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 번째 편지] "혼자 있는 건 외롭지만 도움이 된다"

2025.05.10 | 조회 192 |
0
|
토요일 우편함의 프로필 이미지

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첨부 이미지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선선한 5월의 첫 번째 편지 서문을 맡은 모래시계입니다.

이번 5월은 첫 주부터 기나긴 연휴를 끼고 있네요. 당일치기 여행이라도 갈까 생각해보았지만, 이럴 땐 집에서 쉬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사람이 없을 때 돌아다니는 성격이거든요. 나들이는 되도록 평일에 가고, 주말엔 조용히 누워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감상하죠.

사람이 싫은 건 아니에요.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 소모해야 하는 힘이 부담스러울 뿐이죠. 상대의 말에 담긴 의미를 해독하고 반응하는 방법까지 애써 고민하려면 그 짧은 순간에 엄청난 집중을 가미해야 해요. 자연스레 나 자신은 시야에서 벗어나기 마련이죠.

이번 편지의 주제는 '혼자 있는 건 외롭지만 도움이 된다'입니다. 홀로 시간을 보낸다는 건 분명 고독한 일이죠. 하지만 그 고독함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일은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니까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옆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을 거예요.


모임은 나가지 않는다

👒 밀짚모자

대학교 1학년 시절, 유용한 조언을 건네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놀아라’ ‘학점 관리해라’ 같은 망언만 반복됐네요. 곧 저는 ‘화석’으로 진화했어요. 위치가 바뀌니 관점이 달라지더라고요. ‘꼰대’ 소리가 두려워서 ‘후배’에게 훈수를 둘 수 없었어요. ‘맨스플레인’의 위험도 크고요. 그러나 전승이 없는 사회는 존재 의의가 의심스러워요. 선배의 경험은 전수돼야 해요.

‘모임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라는 뻔한 말을 진지하게 건넨 ‘스승’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대학교 신입생은 떼거지로 몰려 다니고, 머리의 개수와 대화의 깊이는 반비례해요. 셋 이상이 모이면 분위기가 산만해지고, 농담의 밀도도 옅어져요. 오랜 우애를 유지했다면 여럿이어도 괜찮지만, 다수가 쌓은 관계는 쉽게 휘발돼요. 긴 시간 지속된다면, 변화가 정체됐거나, 누군가 불만을 참고 있기 때문이에요. 구성원들이 매력을 지속적으로 갱신하는 집단은 아주 드물어요. 연애에서조차 이루기 힘들어요.

우정을 숙성시킬 여유가 없는 공동체는 얕고 따분한 스몰 토크만 반복해요. 당연히 기(氣)가 빨리죠. 내성적인 성격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내향형과 외향형의 차이는 사소해요. 기가 빨리지 않는다면, 낭비를 버티는 근성을 단련했기 때문이에요.

시간을 다르게 썼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1년 동안 영화 150편, 책 100권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숫자가 전부는 아니지만, 250개의 다른 인생을 높은 밀도로 통과한 삶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을 거예요. 특히 타자를 대하는 태도가 비교적 성숙해졌을 듯해요.

물론 낮은 사회성을 타고난 저는 자연스레 많은 친구를 잃었고, 혼자서 즐기는 취미를 계발했어요. 처음엔 게임만 종일 했죠. 그러다 영화에 빠졌고, 언젠가부턴 책도 진득하게 읽네요. 이제는 모임에 나가지 않아요. 친구와도 가끔 만나고요. 예전보다 외롭지만, 훨씬 덜 고통스러워요. 저는 고독을 추구해요. 공부만이 살길이에요.

둘이서 나누는 대화에 능숙하진 않아요.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치졸한 행동도 많이 해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꼬투리 잡기, 주도권을 쥐기 위한 회피형 공격은 제 전문 분야예요. 정희진 선생님은 “인간관계에서 의사소통 문제로 힘들 때가 있다. 평소 상대방의 단점에 관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가 나에게 하는 경우다. 내가 참고 참았던 말을 상대방이 할 때, 더구나 상대가 나보다 '갑'이거나 '정신 승리'에 능한 성격일 때는 억울하다 못해 절망적이다.”(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라고 썼는데, 제 말싸움 전술이랑 비슷해서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네요.

독서나 영화를 통하면 자신의 결점을 아주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어요. 인간은 잘 안 고쳐지지만, 적어도 타자에게 성실히 임하는 태도를 조금은 성찰할 수 있죠. 인생은 관계가 전부예요. 유토피아는 쓸쓸한 사람이 모이는 추앙의 공동체예요.


때로는 침묵합시다

모래시계

대화, 좋아하시나요?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제 마음이 말에 담겨 상대에게 향하고 반대로 상대의 마음이 담긴 말이 제게로 향하는 과정에서 저는 알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나의 자아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라고 할까요. 하여튼 '세상은 아직 살만하구나'하고 되뇌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참 좋죠.

