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2월 첫 번째 편지 서문을 맡은 모래시계입니다.
저는 1월 초부터 한국을 떠나 유럽에 와있는데요, 한 달이 넘는 장기 여행이다 보니 마지막 행선지인 파리에서 덥수룩한 머리로 셀카를 찍게 될까 봐 약간 걱정입니다. 바버샵에 가자니 과연 제 머리 스타일에 맞게 자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신기한 건 체코로 교환학생을 온 제 친구도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네요. 여기서 궁금증이 생겨요. 털깎기는 오직 털깎기에 관한 것일까요? 친구와 저는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걱정에 휩싸인 것일까요?
이번 2월 첫 번째 편지의 주제는 “면도와 머리 자르기에 담긴 숨은 의미 찾기”입니다.
이번 글을 통해 우리 삶 속에 당연하듯이 자리 잡은 일종의 의식에 대해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생각을 파헤쳐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그 생각이 설령 공상일지라도요.
걱정도 잘라 주시나요?
⏳ 모래시계
면도, 좋아하시나요? 저는 수염이 안 나는 편인데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 수염이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수염이 잘 안 나기 때문에 면도를 불편하다고 느낍니다.
차라리 매일 같이 면도한다면 일종의 습관으로 굳어져 불편함을 느낄 일도 없을 겁니다. 나름 좋은 면도기도 구비해놓았을 거고요. 욕심을 부린다면 브라운 면도기를 구매하고 면도의 즐거움을 추구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런 습관도 들이지 못했고 전기면도기도 없네요. 적당히 좋아 보이는 면도날을 살 뿐이에요.
면도 주기는 따로 없고 수염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할 때 면도하기로 결심합니다. 왜 “결심”으로 적었냐면, 높은 확률로 까먹거든요. 항상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릴 때서야 거울에 비친 제 몰골을 보고 알아차리죠.
그럼 그때 바로 면도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어떤 대답이 가장 적절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알아차리는 것도 며칠 걸리기 때문이죠. 면도를 결심하고 최소 이틀이나 사흘은 지나야 비로소 깔끔한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면도 전후 차이는 별로 없어요. ‘오늘은 말끔하게 됐군’하고 의례적으로 되뇔 뿐이죠. 심지어 노래 한 곡 정도의 시간이면 끝나는 덕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겨를도 없네요. 그 순간 동안만큼은 오직 저와 면도날, 그리고 힘없이 잘려 나가는 수염만이 존재할 뿐이에요.
그래도 가끔 엉뚱한 생각이 날 때가 있어요. 언제는 인간의 털깎기와 고양이의 그루밍이 갖는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그런가 하면 갈매기는 사실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생명체가 아닌가 의구심을 품기도 했죠. 육지와 바다를 막론하고 자유로이 움직이니까요.
가벼운 생각을 할 때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에요. 한국의 내수 경제 활성화 방안이나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는 것은 굴착기로 땅을 깊게 파고드는 것과 같아요. 무척 어둡고 갑갑해서 빠져나오기 힘들죠. 이에 반해 적당히 재밌고 가벼운 생각은 들판을 거니는 것과 같아서 마음이 가는 대로 방황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공상은 대부분 말끔하게 종결되지 못하고 중간 지점 어디선가 방황하다 그만 잊혀버리고 말아요. 마치 신주쿠역에서 출구를 찾다가 길을 잃어버리는 것처럼요. 면도날이 제 기억 또한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것일까요.
면도를 하는 동안 걱정에 대해 생각하면 어떨지 궁금해요. 면도가 끝나면 그 모든 불안과 근심은 잘려나간 수염과 손을 맞잡고 하수구 어딘가로 흘러가겠죠.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 면도할 텐데. ‘오늘은 곧 있을 시험에 대해 생각해볼까, 그렇다면 내일은 불안정한 커리어에 관해 생각해야겠군’이라고 고민할 수도 있겠어요.
아이러니한 것은 면도 와중에 이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태 늘 그래왔듯, 마지막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전국 머리 직접 자르기 협회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밀짚모자
피부가 예민한지, 저는 니트를 못 입어요. 간지럽다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에요. 싫어하는 사람이 낡은 목장갑을 끼고 제 몸을 더듬는 촉각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목덜미가 특히 민감해요. 목폴라는 상상도 못 하고, 목도리조차 못 걸치죠. 목에 달라붙는 의류는 뭐랄까, 개인의 거리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지인 같아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우리’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가까우면 숨만 막혀요.
