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1일

희지의 세계

2025.10.21 | 조회 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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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yang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황인찬, 희지의 세계 中
황인찬, 희지의 세계 中
아는 누나의 작업실에 가던 중
아는 누나의 작업실에 가던 중

 

문득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던 정시 실기 수험생 시절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아마 모 대학의 실기 시험 도중이었습니다. 순간 시선이 흐트러지더니 글자가 다섯 개로 분산돼 보였습니다. 이르자면 '나는'이라는 말을 썼는데 눈에는 '나나나나는는는는는'처럼 보인다는 거죠. 그날은 제 마지막 실기 시험이었기 때문에 깔끔하게 잘 마치고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인생이 뜻처럼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 않았으면서 괜스레 모든 걸 탓하고 싶어지던 순간이더군요.

 

어떻게 됐냐면요.

재수했습니다.

 

반전 없는 드라마지요. 인간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인간 승리해서 대학에 갈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처절하게 짐승 패배했습니다.... 이 생각이 나는 걸 보니 정말 수시 실기 시즌이 돌아왔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해 저는 서울 지하철 6호선을 매일처럼 타면서 묵던 동네에 꼭꼭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어폰 너머로는 세븐틴의 rock with you와 아이즈원의 파노라마가 나오고 있었구요. 약 3-4년 정도가 지났고, 저는 지금 rock with you와 파노라마를 들으며 그때 그 동네를 걸어다니는 주민이 되었습니다.

 

그런 거지요.

 

어떤 꿈은 도무지 잡히지 않을 것처럼 몇억 광년씩 떨어져 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주적 관점으로 봤을 때 티끌만한 우리가 그 꿈을 당장 쟁취하려 애쓰는 것도 지금 우리 곁에 부유하는 먼지가 우리에게 달라붙으려 달려오는 것만큼 어색한 일 아닐까요. 먼지는 가만히 부유하다 보면 지나다니는 우리에게 달라붙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거지요. 꿈이란 건 우리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고, 우리는 꿈이 마침내 내 곁을 지나갈 때 자연히 달라붙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꿈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꿈을 버리는 건 언제나 우리입니다.

(아는 후배의 발제문 中)

 

마침내 이 동네 주민이 되어 오래오래 살고 싶어했던 곳곳을 배회할 수 있게 된 것도, 여전히 글을 쓰는 어른으로 남아있는 것도, 그래서 이 메일링을 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제가 정말 사랑한 장소 몇 군데는 사라져버렸지만, 어쨌든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메일을 받으실 여러분이 어떤 분들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당장 십 초 안에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저버리지는 마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습니다.

 

저야말로 꿈이란 걸 정말 정녕 믿지 않는 냉소 그 자체였습니다. 이 동네에 막연히 살고 싶다는 상상을 처음 했을 때만 해도 저는 앞으로 인생에 실패할 일만 남아있다고 자주 일기장에 썼으니까요. 앞으로도 반복될 실패가 두렵다고, 괴롭다고, 거기서부터 도망치고 싶다고 썼으니까요.

 

성인이 된 지 3년차에 쓸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인 것 같습니다, 살아있으니 이런 즐거운 일이 생기는구나, 고마워. (호시노 겐 인스타그램 게시글 中)

 

더 많은 인생이 냉소로 허비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있으니 이런 즐거운 일도 생긴다며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움으로부터 괴로움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열아홉의 저를 만난다면 저는 아마도 그렇게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너의 그 종말론적인 생각을 세상의 전부라고 믿지 않는다면 두려움 괴로움 그것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된다고.

 

일생의 절반을 바쳐 사랑했던 어느 사람의 기일이 지나갔습니다. 매해 그래왔듯 올해도 참 아팠습니다. 물리적으로 몸이 아프곤 하거든요. 몸살처럼 열이 날 때도 있고 정말 피부 거죽마다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요. 그래도 아프니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그것이 아파도 살아남아야 할 이유 같기도 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따라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던 저로서는 큰 변화입니다.

 

주제를 넘나드는 이 모호한 메일링을 읽고 당장에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바뀌리라 믿지 않고,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냥 제가 결론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요.

 

죽지만 마세요.

 

수험생인 분들이 계신다면 매일처럼 파이팅입니다. 여러분의 열아홉 살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하고픈 말이 많으시다면 메일로 쏴 주셔도 좋습니다. ^ ^

 

오늘은 시 대신 생각을 주절주절 써봤는데... 시가 더 좋은가요? 잘 모르겠네요. 추운데 옷 잘 챙겨입으시고 배도 곯지 마시고 잘 지내세요.

 

그럼 다음주에 또 봐요.

 

어쩌면 구독자 분들도 많이많이 사랑했을 제 이쁘니 뽀야니 사진을 첨부하며 마칩니다. 안녕!

 

첨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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