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11월 두 번째 편지로 돌아온 모래시계입니다.
지난 일요일에 올해 마지막 가을 구경을 하는 심정으로 북촌에 갔는데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어요. 서촌은 조금 한산했으려나요?
이번 편지의 주제는 '음악과 함께'입니다. 아주 오래전, 저는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마주한 문장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때때로 삶의 한 장면은 음악과 함께 기억된다."
저는 조금 더 나아가고 싶어요. 마주하지 않은 삶의 한순간조차 음악과 함께 기억될 수 있다고요.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현재의 희망이고, 우리는 희망을 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가죠.
이제 겨울을 준비해야겠습니다. 아무쪼록 사소하게 즐겨 주세요.
음악과 함께
결혼기념일마다 에릭 클랩튼의 'Wonderful Tonight'을 같이 들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결혼했냐고 묻는다면, 아니오. 결혼도 하지 않았으면서 결혼기념일 음악을 떠올린다는 게 우습긴 하다. 더 나아가서 아이가 생긴다면, 돌잔치에는 윤종신의 'O My Baby'를 틀어야 할 것 같고. 괜스레 그런 순간에 어울리는 음악들이 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더 후의 'Baba O'Riley'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꽤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폭발하는 기타의 강렬함이 묘하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예컨대,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여기 더 나은 삶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주인공이 있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지만, 여느 일반인과 다름없이 간혹 떳떳하지 못한 일에 눈감거나 본인이 그런 일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주인공은 일생일대의 꿈을 간신히 이뤄내고 마침내 홀가분한 기분으로 자신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운전을 한다. 그러다 우연히 과속하게 되고, 결국 덤프트럭과 충돌하여 현장에서 즉사하고 만다. 이때 더 후의 'Baba O'Riley'가 흘러나온다. 신시사이저 리듬이 반복되면서 강렬한 기타 리프가 흘러나온다. 가족은 행복하게 주인공을 기다린다. 아이는 창밖을 내다본다. 그러나 그는 끝내 도착하지 못한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끝내 눈을 감지 못한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허무한 끝맺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원래 인생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니겠어요.
알베르 카뮈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의 가방에는 미완성 소설 『최초의 인간』 원고가 들어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마약에 취해 스물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고, 존 레논은 자신의 광팬에게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참으로 허무하다. 정말이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한때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들을 좋아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좋은 친구들> 같은, 하드보일드하고 차가운 영화들. 폭력과 배신, 그리고 종국에는 허망함만이 남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지금도 그런 영화들이 싫지는 않다. 아니, 가끔 즐겨본다. 다만 예전처럼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음악의 시대적 의미나 완성도를 가늠하려고 애쓰면서 들었다면, 지금은 그저 조용히 음악을 듣는 게 좋다. 그렇게 각자의 취향이 다듬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1,001개의 앨범을 다 들을 수는 없다.
그러다 가끔 생각의 여운이 짙게 깔리면, 내가 유독 마주하고 싶은 작은 순간들을 상상하며 듣고는 한다. 아직 오지 않은 결혼기념일이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돌잔치 같은 것들. 그 순간들을 지켜내는 것조차 가끔은 버거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긴 한다만.
음악이 특정한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다. 결혼기념일도, 돌잔치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결국 삶의 한 조각일 뿐이니까. 인생은 대체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 속에서 음악을 듣고, 작은 순간들을 상상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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