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 번째 편지] "왼쪽과 오른쪽"

2025.11.08 | 조회 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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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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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11월 첫 번째 편지로 돌아온 모래시계입니다.

최근에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 저 역시 왼손잡이기에 동병상련을 느꼈네요.

이번 편지의 주제는 '왼쪽과 오른쪽'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왼손잡이로 살아가는 건 어떤지 생각해 보았어요.

아무쪼록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왼쪽과 오른쪽

평생을 왼손잡이로 살아왔다. 물건을 쥘 때는 거의 왼손을 사용한다. 유일하게 오른손을 사용할 때는 글쓰기와 기타 연주뿐이다. 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엄마의 강인한 노력으로 간신히 글씨를 오른손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엄마가 포기했다면, 나는 글쓰기가 유독 어렵게 느껴졌을 터이고(왼손으로 글을 쓴다는 건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작문 능력을 제대로 계발할 기회를 영영 놓치고 다른 길로 나아갔을 수도 있음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나로선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애초에 그렇게 주목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간혹 누군가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상황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광경을 무척 신기하게 생각한다. 왜 왼손잡이가 드물까? 모두가 태어나자마자 암묵적으로 합의하여 오른손잡이로 살기로 했단 말인가?

어쩌면 태초 인류를 이끌던 족장들이 모여 임의로 정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효율적인 농경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고, 주로 사용할 손을 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필 우연히 농기구들이 오른편에 놓여있었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뻗어 도구를 집었다. 끝. 그렇게 오른손으로 정해진 것이다. 만약 그날 도구들이 왼편에 놓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왼손잡이로 사는 게 꼭 나쁜 건 아닌 듯하다. 오른손잡이 연인 둘이 손을 맞잡고 걷는다고 치자. 어느 쪽 손을 잡든 간에,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오른손을 내어주어야 한다. 그 상태에서 예약해둔 식당 길을 휴대폰으로 찾아야 한다면 어떨까. 한 사람만 자유롭게 화면을 조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길치라면? 아마 둘은 골목을 헤매다 예약 시간을 놓칠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조금 더 유리하다. 내가 오른손을 내어준다 해도, 나에게는 왼손이 남아 있다. 상대방과 나도 각자 휴대폰을 들고 길을 찾을 수 있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면 제시간에 식당에 도착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상대방도 왼손잡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엉뚱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영국과 얽힌 이야기는 어떠신지? 어렸을 때 나는 영국이 좌측통행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진지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영국 사람들은 전부 왼손잡이인가?'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논리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 무렵 나는 비틀스에 푹 빠져 있기도 했는데, 폴 매카트니가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확신했다. 영국은 왼손잡이에게 친절한 나라구나. 그게 좌측통행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엉뚱한 생각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영국이 좌측통행을 한다고 해서 영국인이 모두 왼손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폴 매카트니의 왼손잡이용 호프너 베이스를 보며 영국이 왼손잡이 천국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왼손잡이라는 사실 자체를 잊고 살게 된 것 같다.

어느새 더 이상 내가 어느 손을 쓰는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왼손이 움직일 뿐이다. 어쩌면 이게 가장 이상적인 상태일지도 모르겠다.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그게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 상태 말이다. 다만 가끔, 아주 가끔, 버스에서 옆 사람과 팔꿈치가 부딪칠 때면 '아, 내가 왼손잡이였지' 하고 새삼스럽게 깨닫곤 한다. 그러고 나서 자리를 조금 비켜앉는다. 별일 아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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