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9월 두 번째 편지로 돌아온 모래시계입니다.
한동안 비가 내리더니 아침저녁으로는 이제 쌀쌀하네요. 한동안 계속 집에서 할 일만 하다가 오랜만에 나들이하러 나왔어요. 지금 저는 덕수궁 근처의 고즈넉한 카페에서 인사말을 다듬고 있어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동료 밀짚모자와 토요일 우편함에 관한 구상을 시작했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랍니다.
밀짚모자와 왔을 때는 차를 마셨는데요, 오늘은 커피를 마시고 있네요.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이후로 좀처럼 차를 마시지 않고 있어요. 사람의 취향이라는 건 이토록 다채롭네요.
그런 점에서 이번 편지 주제는 '취향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저만의 루틴으로부터 시작된 글입니다. 사소하게 읽어주세요.
취향이라는 것
커피 머신을 구매한 지 대략 두 달 정도 흘렀다. 아침마다 커피 캡슐을 넣고 버튼을 누르는 일이 일종의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그저 아침잠을 깨우는 도구였는데, 언제부턴가 캡슐 상자의 작은 글씨들을 읽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인디아, 콜롬비아. 그리고 그 밑에 적힌 신비로운 단어들. 곡물향, 몰트향, 시트러스향, 꽃향…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커피에서 꽃향기가 난다고? 정말일까? 그래서 시작한 일이 매일 아침 혀끝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었다. 향을 깊게 들이마시고, 첫 모금을 오래 입에 머금은 다음, 삼킨 후의 여운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다.
처음 며칠을 그렇게 마셔보니 어느 정도 차이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커피는 그냥 커피였다. 혀가 무디긴 무딘 모양이었다. 그러다 일주일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면서 뭔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캡슐은 확실히 신맛이 강했고, 어떤 것은 뒤끝에서 나무껍질 비슷한 맛이 났다. 설명을 찾아보니 '우디향'이 난다고 한다. 맙소사, 우디향이 나무껍질이라니. 뭔가 당한 기분이었지만,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무껍질이란 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렇게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되면서 나름의 원칙들도 하나둘씩 생겼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번째 커피는 오전 9시 이전에 마실 것. 두 번째 커피는 점심 식사 이후, 오후 2시 이전에 마실 것. 그리고 언제나 같은 커피잔으로 마실 것. 이렇게 하면 마치 엄청난 루틴을 지키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마치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늘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처럼.
가끔 돌아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겨우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에 이렇게 많은 원칙이 필요한 걸까? 하지만 이런 사소한 고집들이야말로 내가 커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무언가 특별한 것으로 대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취향이란 결국 이런 것 같다. 무언가를 향해 기꺼이 시간과 관심을 쏟으면서 생겨나는 나만의 작은 철학과 원칙들. 처음에는 그냥 마시던 커피가 이제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컵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마셔야 제맛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 그리고 그 원칙들을 지켜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미묘한 행복.
어떤 사람들은 와인을 그렇게 마시고,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그렇게 듣고, 어떤 사람들은 책을 그렇게 읽는다. 소재는 모두 다르지만, 마음은 같다. 조금 더 알고 싶고, 조금 더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9시 이전에 첫 번째 커피를 마셨다. '코지'라는 이름을 가진 캡슐이었고, 곡물향과 시트러스향이 풍긴다고 한다. 과연 나는 그 향미를 제대로 느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의 커피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 작은 의식 자체가 어쩌면 내가 찾은 취향의 가장 소중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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