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 번째 편지]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데"

2025.07.12 | 조회 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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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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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7월 첫 번째 인사말을 맡은 모래시계입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한동안 러브버그가 유행했어요. 대략 1~2주 정도 (비교적) 잠깐 번성하다가, 7월 초에 들어서는 대부분 사라진 것 같은데요, 점점 출몰 지역이 확장되고 있어 걱정스럽네요.

다행스러운 점은 러브버그의 천적이 하나둘씩 생겨났다는 점이에요. 참새나 까마귀 등이 천적이 됐다고 하네요. 외래종인 만큼, 천적들이 먹이를 인식하는 데 과도기가 필요했나 봅니다.

생각해 보면, 배움을 지속하는 주체는 비단 인간에 국한되지는 않는 듯해요. 참새도 러브버그의 존재를 학습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편지의 주제는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데'입니다.

배움의 과정은 겸손의 과정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아는 게 많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고, 모르는 게 많다고 울적할 필요도 없죠. 중요한 건 '어제보다 성장한 나 자신'이니까요.


스펙에 안 남는 공부

👒 밀짚모자

2023년 2학기, 저는 갑작스러운 휴학에 돌입합니다. 지인이 묻더라고요. “휴학하고 뭐 하게?” 다른 학생들은 스펙을 쌓으려고 휴학계를 제출하니까요. 대답하지 못했죠. 뭘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피곤해서 쉬기로 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도피형 휴학’이라 불리더라고요.

회피는 인간의 조건이에요. 모든 상황에 맞서면, 닳고 소진돼요. 일론 머스크 같은 이상한 사람이나 행복하죠. 사회가 요구하는 인생관은 대다수에게 안 어울려요. 소위 ‘자기계발’에 천착하는 삶은 자신과 주위를 지치게 해요. 지구도 파괴하고요. 예를 들어 근육을 키우는 ‘헬스’는, 지나치게 많은 고기를 ‘고단백 식단’으로 포장해요. 그러나 당대의 바람직한 인생은 겸허하고 얌전한 생잔(生殘)이에요. 적당히 먹고 가볍게 운동하거나, 획일적인 미의 기준에 딴지를 걸어야 해요.

저는 극단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보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따라가고, 일본어를 연습하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어요. 중간중간 가사 노동을 끼웠고요. 격일로 가벼운 맨몸 운동과 달리기를 즐겼네요. 시간이 남질 않더라고요. 약속은 거의 안 나갔어요. 덕분에 취업 준비가 늦어졌지만, 만족스러워요. 1년의 목적 없는 공부는 저를 비약적으로 성장시켰거든요.

당시의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예전에는 일주일에 책 한 권 못 읽었는데, 이제는 어떻게든 독서 시간을 확보해요. 평생 이렇게 살려고요. 직업 선택의 기준도 변했어요. 돈이든 스펙이든, 사소해 보여요. 공부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쾌락이에요. 성질상 끝이 없어요. 모든 지식은 맥락적이고, 차이는 앎의 기반이니까요. 배우면 배울수록 무지가 확장돼요. 무식은 배움의 결과이고, 가능성이에요. 다음은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이에요.

“여러분, 나누면 되게 손해 보는 것 같죠. 근데 공부는 나누면요, 훨씬 더 잘하게 돼요. 공부의 참 묘미야. 그러니까 '도구' 중에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소유하고 나누고 사람을 돕고 지구도 살리는 유일한 것—그것은 언어, 지식, 인식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내 것인 동시에 사회적 자원이라는 겁니다.”

종종 친구들은 제 삶을 ‘갓생’이라고 칭해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사회적 ‘생애주기’에 따라 ‘갓생’의 내용은 달라지니까요. 대학교 1학년이면 몰라도, 저는 2년 6개월을 휴학한 막학기 대학생이었어요. 취준과 관련 없는 일과를 반복하면, 명백한 ‘망생’이죠. 관건은 존엄하고 만족스럽게 망하는 윤리예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절망에 빠질 것 같진 않아요. 서로 망한 인생을 비교하며 자랑할 수는 있겠죠. 반면 ‘갓생’ 콘텐츠는 절망적인 감상을 남겨요. 조급한 마음을 부추기게 되거나, 단순하게 기가 빨리죠. 저는 압도적인 후자예요. 경멸을 시작하니, 끝없이 냉소하게 되더라고요.

성과를 쏟아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스펙에 남지 않는 자기계발이 유행했으면 좋겠네요. 행복이 크게 늘진 않더라도, 고통이 경감되니까요. 저는 공부를 나누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요.


미국 국립공원 산불 감시원

모래시계

자기계발, 좋아하시는지요?

