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사유입니다. 🍵
오늘은 한국의 대표적인 차(茶) 브랜드 '오설록'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녹차요? 떫고 맛 없잖아요."
한국에서 차를 권하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반응입니다. 커피는 매일 마시면서도 차는 왠지 어렵고, 떫고, 번거롭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실제로 1970년대 한국에는 이렇다 할 차 문화가 없었어요. 커피 위주의 음료 시장에서 차는 회사 탕비실에서 잠깐 꺼내 마시는 것, 혹은 감기에 걸렸을 때 마시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점들이 눈에 띕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오설록'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제주 여행 코스에 '오설록 티뮤지엄'은 빠지지 않습니다.
오설록은 어떻게 '차를 마시지 않는 나라'에서 연매출 937억 원의 브랜드가 되었을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오설록은 차와 소비자 사이의 장벽을 없애, 사람들이 차에 다가서는 일을 쉽게 만들었어요.
1. 땅의 장벽 ㅡ 돌밭에서 차밭을 만들다
차밭? 없으면 만들면 되지!

1979년, 제주도 서귀포.
아모레퍼시픽(당시 태평양) 창업주 서성환 회장은 차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제주의 황무지를 샀습니다. 이미 녹차로 유명한 보성이나 하동이 아니라, 차 재배 역사가 전혀 없는 제주의 돌밭을 골랐어요.
"비옥한 땅은 누구든 쓰겠지만, 황무지는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안 쓸 것 아니오"
- 서성환 회장
(아주 이타적이고 훌륭한 비전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연구와 검토 후에 결정되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다분히 전략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특히 서광다원이 있는 서광리는 전체가 돌밭이라 해도 될 만큼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그 돌과 잡목을 하나하나 걷어내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죠.
도로도, 수도도, 전기도 없는 땅이었어요. 울퉁불퉁 솟아나온 화산암을 손수 걸러내고, 한 시간 거리에서 물을 길러와 밭을 다졌습니다. 서성환 회장도 한 달에 두 세 번은 직접 제주를 찾아 밭을 돌봤다고 합니다.


1979년 '도순다원(현 돌송이 차밭)'을 시작으로 1983년 '서광다원', 이후 '한남다원'까지 — 20년에 걸쳐 차밭은 조금씩 넓혀져갔습니다.
그렇게 일군 차밭이 지금은 무려 100만 평에 이릅니다.
2. 맛의 장벽 ㅡ 떫고 쓴 차를 쉬운 차로
우리 차는 안 써요~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차밭. 이 풍경 아래 있는 건 '화산회토'라 불리는 흙이에요. 화산 활동이 만들어낸 이 검은 흙은 유기물이 풍부하고 물이 잘 빠집니다. 차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않아도 충분한 영양을 받을 수 있죠.
그래서 이 곳에서 자란 차의 맛은 깔끔하고 부드럽습니다. 쓰거나 떫지 않아요. 차를 처음 마시는 사람도 "어, 괜찮은데?" 하고 느낄 수 있는 맛입니다.
이걸 더 잘 이해하려면 '하동'의 차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어요.

요약
| 구분 | 하동 차 | 제주 차 |
| 재배 방식 | 씨앗 재배 (재래종) | 꺾꽂이 품종 |
| 나무의 다양성 | 매우 다양 | 거의 동일 |
| 토양 | 산지 토양 | 화산회토 |
| 맛 특징 | 깊고 복합적 | 깨끗하고 부드러움 |
하동 차와 제주 차의 차이는 '깊은 산 속에서 자란 야생화'와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의 꽃' 같은 차이라고 보면 쉽습니다.
1. 품종 : 씨앗 vs 꺾꽂이
하동 차는 씨앗을 땅에 심어 키운 '재래종'이 많습니다. 씨앗으로 자란 나무는 뿌리가 땅속 아주 깊숙이 뻗어 내려갑니다. 덕분에 땅 깊은 곳의 영양분을 듬뿍 빨아들일 수 있죠.
제주 차는 주로 차나무 가지를 꺾어 땅에 심는 '꺾꽂이(삽목) 방식으로 키운 품종이 많습니다. 이 방식은 뿌리가 옆으로 넓고 얕게 퍼지는 특징이 있어요. 일정한 맛을 내는데 유리합니다.
2. 토양 : 바위 틈 vs 화산토
하동의 차 밭은 경사가 가파르고 돌이 많은 산비탈에 있습니다. 차나무가 바위 틈 사이로 뿌리를 내리며 흙 속의 다양한 미네랄을 흡수해요. 그래서 맛이 아주 풍부해집니다.
제주는 현무암과 화산재로 이루어진 땅이죠. 물이 고이지 않고 아래로 쑥쑥 빠져 '배수'가 엄청나게 잘 됩니다. 덕분에 차 맛이 잡미 없이 아주 깨끗하고 선명해져요.
그래서 하동의 차는 향과 맛이 야생의 자연스러운 풍미를 갖고 있고, 복합적이고 깊게 느껴집니다. 차를 처음 마시는 사람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어요.
오설록은 그 반대편을 선택했습니다. '해마다, 누가 마셔도, 실패 없이 깔끔한 맛.'
언제 어디서 마셔도 일정한 품질을 보장하는 차를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오설록의 순수차 평가는 박한 편이에요. 커뮤니티에서는 "가향차는 괜찮은데, 일반 순수차는 가격 대비 별로"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와요. 깔끔하지만 깊이가 아쉽다는 거죠. 하동이나 중국의 복잡한 풍미의 차를 마셔본 사람에게 오설록의 순수차는 조금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오설록의 타겟은 애초에 그 사람들이 아니습니다. 차를 잘 모르는, 그래서 차 앞에서 망설이는 대다수를 위한 선택이었죠.
달빛걷기 — 차를 몰라도 사랑할 수 있는

