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사유입니다. 🍵
오늘은 미국의 프리미엄 티 브랜드인 '스미스 티메이커(Smith teamaker)'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미국의 '포틀랜드(오레곤)'라고 하면,
느리고 단순한 삶, 소량 생산, 원산지의 투명성이 떠오릅니다.
전 세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휩쓴 킨포크(Kinfolk) 매거진이 시작된 곳이죠. 거대 자본이 만든 프랜차이즈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량 생산하는 독립 브랜드를 선호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포틀랜드 북서부 외진 곳에는 오래된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대장간'이었어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고, 달궈진 쇠를 두드려 말발굽을 만드는 곳이었죠.

오늘날 이 곳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티백의 사셰(sachet, 작은 주머니)를 채우고, 안쪽 랩에서는 새로운 블렌드 샘플을 시음합니다.
이 공간의 이름은 스미스 티메이커(Smith Teamaker)
그리고 이 곳을 세운 사람은 '스티븐 스미스(Steven Smith)'입니다. 미국 차 산업의 '마르코 폴로'라고 불리우는 사람이죠.
그는 40년에 걸쳐 차 브랜드를 세 번이나 만들었어요.
- 스태쉬 (Stash)
- 타조 (Tazo)
- 스미스 티메이커 (Smith teamaker)
매번 전략이 달랐고, 매번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비로소 브랜드에 자기 이름을 내걸었죠.
그럼 그가 어떻게 세 개의 차 브랜드를 성공시켰는지 한 번 알아볼까요?
1. 스태쉬 (Stash, 1972) - 유통채널, 고객 데이터, 타겟팅

스티븐 스미스가 차를 만들게 된 건, 오래 전부터 그의 일상 속에 차가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포틀랜드 최초의 커피·차·향신료 가게 중 하나인 코누코피아를 운영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비 오는 날마다 달콤한 홍차를 끓여주시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스미스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산업화,자본주의,대량생산에 대한 반문화(Counter culture) 운동이 빠르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유기농, 자연주의,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커피 대신 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죠.
그는 자본금 7,000달러로 동료 둘과 함께 차 회사를 차렸어요. 시작은 무척 단촐했습니다. 오래된 주택의 지하실에서 직접 허브를 블렌딩하고, 차를 포장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브랜드 스태쉬(Stash)의 시작입니다.
처음에는 허브와 잎차를 유기농 소매점에 포장도 없이 자루째 납품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1975년,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자루째 납품하는 방식을 완전히 접고, 잎차를 티백으로 개별 포장해 레스토랑 납품에 집중한 거예요.

사실 이 선택 뒤에는 냉정한 현실이 있었어요. 대형 마트 같은 소매 유통에 입점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협상력이 필요했지만, 소규모 창업팀에겐 둘 다 없었거든요. 그래서 스미스가 눈을 돌린 곳이 레스토랑이었습니다. 진입 비용이 낮으면서도, "품격 있는 식당에서 마시는 차"라는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쌓을 수 있는 채널이었으니까요.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레스토랑 매출은 한때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할 만큼 회사의 주력 사업이 됐고, 이 성공을 발판으로 스태쉬는 일본, 뉴질랜드, 호주, 노르웨이 등 해외 시장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무렵, 스미스는 뜻밖의 신호를 하나 포착합니다. 포틀랜드 인근 대학가에서 스태쉬의 차를 찾는 학생들이 늘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직접 찾아오기엔 너무 먼 거리였죠. 스미스는 이 고객들을 그냥 놓칠 수 없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차를 팔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그 답이 바로 우편 주문이었어요.

