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번째 편지] "한정됨의 미학"

2024.11.09 | 조회 225 |
0
|
토요일 우편함의 프로필 이미지

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첨부 이미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11월 첫 번째 편지 인사말을 맡은 모래시계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요. 작년 초부터 시작된 인공지능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네요. 소위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 시대를 선점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고 있어요. 구글 CEO는 “과잉 투자보다 과소 투자가 더 위험하다”는 말로 투자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지요.

아직 인공지능이 삶 깊숙이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지만, 이건 시간문제일 뿐이에요. 이제 주위에서 인공지능을 배우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말이 들려와요. 취준생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과제가 추가된 셈이네요. 모두가 전력을 다해 뛰는 세상 속에서 과연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제대로 대비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먼 숲을 바라보며 뛸 때, 땅바닥의 개미를 유심히 바라보며 걷는 건 어리석은 짓일까요?

이번 편지의 주제는 ‘한정됨의 미학’입니다. ‘한정’이라는 단어에는 묘하게 특이한 어감이 숨어 있어요. 마케팅 용어의 산물인 ‘한정판’을 자주 접해봐서 그런 걸까요. 비슷한 의미를 지닌 ‘제한’보다 좋은 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글을 통해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현 시대를 냉정하게 응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디작은 각자만의 미학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요.


가난한 ‘힙’의 윤리

👒 밀짚모자

사회 현상을 장단점으로 나누면 시간 낭비로 끝날 확률이 높아요. ‘장점이자 단점’은 진부한 수사법이고, 뻔한 진실이니까요. 위기(危機)는 위험이자 기회예요. 그러니 분석 대상이 아닌, 분석 맥락을 따져야죠.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가난은 고통이지만, 상황에 따라 자원이에요. 저는 지금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어요. 당초 계획은 지금까지 모은 천이백만 원을 반년 동안 탕진하고 귀국하는 삶이었는데, 절반도 못 쓸 것 같네요. 몸에 붙은 절약이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오랜 기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며 검소한 취향을 계발했으니까요.

여가 시간엔 책과 영화를 봐요. 마음이 흔들리면 글을 쓰고요. 글쓰기는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공부예요. 쓰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저는 일기조차 열 번씩 읽으며 퇴고해요. 애써 무시했던 부끄러운 자의식과 마주하죠.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사고는 얄팍하고, 감상주의에 빠진 비판은 헛돌아요. 분석적 주관을 바랐지만, 언제나 나르시시즘으로 끝나죠. 한심한 결말을 바꾸고 싶어 윤문에 윤문을 거듭해요. 그렇게 미약하게나마 치열해지고, 아주 조금 성장해요.

‘미니멀리즘’은 기후위기 시대에 부합해요. ‘핏’하게 들어맞고, ‘힙’하게 멋지죠. ‘힙의 윤리’라고나 할까요. 저는 정치적으로 묘한 위치를 점유해요. 착한 마음씨나 실천 의지는 없지만, 웬만한 진보좌파보다 친환경적인 일상을 보내거든요. 식생활에서 잘 드러나죠. 저는 마트 세일 날짜를 노리며 가장 저렴한 상품만 구매하는 소비자예요. ‘동물 복지 계란’은 쳐다도 안 보죠. 애당초 고기를 끊을 결단력도 없고요. 공장식 축산은 아프지만, 저에게 오는 ‘혜택’을 거부하진 못 하네요. 하지만 육류 섭취량은 적어요. 비싸거든요. 계란도 아껴 먹고요. 부족한 단백질은 두부로 채우죠. ‘짠내’ 나는 인생이니 음식물 쓰레기도 딱히 없어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은 아주 가끔 친구와 함께 할 때만 즐기고요.

능력주의를 체화한 인간은 도덕성까지 경쟁해요. 넘치는 정의감은 종종 오만하고 까다로운 인성으로 이어지고요. 중산층 지식인은 정치적 올바름을 공격적인 패션으로 장착해요. 교양과 여유와 자신감으로 주위를 낙담시키죠. ‘PC에 대한 피로감’은 이상한 언설이지만(피곤하다면 과로를 걱정해야 함), 건방진 기득권에는 맞서야죠. 맞선다는 단어는 과장이네요. 기운이 빠지는 시대니까요. 전술보단 생존전략이 필요해요. 저는 거만한 성격으로 살아남네요. ‘착한 소비’로 성찰을 대체하는 모습을 뻔뻔한 위선과 무식으로 단정 짓고, 반대로 동정해 버리죠.

넘치지 않는 적정량의 윤리가 필요해요. 맥락에 따라 실천이 다르죠. 빈곤한 사람은 존재 자체가 저항일 수 있어요. 저는 제멋대로 희망을 발견하네요. 저렴한 싸움은 시대의 흐름이에요. 독서, 달리기, 밴드 음악이 유행하잖아요. 우린 졸지에 ‘선구자’가 되어 있어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위축되지 말자고요.


양파절임과 얽힌 일

 ⏳ 모래시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죠. 좋은 의미를 담은 문장은 더욱 아니죠. 하지만 살다 보면 욕심을 내야 할 순간이 반드시 찾아와요. 이때 욕심은 용기와 치환될 수 있죠. 근데 어느 정도까지 용기를 내야 할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가 무모함과 비겁함 사이의 중용이라 말한 적이 있는데, 그에게 한번 묻고 싶어요. 무모함과 비겁함 그 사이 지점은 도대체 어디인지.