오설록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어요. 순수 녹차만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달빛걷기'라는 이름의 차를 아시나요? 오설록의 스테디셀러예요. 제주산 후발효차에 국산 돌배와 별사탕을 블렌딩한 가향차(인위적으로 향을 가미한 차)인데, 카페인이 없어서 밤에도 마실 수 있어요.
달큰한 배향이 달빛처럼 은은하게 감돌죠. 떫고 쓴 녹차의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0년 넘게 '입문용차'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제주 밤바다에 부서지는 은빛 달빛과 금빛 별빛, 아련히 출렁이는 달무리를 따라 거닐면..."
이건 오설록이 이 차에 붙인 이야기예요. 차의 맛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제주의 풍경'을 이름에 담았습니다.
이건 유럽 티 브랜드들이 감성적 이름을 붙인 전략과 같은 맥락이에요. 차를 '마시는 음료'에서 '경험하는 순간'으로 바꾸는 거죠.

처음에는 이처럼 '감성으로 승부'하는 전략이었다면, 이후에는 '동백이 피는 곶자왈', '삼다연 제주영귤'처럼 '제주지명+재료'를 결합한 이름으로 제주 감성에 더해 소비자가 맛을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피치 블랙티', '무화과 쇼콜라 블랙티' 등 재료명과 영어를 함께 쓰면서 해외 소비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감성보다는 맛의 즉각적 전달에 더 힘을 쓰고 있습니다.)
다각도로 소비자의 진입 장벽을 허무려는 노력이 느껴지지 않나요?
일로향 — 높은 수준을 추구하다

그렇다면 오설록은 쉬운 맛만 추구하는 브랜드일까요?
아니에요. 오설록에는 '일로향'이 있습니다.
'화로에서 피어나는 차 향기'라는 뜻의 이 차는 오설록 기술력의 정점이에요. 매년 4월, 한라산에 잔설이 남아 있을 때 한남다원에서 맑은 날만 골라 어린 차 싹을 손으로 하나하나 딴 뒤, 한국 전통 덖음과 일본식 증제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만들어요.
매년 극소량만 한정 생산되고, 2015년 북미 티 챔피언십에서 2,500개 출품작 중 1위를 차지했어요. 차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수준이죠.
오설록의 전략은 '이중 구조'예요. 가향차로 문턱을 낮춰서 사람들을 차의 세계로 들어오게 하고, 일로향으로 "이 브랜드는 좋은 차도 만들 줄 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대중성과 전문성,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 겁니다.
아쉬운 건 '가격'입니다. 일로향은 60g에 17만원 상당인데, 이 가격이면 중국의 명차들도 살 수 있거든요. (물론 브랜드와 산지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중국차는 가짜가 많고, 품질이 들쭉날쭉할 위험이 있지만, 일로향은 '오설록'이라는 브랜드가 보장하는 최상급 품질의 균일성을 제공합니다.
가성비나 취향보다는 '한국에서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녹차' 중 하나를 경험한다는 상징적인 가치가 더 커 보입니다.
3. 공간의 장벽 ㅡ 차를 찾는 것에서 만나는 것으로
여행지에 준비된 만남

