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10월 말 인사를 맡은 밀짚모자입니다.
일교차가 크네요. 환절기 감기가 찾아오는 시기예요. 다들 방한 대책은 세우셨나요? 저는 따로 겉옷을 챙기기 귀찮아 셔츠 한 벌로 다닐 때가 많아요. 제가 있는 일본 니가타는 여전히 낮 기온이 21도까지 올라가거든요.
추운 밤은 힘드네요. 제 자취방은 환기가 안 되지만 바람은 잘 새는 놀라운 공간이에요. 난방을 싫어해서 한국에선 겨울에도 꿋꿋이 버텼는데, 벌써 힘드네요. 새벽에 잠을 설칠 때가 많아요. 창문에 ‘뽁뽁이’라도 붙이려고요.
이번 호 주제는 ‘음악으로 지휘하는 가사 노동’이에요. 가사는 귀찮지만, 안 했을 때 티가 나죠. 겉보기에 지저분하고, 실제로 위험해요. 더러운 집은 몸을 망가뜨리니까요. 심리적으로나 보건학적으로나 진실이에요. 스스로를 돌보려면 청소부터 해야 하죠.
언제나 기본이 어렵죠. 어쩔 땐 꿉꿉한 방에서 썩고 싶은 기분에 잠기고요. 하지만 우린 살아 있고, 어질러진 환경은 언젠가는 치워야죠. 그러니 미루지 말고 음악과 함께한다면 어떨까요? 한 곡 한 곡 음미하며 일상에 예술을 섞으면서요.
아까 바람 새는 방구석을 언급했어요. 새소년 ‘난춘’의 ‘바람새는 창틀’을 변용한 문장이에요. 저는 계절에 엇갈린 예술을 좋아해요. 의도에 반항하는 정신이 만족스럽거든요. 감상 경험도 독특해지고요. 이번 여름엔 ‘Antifreeze’에 설렜고, 가을엔 ‘난춘’에 빠졌네요. 지금의 저에게 ‘Antifreeze’는 얼어붙을 수 없는 폭염마저 사랑하는 결의고, ‘난춘’은 어지러운 봄의 흔적을 뒤늦게 더듬는 회상이에요.
여러분은 어떤 음악과 함께 하고 계시는지요?
음악과 팟캐스트와 가사노동
👒 밀짚모자
저는 ‘집안일’을 혼자 있을 때만 했어요. 누군가 옆에 있으면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아니면 이어폰을 꽂고 외부 소리를 차단했네요. 에어팟 광고처럼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었죠. 거대 기업을 ‘창의적으로’ 따라가는 신자유주의형 생존법이에요.
언젠가 정희진 선생님의 책에서 의아한 문장과 만났어요. ‘남자를 볼 때, 페미니스트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콘돔 사용과 방바닥 걸레질만 보면 된다.’ 같은 내용이었어요. 당시 전 ‘아싸 합격했다.’로 분석을 대체했네요. 한심한 감상이죠. 논점은 행위 자체가 아닌, 가부장적 남성성이니까요. 게으르고 자만하는 성격은 명백한 한국식 가부장이고, 애당초 저는 저자와 전혀 다른 환경에 끼어 있어요. ‘나 정도면 괜찮은데’는 안심이 아닌 경계의 신호고, 위기를 발명(發明)할 때 공부는 시작돼요.
지금 ‘나 홀로 청소 원칙’을 생각하면 서늘해져요. 마초적 남성성이 읽히거든요. 무릎을 꿇고 천천히 바닥을 닦는 모습을 숨기고 싶은 심리가 숨어있던 것 같아요.
인식이 성장으로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문제는 복합적이에요. 살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심리를 탑재해도, 결과는 비슷하거든요. ‘도파민’에 중독돼 있기 때문이에요. 설거지엔 틀어 놓을 영상이, 화장실 청소엔 흘려들을 팟캐스트가 필요해요. 저는 가사 노동을 시간 낭비로 치부하는 시각과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요?
멀티태스킹은 죄악이 아니에요. 반복 작업에 숙달되면 여유가 생기죠. 다만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제의 사악한 자기장엔 저항하고 싶어요. 건강도 걱정이네요. 잘 안 씻겨 더러운 그릇을 재사용하면 위험하잖아요. 영상을 보면서 식기를 닦으면 능률도 떨어지고요.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누르려면 고무장갑을 벗어야 하는데, 귀찮을 땐 처음부터 맨손으로 작업해요. 예전엔 절충안이랍시고 한 손에만 장갑을 끼는 묘수를 고안했어요. 창의적인 해결책이라 믿으며 한 달을 지속했는데, 극단적으로 비효율적이었어요. 어차피 버튼을 누를 땐 건조한 반대편 손을 쓰니까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는 듣기 싫은 언설이에요. 한편에선 인권이 갈리는 난장판을 자연화하고, 다른 한편에선 정돈되지 못한 정신을 정당화해요. 개념적으로도 게을러요. 바쁨과 현대와 사회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니 쉽게 말할 수 없죠. 저는 기본적으로 한가해요. 낭비하는 시간만 줄여도 일 년에 책 이백 권을 더 읽을 듯해요. 저는 사회가 뭔지 모르지만, 좋은 사회는 게으른 사람 또한 기꺼이 포용한다고 확신해요.
행간을 읽고, 심층에 들어가야죠. 청년 남성의 걸레질에 얽힌 가사 노동 평가절하, ‘도파민’ 중독, 건강 집착, 빅테크 의존… 머리가 아프네요. 현실이 추잡하면 생각도 번잡하게 해야 하니까요. 쉬운 결론은 나오지 않고, 언제나 처음으로 되돌아가요. 하지만 고민을 거쳐 돌아온 위치에선 출발한 위치와 전혀 다른 풍경이 보여요.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가 결정하니까요. 낑낑대는 마음이 숭고한 이유예요.
