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7월 마지막 인사를 맡은 밀짚모자입니다.
갑자기 끝난 장마는 극한호우로 재개했고, 사이에는 폭염이 끼었어요. 러브버그는 급속도로 증식했고,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무언가 격변하고 있어요.
10대 이후 읽은 가장 긴 책은 『1Q84』예요. 2,000페이지 정도네요. 저는 도입부를 좋아해요. 정체된 수도고속도로의 택시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흐르고, 주인공 아오마메(푸른 콩)는 운전수의 조언을 따라 대피 장소에서 하차해 비상계단으로 내려가요. 비밀통로를 지나서 도착한 세계는 미묘하게 새로워요. 낮에는 외로움이, 밤에는 고양이가 지배하는, 달이 두 개 뜬 세상이거든요. 이제 1984년은 1Q84년으로 읽혀요. 기존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거든요. 전반적으로 서술이 상세하고 이야기가 늘어지는데, 이해할 수 없는 현상과 마주하려고 애쓰는 아름다운 문체라고 생각해요.
저는 토요일 우편함을 시작하고 머지않아 일본에 유학하러 갔어요. 한국에 돌아오고 학업을 이었고, 이제는 졸업했네요. 삶의 국면이 빠르게 변한 1년이었어요. 참고로 『1Q84』는 올해 2월 귀국길에서 고른 작품이에요.
예전과 달리 시간이 넘치지 않네요. 새로운 일을 벌이려면 기존의 일상과 작별해야 하더라고요. 성숙한 이별은 어려워요. 잘 헤어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예요.
이번 호 주제는 ‘작별 인사란 무엇인가’이고, 제가 쓰는 마지막 편지입니다.
이토록 다채로운 인사말
⏳ 모래시계
저는 인사를 능숙하게 하는 편이 아니에요. 특히 갑작스럽게 만난 경우에 더욱 그렇죠. 사실 인사 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문제는 그 이후에요. 도무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거든요. 내향인의 특징이라고 할까요. 지금은 나름 요령을 터득해서 "오랜만이네요"나 "무슨 일이에요?"를 쓴 다음,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요.
가장 이질적이었던 인사는 군대에 있을 적이었어요. 제가 있던 곳은 선임에게 "사랑합니다"라고 인사해야 했어요. 처음에는 입이 잘 안 떨어지더라고요. 평상시에 이런 말을 해봤어야 말이죠. 제 인생에서 하루에 수십 번씩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 건 아마 그 시절이 유일할 거예요. 아침에 몽롱한 정신 상태와 잠겨버린 목소리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한 경험은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아침 루틴이 애정 표현이라니.
이게 끝이 아니에요. 더 웃긴 건 인사에 대한 반응이었죠. 보통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최소한의 감정적 동요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인사와 반응은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되었어요. 제가 인사를 건네면 선임들은 대부분 무시하거나, 고개만 흔들었어요. 오글거림을 애써 참아가며 목소리에 힘을 주었는데도 말이죠. 적어도 제가 복무한 부대에서 '사랑'은 오직 저에게만 유효한 단어로 전락하고 말았네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두 인물이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헤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보통 한 사람이 다른 이를 불러 세우죠. "잠깐!" 그리고 갑자기 "그나저나 너 오늘 잘했어"라는 식의 뜬금없는 말을 해요. 그러면 상대방은 글썽이는 눈빛으로 대략 2~3초 동안 지긋이 바라보다가, 간단히 목례만 하고 다시 제 갈 길을 가요. 이윽고 카메라가 둘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비추면서 마무리되죠.
이걸 현실에서 시도한다면 어떨까요? 완벽히 재현하기는 어려우니, 상대가 먼저 인사를 건네면 지긋이 잠시 바라보기만 하다가 목례만 하고 등을 돌리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예의가 없어 보여요. 황당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왜 극 중에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질까요? 저는 사실주의 영화가 취향인 지라 이런 장면이 나오면 자꾸 마음에 걸리네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사는 (제가 한 건 아니지만) <프렌즈>의 로스가 건넨 작별 인사예요. 로스가 레이첼과 싸우고 집을 나서면서 "좋은 밤 보내기를"(You have a pleasant evening)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로스 특유의 옹졸함이 잘 드러난 명장면이죠.
어쨌거나 인사 뒤에는 이야기가 오갑니다. 저는 이전 편지에 심야 식당을 개업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실은 적이 있는데요. 그러고 보면 저는 듣는 걸 좋아하는 듯합니다. 각자의 이야기—그렇다고 징징대는 건 정말 싫지만—를 듣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 좋더라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판단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야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을 수 있고, 저도 사고의 유연성을 기를 수 있죠.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인사말이 궁금해졌어요. 특히 친한 사람과의 인사말이 궁금한데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사이에서는 인사말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가까운 사이에서는 그런 게 없잖아요. 뭐, 어쨌든 지금으로선 다양한 인사법이 있을 거라는 예상만 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기억과 재조합
👒 밀짚모자
저는 인사에 관심이 많아요. 잘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우연히 지인과 마주치면, 대개 퉁명스럽게 행동해요. 최근에는 “왜 여기 있어?”(대답은 듣지 않았음)와 “어?!”(반응만 보고 바로 지나침)로 대처했네요. 반가웠는데, 표현이 안 돼요.