대개 한국 남자는 한 달에 한 번 미용실에 가요. 저는 어려서부터 미용실에 거부감을 느꼈어요. 자르기 직전이나, 자르고 2주 정도 지난 머리가 가장 예쁘게 보였거든요. 주위에 물어보면 다들 비슷한 의견이에요.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미용사의 실력을 탓할 순 없어요. 문제는 머리 자체보다는, 머리에 적응할 시간이니까요. 인지적으로 친밀해지고, 다듬는 감각을 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그래서 머리를 자르면 언제나 망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해요.
고등학생 때 풀었던 영어 문제는 의미심장했어요. “나 머리 잘랐어.”를 영어로 뭐라 할까요? 저는 “I cut my hair.”라고 답했어요. 틀렸다네요. 답은 “I have my hair cut.”였어요. 우리가 자르지 않고 미용사가 자르니까, 라는 단서가 붙었죠. 당시 깊은 깨달음을 얻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억울해요. 직접 자를 수도 있잖아요. 출제자의 상상력이 빈약해요.
미용실을 특히 두려워하던 저로선 다른 ‘매력적인 오답’을 내고 싶었어요. “I cut head.”라고요. 직역(?)하면 원문과 의미가 통하고,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일련의 과정은 머리(head)를 자르는 듯한 무게감으로 다가왔거든요.
1. 돈을 챙긴다. 2. 미용실까지 간다. 3. 가격을 본다. 4. 유리창을 통해 다른 손님이 있는지 확인한다. 5.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시간을 낭비한다. 6. 망설이다 힘들게 들어가서 어정쩡하게 “커트하러 왔는데요…”라고 말한다. 7. “어떻게 자를까요?”라는 뻔한 질문에 당황한다. 8. 오기 전에 찾아본 이런저런 스타일을 전부 잊어버리고 영양가 없는 대답을 급조해 낸다.
제가 유난을 떠는 것 같다면, 촉각 감수성이 둔감한 자신을 탓하세요. 사실 제 공포의 근원에는 미용실 가운이 있거든요. 목도리보다 심각해요. 목을 휘감는 변태 같은 침투는 문장을 쓰기만 해도 소름이 돋네요.
이제 저는 미용실에 방문하는 간격이 반년 이상으로 길어졌어요. 웬만하면 직접 자를 수 있더라고요. 신문지를 깔고 앉아, 태블릿 셀카를 바라보며, 싸구려 가위로 적당히 다듬어요. 결과는 언제나 엉성하지만, 나름의 개성이 생겨요. 어쩌면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세상이 요구하는 외모 기준을 엄격하게 따르기는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저는 주위에 셀프 미용을 권장해요. 자신의 털을 직접 관리하는 통제감이 만족스럽고, 외모주의에 균열을 내며 멋을 창출하고, 무엇보다 목을 지킬 수 있죠. 막상 시도해 보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아요. 매일매일 인중도 면도하는데, 머리털이 무서울 리가요.
📸 토요일 사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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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 마디
⏳ 모래시계: 유럽 일주도 어느덧 절반을 지나갔네요. 이번 여행을 통해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어요. 저는 향수병에 취약한 존재라는 점이에요. 아무 연고도 없는 해외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요구해요. 체코 프라하에서 제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벅찬 감정을 공유할 존재가 절실했네요. 그때까지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김사월의 <프라하>를 들으며 여행했어요.
👒 밀짚모자: 어제 학기가 끝났어요. 남은 기간은 니가타를 돌며 삶을 정리하고, 나고야를 여행하려고요. 슬프게도 저는 유학(遊學)보단 유학(留學)에 끌려서, 공부를 많이 해 버렸네요. 종일 도서관에서 보낸 날이 많아요. 늘 인간관계에 결핍을 느꼈는데, 결국 친구를 사귀지 못했네요. 저는 사람이 많은 자리를 무서워하는데, 교환학생에게 허락된 모임은 언제나 붐볐거든요. 운 좋게 기회가 생겨도, 극단적인 내향형이라 적응하지 못했어요. 아쉬워요. 매력적인 사람이 많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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