그리고 여기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나옵니다. 티백의 개별 종이 포장지에 간단한 '카탈로그 홍보문구'를 인쇄한 거예요.
"카탈로그를 신청하세요.
주소 : P.O Box 610R Portland, OR 97207"
불특정 다수에게 광고를 뿌리는 게 아니라, 이미 차를 마시고 있는 '구매 의향이 검증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다음 구매를 유도한 거죠. 어차피 인쇄하는 포장지에 잉크 조금 더 쓰는 정도라 추가 비용도 거의 없었습니다.
차 산업계에서 다이렉트 마케팅의 전설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 전략을 통해 스태쉬는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구축했습니다. 1987년, 메일링 리스트는 10만 명을 넘었어요. 매출 비중으로는 6%에 불과했지만, 유통 마진 없이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구조라 회사 전체 이익의 35%를 담당하는 알짜 채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20년이었습니다. 1993년, 스태쉬는 어느새 연 매출 1,000만 달러의 탄탄한 기업이 되어 있었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차 회사인 야마모토야마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인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었어요.
스티븐 스미스는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
2. 타조 (Tazo, 1994) - 세계관을 구축하다

스태쉬를 매각하고 불과 1년 후, 스미스는 새로운 티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이번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어요. 포틀랜드 최고의 브랜드 디자인 회사 샌드스트롬(Sandstrom Partners)과 함께, 차에 세계관을 입히기로 한 거예요.
스미스가 디자인팀에 건넨 컨셉은 단 한 줄이었습니다.
"Marco Polo meets Merlin"
탐험가와 마법사의 만남
샌드스트롬은 이 한 줄로 완전한 세계관을 만들어냈습니다.

실제 역사와 신화를 뒤섞고, 연금술과 고대 문명의 이미지를 차용해 마치 Tazo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보이게 했어요.
슬로건은 "차의 환생(The Reincarnation of Tea)"
스미스의 직함은 "공인 차 샤먼(certified tea shaman)"이었습니다.

패키지를 뜯는 순간부터 그 세계관은 시작됐어요. 고대 중국 약방을 연상시키면서도 묘하게 현대적인 디자인, 곳곳에 숨겨진 신비로운 문구들. 읽다 보면 이게 차 포장지인지 고대 문서인지 헷갈릴 정도였죠.
블렌드 이름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차 이름은 대부분 원산지 이름이었어요.
다즐링 (Darjeeling), 아쌈(Assam) 등..
차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렵고 낯선 언어였죠. 스미스는 이걸 완전히 뒤집었어요.
Awake(깨어남)
Zen(선)
Calm(평온)
"어떤 맛을 원하세요?"가
"지금 어떤 상태가 되고 싶으세요?"로 바뀐 거예요.
가격도 파격적이었습니다.
한 상자에 4달러 49센트.
당시 미국에서 차 한 상자는 대부분 2달러 이하 수준이었어요. 세계관이 있으니 가격도 설명이 됐습니다. 그냥 차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사는 거니까요.

그리고 시장도 그 세계관에 기꺼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1999년, 스타벅스가 Tazo를 810만 달러에 인수한 거예요.
스미스와 그의 팀은 2006년까지 브랜드를 계속 이끌었고, Tazo는 스타벅스의 글로벌 유통망을 타고 연 10억 달러 규모의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스타벅스 산하에서 Tazo는 규모를 얻은 대신 개성을 잃었습니다. 신비주의 세계관은 대량생산 시스템 안에서 점점 희석됐고, 스미스가 설계한 블렌드의 감각적 밀도는 균일한 맛으로 평준화됐어요. 2012년 스타벅스가 Teavana를 추가로 인수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죠. 두 브랜드를 동시에 운영하게 된 스타벅스도, 소비자도, Tazo와 Teavana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스타벅스는 Tazo를 정리하는 쪽을 택했어요.
스미스는 본인이 만든 세계관이 규모 앞에서 무력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규모를 포기하면서도 살아남는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3. 스미스 티메이커 (Smith Teamaker, 2009) - 오트 티 쿠튀르 & 장인 정신

2006년, 스타벅스를 떠난 스미스는 아내 킴, 어린 아들과 함께 포틀랜드를 떠나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향했습니다. 은퇴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그곳에서 그를 사로잡은 건 쉼이 아니었습니다. 동네 골목마다 만나는 장인들이었어요. 새벽마다 반죽을 치대는 제빵사, 초콜릿을 만드는 쇼콜라티에, 향을 조합하는 조향사, 그리고 론 밸리의 와인메이커들.

