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12월 첫 번째 편지 인사말을 맡은 모래시계입니다.
올해 겨울은 시작부터 심상치 않아요. 11월의 끝자락에 갑작스러운 폭설이 내리더니 급기야 이번 달 초에는 대한민국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진심을 꾹 눌러 담아 물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안녕하신지요?
사실 이번 편지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 지 무척 고민했습니다. 토요일 우편함은 고된 주중을 마치고 나른한 토요일을 위한 글인데 적어도 당분간 우리의 일상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해요. 그 어떤 풍파에도 굴하지 않고 일상을 지켜내는 것. 삶은 흰 눈 사이를 비집고 피어난 화려한 동백꽃보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겨울바람을 있는 그대로 견뎌내는 민들레를 닮았어요.
이번 12월 첫 번째 편지의 주제는 ‘혼란스러운 겨울에 관하여’입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운 겨울이 될 것만 같아요. 차디찬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꽃 피는 봄 즈음에 우리 함께 만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때까지, 안녕하시길 바라요.
작별의 계절, 겨울
⏳ 모래시계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설렘에 가득 찬 인사는 사라지고 어느덧 잔잔한 작별이 남았네요. 연말이 다가오고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는 작별을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한 번 친해지면 그 뒤로는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은 성격이라 그런가 봐요. 어렸을 때는 이게 통했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제 마음의 걸림돌이 되어버렸어요.
여담이지만 저는 잡지 동아리에서 2년 동안 에디터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요. 사실 제가 그만두었을 때보다 저와 친했던 사람들이 그만두었을 때 더 큰 외로움을 느꼈네요. 떠나는 마음보다 떠나보내는 마음의 쓸쓸함이 더 커요.
헤어지면 영원히 못 볼 것 같고, 그렇다고 구차하게 인연을 이어가면 양쪽 다 불편하죠. 결국 이성의 힘으로 마지못해 작별을 고하고 말아요. 그리고 그날 밤은 무조건 일기를 써요. 일렁이는 감정을 어떻게든 글로 풀어내야 해요. 감정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글은 영원하니까요. 시간차를 두고 읽으면 오글거리면서도 진심이 느껴져요. 나는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건강한 작별을 고할 수 있는 연습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작별을 하겠어요. 올해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하나둘 사회생활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서는 유독 절실히 느꼈네요.
사회에 나가서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대학교 시절의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한 장면으로 남겠죠. 새로운 인연 따위 안중에도 없고 가까스로 친해진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은 마음.
지인에게 이런 고민을 실토했더니, 인연은 떠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도 있다고 말해줬어요. 그러니 굳이 얽매일 필요 없다고요. 그래요, 이토록 슬퍼할 이유는 없어요. 저도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죠. 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슬퍼할 틈도 없기도 하고요.
그렇게 이번 가을이 왔을 때 다짐했어요. 쓸쓸히 하강하는 낙엽을 향해 아무 말도 말자.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사히 가을을 보내주자. 그러더니 이번에는 겨울이 찾아왔네요.
걱정이 앞서지만 이번 겨울은 조금 다르기를 바라요. 쓸쓸함에 압도되지 않고, 외로움에 파묻히지도 않았으면 해요. 그저 일렁이는 감정과 공손히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보내주었으면 좋겠어요. 건강한 작별의 출발점이죠. 끝맺음이 수월하다면, 새로운 인연도 진심으로 반가워할 수 있겠죠.
연말이 다가오고 있어요. 서서히 연말을 핑계로 약속이 하나둘 잡힐 것이고, 오랜만에 만나 각자의 안부를 묻겠죠. 서로의 일상은 축약된 언어로 다듬어져,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될 테고, 이를 안주 삼아 겨울밤은 더욱 깊어져만 갈 거예요. 마침내 집에 가야 할 시간이 찾아오면, 다음을 기약하며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몸을 싣겠네요.
한껏 들떠있던 감정이 차분함을 되찾으면, 조금은 쓸쓸한 감정이 밑돌겠죠.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마지막이 살짝 취한 몸을 거닐고 터벅터벅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끝내 되뇔 거예요. 아아. 나는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그렇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해요. 마침내 한 해가 바뀌고, 꽁꽁 얼었던 눈이 마침내 녹는 계절이 올 거예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우리는 영원히 겨울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예요.
시계열이 혼란스러운 겨울
👒 밀짚모자
지난달까지 시계열이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사는 동네는 내내 가을이었거든요. 한국에 폭설이 내렸고, 일본 니가타에는 우박이 떨어졌어요. 11월은 오묘한 기간이에요. 밤은 춥고, 낮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해요. 가을이라는 개념으론 설명할 수 없는 진폭이죠. 계절 감각이 흔들려요. 한때 ‘수능 한파’라는 단어가 유행했어요. 낯선 날씨를 정의하려는 마음이겠죠. 간절기라는 명명조차 안 통하는 시기니까요. 하지만 기후 변화는 질서를 교란해요. 계절은 쉬지 않고 진동하죠. 기존 언어는 설명력을 잃고, 인간은 당황해요.