저는 좋아합니다. 게다가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으니, 무언가에 쫓기듯 부리나케 아침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죠. 그 여유로운 아침 시간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봄 학기 내내 일부러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등교했어요. 9시 수업이 있는 날에는 8시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는 도서관 로비에서 책을 읽는 경험은 정말이지 최고였네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가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을 독서나 명상으로 예상해요. 안타깝지만…틀렸어요. 저는 일어나자마자 토스 앱을 켜고 앱테크를 하거든요. 조금 웃긴 일이에요. 도파민 디톡스와도 거리가 멀죠. 하지만 아침이 꼭 신성할 필요는 없잖아요. 더구나 저는 생각이 무지하게 많아서 명상하고 싶어도 잘 안되는 편이에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일어나서 30분 동안 명상을 한다는데, 저는 도무지 그 원리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미라클 모닝'이 유행했어요. 지금도 유행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갓생'을 살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은 확실해요. 하지만 저는 묻고 싶어요. 무엇이 남았나요?

꼭 무언가를 남길 필요는 없지만—자칫 성과주의나 결과주의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으니까요—적어도 돌아볼 필요는 있죠. 이른바 '퇴근 후 자기계발 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수많은 러닝 크루가 결성되었어요. 그리고 막 생겨난 유행의 틈 사이로 온갖 마케팅이 비집고 들어왔죠. 한바탕 유행이 지나가면, 남은 것은 광풍의 흔적뿐이에요.

하지만 저는 동시에 매우 조심스러워요. 어쨌거나 열심히 살겠다고 하는 그 마음가짐은 너무 소중하니까요. 그래서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어요. 대신 제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하루키는 달리기 열풍이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달리기를 즐겨 했어요. 최근에 저 역시 달리기를 시작했기에, 문득 그의 마라톤 기록이 궁금했어요. 하루키의 최근 기록은 2022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마라톤이고, 이곳에서 그는 6시간 57분 30초로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세월의 매정함이 미웠지만, 어쨌거나 완주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어요. 하프 마라톤도 아니고 풀 마라톤인데 말이죠.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달리기 그 자체에 집중한 거예요. 어쨌거나 하루키는 달리기를 사랑하니까요. 그렇다면 자기계발의 진정한 의미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디선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직업을 소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직업은 바로 미국 국립공원 산불 감시원인데요, 최소 몇 개월 동안 인간의 흔적이 전혀 없는 산속의 감시탑에서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도 한동안 생각해 봤는데요, 급여가 적더라도 지원할 의향이 있어요. 지난 몇 주 동안 외출을 최대한 자제하며, 집에서 할 일을 묵묵히 처리하는 것에 푹 빠졌거든요. 반복되는 일상에서 큰 힘을 얻고 있는 요즘이에요.

"뭐 하고 지내?"

제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예요. 분명 저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남에게 설명할 정도의 일은 아니거든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취업 준비를 하거나 공부하고 있다고 적당히 둘러대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어요. 매일매일 수행하는 일련의 루틴은 도움이 된다는 걸요. 아침에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 주말에 영화 한 편을 꼬박 챙겨보는 것,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달리기를 하는 것.

저는 천천히 흘러가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물론 세상은 제 바람 따위 눈곱만큼도 관심 없겠지만, 적어도 저는 저만의 세상을 구축할 수 있죠. 단단한 내면을 길러야 하는 이유예요.


📸 토요일 사진함

 🎞️ 우편배달부 두 명이 토요일에 마주한 순간을 공유합니다.

🌀 천재지변 시, 배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밀짚모자: HS를 중심으로 넷이서 사랑을 나누나 봐요.
👒 밀짚모자: HS를 중심으로 넷이서 사랑을 나누나 봐요.

✍️ 오늘의 한 마디

👒 밀짚모자: 더위 대책으로 드라마 <수박>과 애니메이션 <쓰르라미 울 적에>를 봤어요. 저는 옛날 일본의 여름 풍경을 좋아해요. 영상화된 매미 소리와 아지랑이는 폭염을 견디는 비법이에요. 실내 풍경도 유용해요.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서, 에어컨 없이 선풍기만 약하게 틀어놓았는데, 사람은 가벼운 옷차림이고, 고양이가 성큼성큼 돌아다니면, 끔찍한 더위는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닌 견뎌야 할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꼭 에어컨을 틀어야 할까요? 전력을 덜 쓰는 생활이 필요한 시대예요.

모래시계: 유튜버 'haha ha' 님의 영상을 연달아 보고 있어요. 양어장을 운영하면서 고양이들을 키우는 삶의 모습이 흥미로워요. 채널 초창기 때부터 봐오다가 유튜브 시청 기록을 꺼버리면서 한동안 잊고 살았어요. 구독을 안 했거든요. 이곳의 특징은 고양이가 무수히 많다는 점인데요, 이른바 '냥계도' 영상까지 있을 정도예요. 마치 가족 시트콤을 보는 듯해요. 저는 많고 많은 고양이 중에서도 '삼색이'와 '무'의 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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