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6월 두 번째 인사를 맡은 밀짚모자입니다.
다시 장마철이에요. 저는 비바람을 좋아해요. 외출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소음도 묻히거든요. 비에 젖은 옷은 불쾌하지만, 꿉꿉한 촉감은 여름을 통과하는 시간이 얼마나 어려운지 암시해줘요. 더위에 심각하게 약한 저에게는 잠깐의 휴식처럼 느껴져요.
언제부턴가 폭우 소식이 당연하다는 듯 들려와요. 폭우는 재해예요. 제가 장마를 낭만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재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집에 있으면 괴로워져요. 여름이 특히 힘드네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요. 움직이면,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지죠. 가사 노동이 고역이에요. 눅눅한 바닥에서 무릎을 끓고 걸레질을 하면서 신세 한탄을 피하기는 불가능해요. 우울하면, 삶이 감당이 안 되는 기분에 사로잡혀요.
이번 호 주제는 ‘인생에서 살아남기’예요. 저희는 모두 문과고, 길게 휴학했어요. 졸업을 앞두고 진로가 막막하답니다. 존엄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죠.
정희진 선생님은 “삶의 의미는 인간이 묻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몸부림이,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이다.”라고 썼어요. 이 글은 그런 허우적거림의 흔적이에요.
밤 9시 이후 떠오르는 삶에 관한 생각을 절대 믿지 마
⏳ 모래시계
한창 방황하고 있던 스물세 살,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봤어요. 맥주 한 잔을 들이켠 덕에 정신은 약간 몽롱했고 마음을 옥죄고 있던 구속력은 잠시나마 그 힘을 잃었어요. 그 순간 ‘나도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랍을 뒤져 메모장을 찾았고, 급하게 떠오른 생각을 휘갈겨 적었어요. 그 메모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데요. “요리사가 호스트가 되어 손님과 소수정예로 만담을 나눈다”라던지, “손님이 요리사가 되어 음식을 준비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네요.
미래는 막연히 두려워요. 세계는 깨끗하지 않음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고,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어요. 개인으로서의 무기력함이 절정에 달한 시점인 듯하네요.
누구나 그렇듯, 갑작스레 뭐 먹고 살지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와요. 특히나 오밤중이라면 빈도가 더욱 증가하죠. 예전에는 그대로 걱정에 휩싸여버렸어요. “내 장래는 너무나도 어두워서 지금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중얼거리면서요. 실제로 그때의 제가 적은 문장이에요.
취준을 앞둔 지금의 저는 오히려 정반대로 변했어요. 안개처럼 뿌연 걱정이 찾아오면 우선 다음 날 아침에 생각하자고 다짐해요. 친구가 보내준 짤을 보고서는 용기를 얻었죠. 그 짤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Never trust how you feel about your life past 9 PM(밤 9시 이후 떠오르는 삶에 관한 생각을 절대 믿지 마).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면, 피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잖아요.
누군가 하루키를 향해 ‘그의 가치관과 그때의 시대정신이 같았기 때문에 작가로서 성공한 것’이라는 평을 남겼어요. 맞는 말이에요. 많은 평론은 하루키가 그 당시 청춘이 겪었던 공허와 상실감을 대변한다는 식이지만, 사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한 바를 성실하게 쓴 것뿐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사실 저는 당황스러워요. 지금도 시대정신이란 게 있을까요? 시대를 관통하여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자리하는 일종의 천명(天命) 같은 것이 있을까요? 설령 있더라도, 제 삶과 시대정신이 비슷할 수 있을까요? 아마 저는 영영 알 수 없을 거예요.
흔히 어른이 되는 과정을 ‘나는 옆 사람과 다를 게 없구나’를 깨닫는 과정으로 보고는 하죠. 좋게 말한다면 겸손해지는 과정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무기력해지는 과정이에요. 하지만 이 둘의 구분은 아무렴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줄타기 능력이죠. 사회에 녹아들어가는 동시에 희망을 품는 것. 완전히 포기하지도, 완전히 무모하지도 않은 그 절묘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
개인이 세계를 향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자 반격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안타깝지만, 우리는 성실함의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어요. 그럴 땐 그냥 하는 수밖에요. 대신 천천히 축적된 하루하루가 모여 멋진 삶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겠죠.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냉철한 근거 따위 없으면 어때요. 때로는 이성을 잠시 뒤로 제쳐두는 순간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오직 공부만이 살길
👒 밀짚모자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 설문지에 ‘회사원’이라 적었어요. 회사원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몰랐고, 직종이나 업무에도 무관심했지만, 적당히 서류를 처리하고 싶었거든요. 안 친한 친구가 답변을 보고 웃더라고요. 무해한 웃음이었어요. 이후 저는 회사원을 고집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사회 운동인 것 같아요. 저는 엉터리 답안을 제출하며 제도 교육에 반항하고, 학우들은 옆에서 부추기고, 교사는 방관함으로써 참여했어요.