이 사람들에게서 스미스는 공통된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자기 재료의 원산지를 추적했고, 그날의 날씨와 습도에 따라 작업 방식을 바꿨으며, 규모를 키우면 그 정밀함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많이 만드는 것보다 제대로 만드는 것을 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와인메이커들이 그랬어요. 같은 포도라도 어느 밭에서, 어떤 기후 아래 자랐는지에 따라 맛과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고 믿었죠. 이들이 집착한 건 '프로비넌스(Provenance)', 즉 재료의 기원과 출처였습니다.
스미스는 생각했어요. "차도 이럴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아비뇽에서 오래된 창업 동료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차 브랜드 아이디어가 생겼어!"
2009년, 그는 포틀랜드로 돌아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 번째 브랜드의 이름은 '스티븐 스미스 티메이커(Steven Smith Teamaker)'. 처음으로 자신의 본명을 내걸었어요.
그리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 이름을 붙였으니까, 이번엔 팔지 못할 거야."
스태쉬도, 타조도 결국엔 팔렸어요.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소규모로 남는 대신, 자신의 기준을 한 치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브랜드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티 마스터'라는 거창한 직함도 거부했어요. 그냥 '티메이커(Teamaker)'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그의 비전은 '오트 티 쿠튀르(Haute Tea Couture)'였어요.
'오트 쿠튀르'는 원래 패션 용어예요. 샤넬이나 디올 같은 브랜드가 한 사람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드는 맞춤복을 뜻하죠. 기성복과는 차원이 다른, 재료와 공정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방식입니다. 스미스는 차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어요.
대부분의 브랜드가 1년 내내 똑같은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할 때, 스미스는 수확 시기마다 맛이 달라지는 걸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고정된 레시피 대신, 머릿속에 그린 '스미스다운 맛(Smith Ideal)'을 향해 매번 원료의 배합 비율을 미세하게 조정했어요. 16명의 티메이커가 시즌마다 바뀌는 찻잎의 상태를 체크하며 그 기준을 맞춰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생산량은 무척 적은 편이었어요.
2014년 당시, 스미스 티메이커의 생산량은 대형 브랜드의 1/100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미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이 작은 회사가 이미 Tazo를 스타벅스에 팔기 전 가치의 절반에 와 있다"고 말이에요. (약 4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규모가 아닌 밀도로 가치를 만드는 방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 셈이죠.
스미스는 프로비넌스(기원,출처 provenance)에 대한 철학도 영리하게 풀어냈어요.
스미스 티 박스 하단의 배치 넘버를 웹사이트에 입력하면, 그 차가 어느 농장에서 왔는지, 티메이커가 어떤 의도로 블렌딩했는지 전부 공개됩니다.
예를 들어 'Lord Bergamot No.55'을 샀다면, 이 찻잎이 인도 다즐링 어느 농장의 몇 월 수확분인지, 거기에 섞인 라벤더가 프랑스 프로방스 어느 지역의 것인지까지 확인할 수 있어요. 차 한 잔의 여정이 통째로 공개되는 거죠. 사실 배치 넘버는 원래 어느 차 브랜드에나 있는 내부 관리 코드예요. 스미스는 그걸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스토리텔링 도구로 바꿨습니다.

2015년, 스티븐 스미스는 65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골은 지금도 포틀랜드 테이스팅룸에 안치되어 있어요. 그가 만든 차와 함께, 그가 남아 있는 거죠.
세 번의 창업, 40년의 여정.
스태쉬(Stash)에서는 비즈니스적인 감각으로 성공했고,
타조(Tazo)에서는 세계관으로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규모가 커지면 자신이 만든 모든 기준이 희석된다는 걸 목격했어요.
그래서 그가 세 번째에 내린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작게 남는 대신, 한 치도 타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 이름을 걸었어요.
오트 티 쿠튀르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었어요. 평생을 돌아 결국 찾아낸, 스티븐 스미스만의 방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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