세상이 엉망이에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윤석열은 계엄령을 선포했어요. 두 나라의 민주당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하고요. 정신 차리고 상황을 직시해야 해요. 우리는 난장판에서 생각해야죠. 기회일지도 모르겠네요. 예리하고 짜릿한 사고가 발생하는 환경이니까요. ‘홍대병’이 주류에 침입하는 이유예요. 니체가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실리카겔은 멜론뮤직어워드에서 공연하잖아요. 흐름에 몸을 맡기고, 경계와 균열에 흥분하자고요. 고통은 자원이 될 테니까요.
첫눈의 감상은 다양해요. 예뻐서 설레거나, 쌓여서 불편할 수 있죠. 저는 기후위기의 신호로 읽어요. 올해는 기습적으로 잔뜩 내렸으니까요. 근거는 얼마든지 붙일 수 있어요. 어쩌면 중요하지도 않고요. 유일한 진실은 인류가 발전주의에 빠져들며 자신의 터전을 파괴하는 역사예요. 세계에 포섭된 존재로서 처참한 맥락을 인정한다면, 맘 편히 행복해선 안 돼요. 마냥 분개해서도 안 되고요. 복잡미묘한 감정을 단련해야죠.
초등학교 이후로 눈사람을 만든 적이 없어요. 부수지도 않았고요. 관심이 없거든요. 내향적인 성격 때문인지, 눈으로 사람을 빚는 심리가 이상하게 느껴져요. 자기가 뭐라고 동족을 재생산하는지, 애당초 그럴 이유가 있긴 한지 의심하죠. 더군다나 눈사람의 외형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아요. 차이가 너무 커서 데포르메라고 말할 수도 없죠. “차가운 덩어리”라고 불러야 정확해요.
그러나 눈사람이라는 호칭은 적절해요. 기본적으로 고독하고, 기온에 지배당하며, 특히 열에 약하고, 충격을 받으면 무너지니까요. 저는 외로움에 이입해요. 산책로에 눈사람이 있으면 매일매일 확인하며 동태를 살피죠. 생존전략이 달라서 문제네요. 저는 온기를 갈구하지만, 그는 냉기로 버텨요. 햇빛에 기분이 좋은 낯이면, 다들 이미 녹아 있더라고요. 저를 손절하는 친구들처럼 사라져 버리죠. 그들은 제 독특한 매력에 끌렸고, 개성에 질려 떠났어요. 조금은 안도하네요. 늘 밑천이 드러나는 미래를 걱정하는데, 관계가 파탄 나면 환상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요즘 아이스크림이 당겨요. 추울 날 섭취하면 냉기를 체화하는 느낌이라 재밌거든요. 여름에 먹으면 진부하기도 하고요. 엉뚱한 취향을 추구하자고요. 생존에 필수적이니까요. 오직 괴짜만이 살아남아요. 사회는 나쁜 방향으로 질주해요. 정치 뉴스는 언제나 황당한 소식으로 가득하지만, 12월 3일 화요일은 경이롭게 어지러웠죠. 평소 비주류 감성으로 단련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목덜미를 잡고 쓰러졌을 듯해요.
📸 토요일 사진함
🎞️ 우편배달부 두 명이 토요일에 마주한 순간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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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 마디
⏳ 모래시계: 저번에 친구가 교환학생을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다행스럽게도(?) 친구의 장난이었어요. 원래 장난치는 스케일이 남다른 친구이긴 하지만, 이 녀석이 교환학생을 두고 고민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이번에는 나름 진지하게 받아들였지요. 여행 계획은 느리지만 어쨌든 진전을 보이고 있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어요. 유럽의 겨울은 특히 해가 짧다는데, 따뜻한 실내에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유럽에서도 토요일 우편함은 계속 운영되어야 하니까요. 정말로요.
👒 밀짚모자: “한국 큰일이네요.” 일본인 친구가 건넨 인사예요. 저는 “네…엄청 큰일…”로 받았죠. 도저히 “안녕하세요”가 안 나오더라고요. 12월 3일 11시, 속보를 접하고 정신이 혼미해졌어요. 아직도 나사가 빠져 있는 느낌이고요. 그래도 희망을 걸어요. 민주주의의 자정 능력이 굉장하니까요. 프레임을 바꾸고 싶어요. 계엄령은 선포보다 해제가 값진 뉴스고, 탄핵 표결 불참 의원 105인보단 소신의 3인이 중요하죠. 역전은 분명 가능해요. 저는 날카로운 보도를 이어가는 언론과 추운 주말에 거리를 메운 시민이 자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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