언젠가부터 ‘회사원’은 통하지 않았어요. ‘제대로’ 쓰라며 핀잔을 들었죠. 대안은 ‘공무원’이었어요. 대충 골랐는데, 완벽한 선택이었죠. 아무도 반박하지 않더라고요. 저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마음은 변하지 않았거든요. 공무원이 뭐 하는 사람인지는 전혀 모르고, 직종이나 업무에도 무관심하며, 고민 없이 숙제를 해치우고 싶었어요. 종이를 제출하면 쓸쓸해졌어요. 이젠 누구도 웃지 않거든요. 질문하는 사람도 없고요.
저는 만 25세인 지금까지도 진로를 모르겠어요. 조급하지는 않아요. 방황과 고뇌는 인생의 조건이니까요. 미래를 속단할 순 없어요. 저는 저를 잘 몰라요. 인체의 90%는 박테리아고, 인류의 유전자에서 비롯된 물질은 10%에 불과해요. 우리에겐 세균과 대화할 방법이 없어요. 무지는 인간의 전제예요.
다카시마 린은 『이불 속에서 봉기하라』에서 단일한 ‘나’를 거부해요. “나는 언제나 무수한 세균과 세포 들로 이루어져 있는 '통생명체holobiont'이며, 나의 내부에는 생물로서의 복수성(複數性)이 있다.”면서요. 멋지고 치열하며 명료한 문장으로 가득한 책이에요. 제목도 매력적이고요. 지나치게 묵직하진 않은데, 울림이 짙고, 치열하며, 귀여운 위로를 줘요. 저는 탈근대 철학이나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지인들에게 권한답니다.
저는 인간이 사랑을 추구하는 생물이라고 확신해요. 세계의 모든 행위자는 서로에게 얽혀 있기 때문이에요. 몸은, 환경에서, 타자와 지속적으로 엮여요. 무언가와 마주친 존재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관건은 윤리적인 조우예요. 독서가 필수적인 생존 전략인 이유예요. 다른 관점을 통과하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기술이거든요. 무지를 지적으로 확장하는, 그러면서도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우아한 방법은 드물어요.
20대 중후반에 진입하면서, 지인과 만나면 ‘뭐 먹고 살지’가 주제인 신세 한탄이 대화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어요. 문제의식에 공감해요. 제가 좋아하는 유행어는 ‘이번 생은 망했어’예요. 발음이 예쁘고, 자학적인 인상도 적어요. 망한 동료끼리 모이면, 기분도 나아지더라고요. 그러나 다른 관점도 필요해요. ‘이생망’이라면, 존엄하게 망쳐야 바람직해요. 각자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삶의 조건을 중심으로 사유하면 어떨까 싶어요. 제 답은 공부예요. 꾸준히 읽고 쓸 수 있다면, 빈곤한 생활은 사소한 문제예요. 지식은 대체할 수 없는 쾌락이에요. 오직 공부만이 살길이에요.
📸 토요일 사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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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 마디
⏳ 모래시계: 마지막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어요. 그런데 바로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눅진하고 축축한 날씨. 작년 이맘때쯤, 동료 밀짚모자와 만나 같이 글을 쓰자는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그 생각은 토요일 우편함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1년 가까이 꾸준히 원고를 교환하면서 같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Mazzy Star의 음악을 듣고 있어요. 습한 날씨에는 적적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니까요.
👒 밀짚모자: 애니메이션 <메카우데>를 정주행했어요. 별로였어요. <길티크라운>을 어설프게 따라했더라고요. 덕분에 <길티크라운> OST를 오랜만에 찾아 듣고 있어요. 2012년 당시 <길티크라운>은 ‘브금크라운’이라고 불렸어요. 작품은 망했지만, 음악만 좋다는 멸칭이에요. 저는 공감하지 않아요. <길티크라운>의 주제는 음악과 작화거든요. ‘브금크라운’은 기묘한 칭찬이고, 오역이에요. 특별히 좋아하는 삽입곡은 ‘The Everlasting Guilty Crown’이지만, 사실 ‘관련 곡’인 ‘雨、キミを連れて’(ame kimi wo tsurete)를 가장 사랑해요. Egoist가 본작의 스핀오프로서 발표한 앨범에 수록됐답니다. 마침 비가 내리네요. 저와 비슷한 시기를 공유한 오타쿠라면, Egoist와 Supercell에게 익숙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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