도무지 늘지가 않더라고요. 예전부터 심각했어요. 군대에서 특히 곤란했네요. ‘적당히 빠져 있는’ 어투가 핵심인데, 도저히 붙질 않더라고요. 저는 선임을 대놓고 불편해하는, 어색하게 싸가지 없는 말투를 계발했어요. 오히려 간부가 편하더라고요. 선을 타지 않아도 되니까요. 전역 직전까지 ‘FM’ 경례를 유지했어요. 고민이 없죠.
가장 큰 고통은 청소년 시절이었어요. 애들이 영어로 인사하잖아요. 만나면서는 약간 껄렁대며 “하이”, 헤어지면서는 어중간하게 늘이면서 “바이” 하는데, 오글거렸어요. 대안으로 저는 “헬로”를 발명했어요. 어감이 매력적이에요.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누구도 따라하지 않더라고요.
요새는 “안녕?”과 “다음에 봐~”를 밀고 있어요. 거자필반(去者必返),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제가 집착하는 사자성어예요. 우리는 다시 서로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어요. 관계는 끈질기게 이어지니까요.
<노매드랜드>는 막막한 순간에 보기 좋아요. 정해진 거처 없이, 방랑하면서, 단기 일자리를 구하고, 캠핑카에서 숙식하며 살아남는 이야기인데요, 모든 등장인물의 태도가 아름다워요. 밥 웰스의 대사는 ‘진리’예요.
“이 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은 건요, 영원한 이별은 없다는 거예요. 늘 ‘언젠가 다시 만나죠’라고 해요. 그리고 실제로 만나죠.”
저는 이 대사가 좀 더 본질적인 은유라고 생각해요. 죽은 이후에 몸이 해체되면, 세계를 떠도는 비인간 물질이 되고, 남겨 온 흔적은 끝없이 순환해요. 저는 화장(火葬)보다는 매장에 끌려요. 나무 양분으로 쓰여서, 여생을 식물과 함께 보내고 싶어요.
<장송의 프리렌>도 기가 막히죠. 동료를 대하는 태도가 무해하고 다정해서, 감동적이에요. 프리렌은 친구와 담백하게 이별해요. “눈물을 흘리며 작별하면, 다음에 만났을 때 부끄럽기 때문”이에요. 멋진 대사예요. 재회를 확신하잖아요. 진중하고, 정성스러우며, 귀엽기까지 해요. 마냥 밝지만도 않아요. 지나간 인연을 아파하는 애도가 담겨있으니까요. 프리렌의 장송(葬送)은, 기억의 투쟁이에요. ‘기억하다’는 영어 단어가 깊어요. 죽어서 해체된 누군가를, 다시 합칠 수 있다(re-member)는 함의가 있으니까요.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매번 이름을 착각하는 작품인데요, 소개된 일화 하나를 절대 잊지 못해요. 작가님은 인터뷰를 마치며 언제나 “다음에 봐용”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기약한다면, 나라도 하루를 기꺼이 살아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글은 제 마지막 원고예요. 별다른 고민 없이 시작해서, 귀찮고 성가셔하면서도, 일 년을 지속했네요. 해요체로 문장을 적기는 정말 어려웠지만,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편지 문화가 확산되길 바라요. 다음에 또 만나요.
📸 토요일 사진함
🎞️ 우편배달부 두 명이 토요일에 마주한 순간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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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 마디
⏳ 모래시계: 재즈 음악을 탐구하고 있어요. 특히 존 콜트레인의 <John Coltrane And Johnny Hartman> 앨범을 자주 듣고 있는데요, 재즈의 매력은 조용한 존재감에서 비롯하는 것 같아요. 잔잔한 피아노 반주 위에 색소폰이나 트럼펫 연주를 덧입히고, 콘트라베이스는 브러쉬로 연주하는 드럼과 어우러져 묵묵히 리듬을 책임지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쿨 재즈를 좋아합니다.
👒 밀짚모자: 여름에는 잠을 자기 힘들어요.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세게 틀면요, 여전히 덥고, 가로등 빛이 침투해요. 선풍기 강풍과 취객들의 소음도 거슬리고요. 낮과 밤을 착각한 매미들이 방충망에 달라붙어 비명까지 질러요. 당연히 늦게 잠들죠. 곧 해가 뜨고, 새들이 활동을 시작해요. 덕분에 뻐근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인생의 조건은 고통이니까, 존엄하게 버티는 방법을 계발해야겠네요. 여름 영화를 더 볼까 싶어요.
토요일 우편함은 한 달 동안 쉬어갑니다
이후 모래시계가 편지를 계속 전달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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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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