아직 저는 아무런 답도 얻지 못했지만, 작은 믿음 하나를 건져냈어요.
“음악과 팟캐스트는 ‘쉽게 들어도’ 위대하다.”
‘이지 리스닝’을 전유했어요. 다른 멀티태스킹과는 다르니까요. 신체가 피폐해지는 느낌이 덜하고, 본 작업의 효율도 유지돼요. 선곡은 예술을 지휘하고, 팟캐스트는 공부를 침투시키죠. 유선 이어폰은 우아한 아날로그 감성도 제공하고요. 영상은 잠시 미뤄두자고요.
루 리드의 음악을 틀어놓은 채
⏳ 모래시계
살다 보면 귀찮은 일이 자꾸 생겨요. 집안일이 대표적이죠. 하긴 해야 하는데 당장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미루자니 마음이 석연치 않아요. 체크 표시되지 않은 ‘투 두 리스트’는 결국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할 테니까요.
저는 집안일을 뿌듯하게 할 수는 없을지 궁금해요. 식기세척기를 구매하면 조금 괜찮아질까요? 하지만 집안일을 빠르게 처리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지 모르겠네요. 속도와 상관없이 집안일은 여전히 귀찮은 일로 남을 게 뻔하니까요. 그렇다면 과연 집안일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어쩌면 재정의해야 하지 않을까요?
집안일은 돈으로 환산되지 않아요. 그리고 이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우선 일반적으로 집안일에 화폐가치를 매기지는 않죠. 이와 동시에, 집안일은 말 그대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가질 수 있어요. 즉, 숫자로 쉽사리 치환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주말은 묵묵히 집안일을 수행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요. 밀린 빨래를 하고 방바닥의 먼지를 쓸어요. 그런 다음, 사진 현상소에 들러 한 주 동안 필름 카메라로 담아놓은 풍경을 인화해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사진을 검수하죠. 잘 나온 사진은 보관하고, 그렇지 않은 사진은 폐기해요. 달리 말하면, 히라야마의 삶에는 특별함이 없어요. 그런데 지극히 평범한 그의 일상이 여유로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히라야마의 여유로운 삶이 ‘불편함’을 포용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닐지 생각해요. 히라야마는 청소기 대신 빗자루로 청소하고, 사진은 언제나 필름 카메라로 찍어요. 빗자루는 비효율적이고, 필름 카메라는 현상하기 전까지 결과물을 알 수 없죠.
사실 청소기를 사용하면 훨씬 더 빠르게 청소할 수 있어요. 디지털카메라는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있고, 원한다면 간단한 보정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둘은 지나치게 단순해요. 청소기의 강력한 모터가 먼지를 빨아들이고, 우리는 그저 수동적으로 바라만 볼 뿐이에요. 디지털카메라는 이보다 더 심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0과 1의 가변적인 데이터로 변환하죠. 과연 여기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가 있을까요? 우리는 순순히 기계의 반복적인 수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불편하다는 말은,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뜻인 거죠.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성취해 낸다는 것. 히라야마의 일상은 성취로 가득 차 있었던 거예요. 그는 음악조차 알고리즘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자신이 차에서 들을 노래를 선정해요.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던 제 음악 취향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주말에 시간을 내어 방 청소를 했어요. 히라야마를 생각하며 청소기를 돌리고—집에 빗자루가 없더라고요—책꽂이에 쌓인 먼지를 털었어요. 더 이상 안 읽는 책들은 창고로 옮기고, 아래에 놓여있던 소설책들은 위쪽으로 올려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도록 했어요. 그가 자주 듣는 루 리드의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임했습니다. 생각만큼 뿌듯하고 보람차더라고요.
이걸 인생으로 확장할 수도 있어요. 매정한 말이지만 우리의 모든 나날이 항상 특별할 수는 없어요. 언제나 특별한 날을 추구한다면,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요. 특별함은 늘 예측 불가능함이 동반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 싶어요. ‘불안’ 대신 ‘불편함’을 느끼는 거예요. 그리고 첫 시작으로 집안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나른한 토요일, 소파에 앉아 밀린 빨래를 갤 거랍니다.
✍️ 오늘의 한 마디
👒 밀짚모자: 교환학생은 생각보다 바쁘더라고요. 외국어 수업을 따라가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요. 평일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보내요. 공부와 독서를 싫어하는 저로선 가슴이 답답해져요. 숨구멍이 필요하네요.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얘기하고 싶어요. 같이 영화도 보고, 맛집도 찾아가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직도 친구를 못 사귀었다뇨.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저도 믿기지 않아요. 지금 제 관심사는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에 극단적으로 제한됐네요. 아직까진 영화, 책, 음악, 여행으로 버틸 수 있는데, 2월까지 똑같이 살 것 같아 두려워요.
⏳ 모래시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은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될 만큼 놀라운 일이었어요. 저는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도서관이나 친구의 책을 빌려 읽었던 터라 막상 제 집에는 한강의 책이 한 권도 없더라고요. 이번 주말,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한강의 책 몇 권과 그동안 무심코 찜해둔 책들을 덤으로 샀습니다. 반갑고 역사적인 소식을 빌미로 ‘텍스트’가 다시 관심받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그나저나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품절이더라고요. 유럽 여행을 나서기 전에 읽어야겠다고 다짐한 책인데 말이죠. 결국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에서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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