2001년 9월, 제주.
오설록은 차를 팔기 전에 공간을 먼저 세웠습니다. '오설록 티뮤지엄' — 한국 최초의 차 박물관이에요.
생각해보면 이건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어요. 보통 차 브랜드라면 매장을 먼저 열잖아요. 하지만 오설록은 "매장"이 아닌 사람들이 찾아올만한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빛 다원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어우러진 이 공간에 연간 약 150만~200만 명이 방문해요.
핵심은 이겁니다. 이 사람들 중 대부분은 차를 마시러 온 게 아니에요. 제주 여행을 온 거예요.
차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여행 코스에 넣어두면 자연스럽게 오설록을 만나게 되죠. 차를 "찾아가야 하는 것"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으로 바꾼 겁니다.
오설록은 매장을 만든 게 아니라 제주라는 섬 자체를 브랜드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브랜드가 소비자를 찾아가는 대신, 소비자가 이미 가고 있는 곳에 브랜드를 심어둔 거죠.
60개에서 5개로 — 체인점에서 가치있는 목적지로

오설록은 한때 전국에 60여 개가 넘는 티하우스를 운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단 5곳입니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에요. 매장 축소와 온라인 채널 성장이 맞물리면서, 오설록의 전체 매출은 오히려 올라갔습니다. 2015년 556억 원이던 매출이 2022년에는 813억 원으로 약 1.5배 늘었어요.
당시 CEO 서혁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매장 수를 줄이더라도, 고객이 방문했을 때 차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은 5곳은 각각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져요.
'북촌 티하우스'는 1960년대 가옥을 리노베이션해서 차와 일상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었고, '한남 티하우스'는 페이스 갤러리와 협업해 컨템포러리한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어둡고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한남동이라는 동네와 어울리죠.
오설록의 티하우스는 어디에나 있는 "체인점"이 아니라, 가야 할 이유가 있는 "목적지"로 바뀌었습니다.
4. 소비의 장벽 ㅡ '차'가 아닌 '쉼'을 선물하다
'쉼'을 전하고 싶은 마음
오설록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을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이걸거예요.
카카오톡 선물하기

지금 오설록의 가장 강력한 판매 채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신기한 구조예요. 차를 사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이 다르다는 뜻이거든요.
사실 차를 직접 우려 마시는 건 좀 번거롭죠. 물 온도를 맞추고, 우리는 시간을 재고, 다기를 꺼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잠깐 쉬어"라고 말해주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꽤 자주 드는 생각이기도 하고요. 오설록은 그 마음이 향하는 곳을 정확히 겨냥했습니다.

생일 축하를 전할 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힘든 하루를 보낸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때 — 카카오톡에서 터치 몇 번으로 오설록의 티 세트를 보내면, 그게 곧 "세련된 휴식을 선물하는 일"이 됩니다. 차를 우릴 줄 몰라도 상관없어요. 받는 사람에게 전해지는 건 차가 아니라, 쉬어가라는 마음이니까요.
오설록은 이 구조를 통해 '차'를 "쉼을 전하고 싶은 순간"의 매개로 만들었어요. 차를 마시는 습관이 아니라, 차를 보내는 습관을 만든 거죠.
생각해보면 이건 오설록이 경쟁하는 시장 자체가 달라졌다는 뜻이에요. 스타벅스나 하동 녹차와 싸우는 게 아니라, 카네이션이나 케이크와 싸우는 거죠.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를 고민하는 순간, 오설록이 선택지로 떠오르게 만든 겁니다. 선물 시장에서만큼은 음료 브랜드가 아니라 감정 전달 브랜드가 된 거예요.

여기에 오설록의 숨겨진 무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패키지예요. 모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은 수십 년간 화장품 패키지를 다듬어온 회사입니다. 그 미감이 오설록의 케이스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카카오톡에서 썸네일로 봐도, 받아서 손에 쥐어도 "이거 예쁘다"는 반응이 먼저 나와요. 차를 잘 몰라도 선물하고 싶어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마무리 ㅡ 오설록이 허문 것, 아직 허물지 못한 것
정리해보면, 오설록이 한 일은 더 명확해집니다.
소비자와 차 사이의 장벽을 체계적으로 허무는 것.
| 장벽 | 오설록의 해법 |
|---|---|
| 차 밭이 없었다 | 제주 돌밭을 100만 평 차밭으로 만들었다 |
| 차 맛이 어려웠다 | 화산회토의 깔끔한 맛 + 가향차로 입문 문턱을 낮췄다 |
| 차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 제주 여행지/도심 안에 브랜드를 심었다 |
| 차를 사는 게 번거로웠다 |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손쉽게 선물할 수 있도록 했다 |
아직 남은 질문도 있죠.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받은 사람이 정말 차를 모두 우려 마셨을까요? "세련된 휴식을 선물하는 것"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차를 마시는 습관"까지 만들어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당근마켓에서 오설록을 검색하면 수많은 선물세트들이 올라와있더군요)
오설록은 차에 다가가는 일을 가장 쉽게 만든 브랜드예요.
이제 그 앞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게 할 수 있을지가 다음 장벽이 되었습니다.
과연 오설록은 이번에는 어떻게 그 장벽을 허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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