하지만 질 나쁜 대화도 있기 마련이에요. 자기 자랑만 나열하기? 지나치게 정치적인 발언하기?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애초에 이런 건 대화도 아니죠. 일방적이니까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대화 도중에 시원한 아메리카노로도 막을 수 없는 엄청난 피로가 몰려올 적이나, 대화 중에 갑자기 집에 가고픈 욕망을 느낄 적이에요. 다들 살면서 이런 적 있지 않나요? 이야기 주제는 지극히 평범한데, 이야기를 이어가기 무척 어렵고 그렇다고 새로운 주제를 꺼내기도 그렇고요.

이럴 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어요. 말을 끊는 것은 예의가 아니고, 주제를 갑자기 바꾸는 것도 이상하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주제를 급선회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예컨대, 여행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이번 여름에는 도쿄를 다시 가볼까 생각 중이야"라고 말하면 느닷없이 "근데 이번에 그 뉴스 봤어?"라고 말하는 식이죠. 몇 번이면 넘어가겠지만, 계속되면 저도 짜증이 납니다. "이봐, 내가 도쿄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고 버럭 소리 지를 수도 없고 말이죠.

그런가 하면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유럽 일주를 마치고 만난 자리에서 영국 박물관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나름대로 느낀 점이 많아서 대화의 물꼬를 텄는데, 몇 문장 말하지 못하고 듣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상대방은 "나 역시 영국의 제국주의 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제국주의적 세계관이 21세기에 부활하고 있다고 걱정하더군요. 그 뒤로, 10여 분 맞장구를 쳐주다 기어코 이런 말을 들었네요. "아 맞다. 그래서 영국 박물관 어땠어?" 세계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바로 앞에 있는 제 이야기는 안 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먼 미래에는 스피치 능력보다 침묵할 줄 아는 능력이 주목받지 않을까 싶네요. 너무 진부한 말 같지만, 지금 시대에서 이를 지키기는 무척 어려워 보여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내가 어디를 갔는지, 무얼 먹었는지 알릴 수 있고, 유튜브로 타인의 일상을 볼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제안을 해보려고 해요.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2주에 한 번만 올리고 유튜브는 알고리즘을 끄는 거예요. 자연스레 SNS와 멀어지게 될 테고, 예전처럼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없겠죠.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간간이 듣게 될 터이고요. 사람들과 만나면 그때야 각자의 일상 이야기를 듣겠죠. 궁금하면 자연스레 경청하게 되지 않을까요?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동료 밀짚모자와 제가 실제로 이렇게 지내고 있거든요. 격주로 진행하는 토요일 우편함 퇴고 회의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꺼내고 음미하죠. 쉽게 휘발되지 않고 기억에 남기도 쉬워요.

그러니까, 때로는 침묵합시다.


📸 토요일 사진함

 🎞️ 우편배달부 두 명이 토요일에 마주한 순간을 공유합니다.

🌀 천재지변 시, 배송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 밀짚모자: 저녁 7시 30분, 공원 의자에서 올려다본 하늘이에요. 주말엔 친구와 조깅을 하는데요, 저는 먼저 도착하고 누워서 쉬는 순간을 좋아해요.
👒 밀짚모자: 저녁 7시 30분, 공원 의자에서 올려다본 하늘이에요. 주말엔 친구와 조깅을 하는데요, 저는 먼저 도착하고 누워서 쉬는 순간을 좋아해요.
⏳ 모래시계: 햇빛은 그 어떤 광원보다 아련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노란빛 전구로도 재현할 수 없는 묘한 힘.
모래시계: 햇빛은 그 어떤 광원보다 아련한 힘을 가지고 있어요. 노란빛 전구로도 재현할 수 없는 묘한 힘.

✍️ 오늘의 한 마디

👒 밀짚모자: 블로그에 쌓아둔 글을 발행하고 있어요. 학기 말에 맞춰 전부 털어내려고요. 옛날에 쓴 문장을 다시 읽으면 감회가 새로워요. ‘내가 이딴 글을…’ 고난의 행군이죠. 그러나 폐기하진 않을 거예요. 부분적인 진실이고, 저의 시계열적 변화를 드러내는 증거거든요. 인생에서 글쓰기는 필수예요. 읽고 듣기만 해서는 공부가 안되거든요. 인간은 쓰면서 성장해요. 꾸준히 언어를 계발한 사람의 개성은 대체할 수 없죠.

모래시계: 황금연휴 때 가족과 장을 보러 갔어요. 유럽에서 자주 먹고는 했던 에멘탈 치즈가 있길래 고민하지 않고 집어 들었어요. 여기에 곁들일(?) 와인까지도 덜컥 사버렸네요. 직원분의 추천에 따라 드라이하면서도 뒷맛이 텁텁하지 않은 미국 캘리포니아산 와인을 골랐는데, 제 입맛에는 평소 마시는 프랑스산 와인과 별반 다를 게 없더라고요. 남은 에멘탈 치즈는 크림 파스타를 만드는 재료로 모두 소진했어요. 꾸덕꾸덕한 파스타는 처음 만들어보는데, 꽤 성공적이었네요. 재구매 의향 100%.


📬 토요일 우편함은 여러분이 궁금해요. 댓글로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 토요일 우편함을 더 풍성하게 채워줄 의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알려주세요 :)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토요일 우편함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뉴스레터 광고 문의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