이를 의식했는지 몰라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제 물음에 대한 답변을 내놨어요. 그는 중용이란 고정된 규칙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우에 맞게 조정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판단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한때 철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그의 말은 지극히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의미 없는 말처럼 들리네요. 결국 상식에 맞게 행동하라는, 누구나 알 법한 내용을 주문한 것이니까요. 조금 더 일상적인 용어로 탈바꿈한다면, “눈치 챙겨”가 되겠군요.

최근에 쌀국수 식당에 갔어요. 그런데 쌀국수를 주문하면 같이 딸려 나오는 양파절임이 너무 맛있더라고요. 유일한 흠은 양이 적었다는 것뿐이었어요. 평소였으면 더 달라고 말했을 텐데, 그때가 마침 식사 시간대라 직원분이 엄청 바빠 보였어요.

역시 제 내성적인 성격답게 차마 더 달라고 말을 건네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주어진 양에 만족하며 식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쌀국수를 세 젓가락 먹을 때마다 양파절임을 먹는 것으로 나름의 규칙을 정했지요. 그렇게 생각보다 깔끔하게 먹을 수 있었어요. 식사하는 동안 양파절임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고요.

양파절임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있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접시 위에 올려진 많은 양을 보고 남길 걱정을 했을지도 모르죠. 속으로 ‘과유불급’을 외치며, 차분하고 훌륭했던 식사를 홀가분하게 마쳤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치기엔 아쉬우니, 조금 더 나아가보자고요.

바야흐로 적당함이 없는 시대예요. 숏폼 콘텐츠가 난무하고 이에 대한 반발심으로 도파민 디톡스 열풍이 불고 있어요. 알고리즘은 이를 더욱 가속화하죠. 물론 저도 자유롭지 않네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스포티파이가 만들어준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으니까요.

쉴 틈 없이 변해가는 세상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할까요?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디지털에 염증을 느껴 아날로그 시절로 회귀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죠. 저 또한 애써 적응해야 할지, 나름의 소신을 지켜야 할지 고민인 요즘이에요.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용기’가 필요해요. 그리고 그 용기 속에는 자신의 선택을 옳게 만들어갈 의지가 들어있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무모하게 보이더라도 용기를 내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이 있지는 않던가요? 이른바 ‘선택 장애’는 단순히 결단을 주저하는 게 아니에요. 결단 너머의 다가올 후회를 두려워하는 거죠. 하지만 후회는 지금 이 순간 존재하지 않아요. 아무리 지혜가 많은 사람이라도 미래는 절대 알 수 없으니까요. 그저 내린 결정을 옳게 만들어 나갈 뿐이에요.

양파절임에서 출발한 조그만 생각이 하나의 글이 될 줄은 몰랐네요. 만약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양파절임에 얽힌 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읽고 풀었을까요? 과연 그가 현대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진단할 수 있었을까요? 여러 가지 추측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저처럼 양파절임을 더 달라고 말하지 못할 일은 없었을 것 같네요.


📸 토요일 사진함

 🎞️ 우편배달부 두 명이 토요일에 마주한 순간을 공유합니다.

🌀 천재지변 시, 배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밀짚모자: 토요일 학교 도서관은 고요하고, 빗물이 튀는 나무 마루는 아름답죠. 하지만 제 촬영은 제 풍경을 포착하지 못 했네요. 
👒 밀짚모자: 토요일 학교 도서관은 고요하고, 빗물이 튀는 나무 마루는 아름답죠. 하지만 제 촬영은 제 풍경을 포착하지 못 했네요. 
⏳ 모래시계: 아빠와 인왕산을 등산했어요. 내려오는 길에 탱자나무가 있었는데, 왜 자꾸 모과 생각이 나는 걸까요?
⏳ 모래시계: 아빠와 인왕산을 등산했어요. 내려오는 길에 탱자나무가 있었는데, 왜 자꾸 모과 생각이 나는 걸까요?

✍️ 오늘의 한 마디

👒 밀짚모자: 두 극단 사이를 지우는 이분법은 폭력이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어요. 인간은 가지의 매력을 즐기는 미식가와 애써 무시하는 고집불통으로 나뉘어요. 저는 자취를 시작하며 ‘가지 러버’로 각성했어요. 풍미와 영양과 가격이 동시에 훌륭하거든요. 버터에 구운 훈훈한 가지, 된장에 조린 정겨운 가지, 고추장에 볶은 짜릿한 가지… 양념을 절묘하게 흡수하고, 본연의 수분기가 맛과 맛을 횡단해요. 저는 요즘 가지를 요리하며 아오바 이치코의 음악을 들을 때 우아한 행복을 느껴요. 지금 끌리는 레시피를 공유할게요. 간장과 고추장으로 볶은 가지 덮밥과 남은 소스로 급조한 스크램블 에그, 곁들이는 앨범은 <0>, 곡 하나를 고르라면 ‘Mars 2027’. 미국에서 끔찍한 뉴스가 있었지만, 그래도 살아야죠.

⏳ 모래시계: 요즘 들어 핸드크림을 챙기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푸석한 손등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선물로 핸드크림을 받고서부터 유용하게 잘 쓰고 있네요. 무엇보다도 향이 좋아요. 예전에 친한 선배의 집을 갈 때 디퓨저를 챙겨간 적이 있는데, 선배가 “보이지 않는 향을 선물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훌륭한 말이에요. 스컹크의 지독한 방귀(?)처럼 생존을 위해 향을 이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선물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 토요일 우편함은 여러분이 궁금해요. 댓글로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 토요일 우편함을 더 풍성하게 채워줄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주세요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토요일 우편함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메일리 로고

자주 묻는 질문 서비스 소개서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