국 각자의 몫이니까요. 여러모로 최근에 든 단상과 일치하거나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라서 반가웠습니다. P.S. 그나저나 이 레터는 뭔가 감도가 있네요. 다만 뉴스가 없는 뉴스레터라, 포스트모더니즘하기도 하고요 ㅋㅋ.
토요일 우편함
인연은 결국 각자의 몫이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만나는 순간을 적당히 잘 즐기다 보면 어느새 인연은 더 가까워지더라고요. P.S. 뉴스없는 뉴스레터! 냉정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보다 따뜻하고 사소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이것이 본래 추구하던 목적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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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준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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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사장
재밌다 이런 비슷한 베이스! 어쩐지 연결돼 있는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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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piece._.me
모래시계님 글 잘 읽었습니다. 엉뚱한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오고가는 엉뚱한 대화가 참 좋은데, 사실 엉뚱한 생각을 하는것조차 제게는 어려운것 같아요.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여유가 없어지고, 타인의 감정에 무심해지고… 더불어 책을 읽을 시간마저 부족하니 문학적인 상상력이 점점 고갈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엉뚱한 생각을 하는 엉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게 좋아요.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들, 다소 유치하고 사소하다고 여겨 생각하기를 포기한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주잖아요. 엉뚱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날이네요. 밀짚모자님 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전반적으로 공감하지만,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몇 자 적어보려해요. 사랑하는 관계라면 의례 따윈 필요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정도가 지나치게 의례에 집착하는 연애문화는 저도 반대합니다. 내부의 결속이나 안정성이 적을수록 의례에 기대는 경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의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수많은 연인들이 비슷한 의례를 답습하지만, 그럼에도 연인들의 의례는 다 다르고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의례를 수행하는 사랑하는 관계들이 모두 상이하기 때문이죠. 말씀하셨던것처럼 연인은 너무도 사적이고 또 특별한 관계잖아요? 결국 모든 연인들은 다르고, 모든 사랑이 다르듯 연인 사이의 의례 또한 겉으로는 전부 유사해보여도 미묘하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저를 지나온 모든 연인 상대가 비슷하지 않았고, 저 역시 시간을 지나오며 계속 변화하는 몸이기에 그런 변화하는 몸과 몸 사이의 관계에서의 의례는 결코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늘 비슷한 데이트코스를 유랑하는 연인들의 모습을 지적한다면, 왜 우리의 데이트는 늘 특별해야만하나요? 당연히 연인들은 고궁, 놀이공원, 미술관만 가지 않습니다. 집 앞 카페를 가도, 도서관을 가도, 편의점에 앉아 라면을 먹어도 행복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보다도 더 다양한 장소에서 데이트를 하는건 오히려 그 사람이 사소하지 않기에, 특별하기에 그런 공간을 갈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을 내는거죠. 결코 사소하지 않은 수많은 연인들의 사랑을 의례적이고 진부하며 따분하다고 단정하는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의례는 조성될 수 밖에 없어요. 같이 피씨방을 가는 친구와는 의례적으로 늘 같이 가던 피씨방을 가고, 같이 수다를 떠는 친구들과는 의례적으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되죠. 관계 내에서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비슷하다면 의례는 자연스럽게 조성됩니다. 같이 공부를 하는 연인과는 종종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테고,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길 좋아하는 연인과는 종종 전국 여러군데를 방방 돌아다닐테구요. 그런 의례성이 오히려 연인의 독특한 정체성으로서 규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연인은 서로의 좋은 점만 공유하지 않아요. 서로를 점점 가깝다고 느끼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연인이 서로의 더러움과 치부를 목격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연인은 서로의 치부를 공유하기에 오히려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죠. 처음부터 치부를 드러내야한다는 말은 와닿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치부를 드러내지 않잖아요. 오히려 점점 시간을 거쳐 깊은 관계가 되면서, 타인 앞에서는 너무도 유치하고, 사소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연인에게는 마음껏 할 수 있는거죠. 그래서 사랑이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비슷해보이는 의례 속에서도 우리는 다른 존재로서 의례를 수행하거나, 비슷한 의례에도 조작을 가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이렇게 보면 의례적인 사랑에도 희망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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