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 번째 편지] "전갱이 소금구이"

2025.09.13 | 조회 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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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우편함

잠깐 쉬었다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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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모래시계입니다.

이렇게 혼자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네요.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날씨는 여전히 덥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네요. 제 학교생활은 어느덧 마지막 학기에 접어들었고요. 아, 재즈 공부도 간간이 하고 있어요. 스탄 게츠와 쳇 베이커의 연주를 들어봤지만, 아무래도 제 최애는 빌 에반스인 듯합니다.

이번 편지의 주제는 '전갱이 소금구이'입니다.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단지 제가 전갱이 소금구이를 먹고 싶었을 뿐이에요. 바다 내음이 풍기는 그리스의 미코노스섬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아무쪼록 이번 토요일도 무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전갱이 소금구이

그리스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를 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전갱이 소금구이만큼은. 그리스에서 꼭 먹어보고 싶은 요리다.

유럽 여행의 은은한 향수조차 사라져갈 무렵, 생선을 굽다가 문득 가보지도 않은 그리스 생각이 났다. 정확히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먼 북소리』에서 묘사한 미코노스섬의 전갱이 소금구이 이야기였다. 경비원 반젤리스 아저씨가 하루키에게 빌려준 낡은 풍로 위에서 노릇노릇 익어가는 전갱이. 소금만 뿌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전갱이.

전갱이 소금구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이름에서 지극히 하루키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담백하고 솔직하다. 그저 전갱이에 소금을 쳐서 구운 요리. 실제로 전갱이는 하루키 에세이집을 읽다 보면 한 편 정도는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하루키가 자주 언급하는 생선이다.

그런데 왜 하필 전갱이지? 연어도 있고, 고등어도 있는데 말이다. 맛으로 따지면 훌륭한 생선들이야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난 아직 전갱이만큼 평범한 생선을 본 적이 없다. 전갱이는 파인 다이닝에서 나올 법한 식재료가 아니다. 그저 보통의 바닷물고기다. 바로 이 평범함에서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소금구이라는 조리 방식도 그렇다. 복잡한 소스도 필요 없고, 화려한 가니시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소금에 불만 있으면 그만이다. 이것이야말로 요리의 본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재료 본연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 가식 없는 솔직함.

나는 하루키가 전갱이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굽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쩌면 오븐조차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화로—반젤리스 아저씨가 빌려준 낡은 풍로 같은 게 제일 좋다—의 숯불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열기와 바람에 흩날리는 연기, 전갱이가 익어가며 내는 미세한 소리가 어우러져야 비로소 진정한 '전갱이 소금구이'가 완성되는 것이다.

미코노스섬의 어느 오후. 에게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화로의 불을 살짝 흔든다. 하루키는 아마도 와인잔을 옆에 놓고 전갱이를 이리저리 뒤집고 있을 것 같다. 서두르지 않는다. 시간은 충분하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도시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가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전갱이 소금구이 같은 것들이 우리 일상에도 있을 것만 같다. 매일 아침 끓이는 커피, 늘 같은 길로 출근하며 마주치는 골목길 고양이,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파전 같은 것들.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바로 그래서 더욱 단단한 것들. 우리는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지만, 정작 삶을 지탱하는 건 이런 평범한 것들의 반복이 아닐까.

언젠가는 정말로 미코노스섬에서 전갱이를 구워볼 생각이다. 반젤리스 같은 친절한 아저씨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에게해의 바람은 여전히 불어올 것이다. 그 바람을 맞으며 나는 오늘의 다짐을 떠올릴 테다. 진정한 전갱이 소금구이의 맛은 그리스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평범한 일상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모든 곳에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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