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어릴 적 동네 목욕탕을 마지막으로 간 것이 언제인지 기억하시나요? 아마 어떤 분들은 태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만큼 동네 목욕탕은 이제 찾아보기도 쉽지 않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쉽게 놓쳐버리기 아쉬울 만큼 중요하죠.
그러한 의미를 포착하여 이미 많이 사라졌지만 지금부터라도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한 회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목욕탕을 연구하는 사람들
부산을 근간으로 활동 중인 독특한 브랜드가 있어요. 이곳이 독특한 가장 큰 이유는 다루는 소재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목욕탕’입니다.
사우나도, 찜질방도 아닌 동네 목욕탕에 관한 기록과 이야기를 공유해 가는 이곳은 2023년 시작된 ‘매끈목욕연구소’라는 (이름마저 이목을 끄는) 브랜드예요. 매끈목욕연구소는 뒤에서 더 깊이 이야기 나눌 ‘집 앞 목욕탕’이라는 제목의 매거진을 정기적으로 발행하며, 그를 중심으로 동네 목욕탕을 한국 고유의 문화 자산으로서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젊은 세대의 상당수는 회사 앞 사우나 등과는 또 다른 전통적인 동네 목욕탕의 문화를 많이 경험해보진 못했어요. 생활 전반의 수준과 인프라가 현대화되며 집에서도 충분히 목욕을 할 수 있게 된 후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자연스레 목욕에 대한 개념과 의미도 달라졌어요.
이전 세대들에게 목욕, 특히 목욕탕은 그야말로 몸을 씻기 위해 가는 곳이었죠.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겐 몸을 씻는다는 목적 외에도 휴식을 취하는 장소, 힐링하는 곳, 스트레스가 풀리는 취미의 공간 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즉 매끈목욕연구소는 이러한 세대 간의 간극에서 사라져 가는 목욕 문화를 기록하고 공유하며, 가능하다면 최대한 옆에 두어 계속 지켜가고 싶은 문화로 승화시키고자 합니다.
왜 하필 부산 목욕탕일까?
‘매끈목욕연구소’는 하나의 독립된 회사가 아니에요. 이 브랜드를 이끄는 목지수 대표가 운영하는 도시 브랜딩 회사에서 시작된 하나의 프로젝트죠. 본업이 지자체, 도시들을 알리고 홍보하며 정책까지 만드는 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로컬 문화까지 관심이 닿았고, 여기에 대표 개인의 오래된 관심과 호기심이 더해지며 사내 프로젝트로 시작된 것입니다.
대표가 로컬 문화, 그중에서도 동네 목욕탕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약 20여 년 전 어릴 적 살던 동네를 방문한 것이에요.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동네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반가움과 함께 많았던 동네 목욕탕 굴뚝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품게 된 그가 동네 목욕탕의 기록을 콘텐츠화하여 남기기로 한 것이죠.
특히 그는 부산의 동네 목욕탕에 주목했어요. 코로나로 인해 실제 영업 중인 곳이 등록 기준 700여 곳에서 500여 개로 줄었다고 파악되긴 하지만, 다른 지역 및 가까운 일본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이기 때문이에요. 유독 부산이라는 지역에 많은 수가 남아있는 이유 또한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궁금증을 먼저 풀어보자면,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의 개인 주택 목욕시설 개발 속도가 더뎠고, 도시의 주된 산업과 역사적 환경이 큰 원인이었어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6.25 전쟁 시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밀려와 정착했어요. 그리고 가난한 피난민의 비율이 높아지자, 부산에서는 욕실 있는 주택 시설의 확대 속도가 상대적으로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 신발 산업 등 제조 산업이 발달한 도시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먼지가 많은 공장 등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 또한 많아 퇴근 후 목욕탕을 찾아 씻고 귀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 있었어요. 그래서 동네 목욕탕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고 오랫동안 이용된 것입니다.
이처럼 동네 목욕탕은 지역 및 지역 구성원의 특성과, 멀게는 역사적인 특징까지 맞물려 만들어진 로컬 문화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배경은 매끈목욕연구소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목욕탕을 기록하는 법
매끈목욕연구소가 동네 목욕탕을 콘텐츠로 기록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잡지입니다. ‘집 앞목욕탕’이라는 제목의 잡지를 개간하여 현재 남아있는, 또는 새로운 시각으로 리뉴얼한 공간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생각과 브랜딩을 나눕니다. 관련 정보와 주제들을 함께 다루는 것도 물론이고요.
그리고 때론 일제 강점기에 부산지역에 탕 문화의 영향을 많이 주고 간 일본 현지로 날아가 그곳의 목욕탕 문화를 알아보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다시 인기가 솟고 있다는 일본의 목욕 및 사우나 문화를 소개하며, 한국의 동네 목욕탕을 역으로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물론 제주와 같은 한국의 여러 지역 속 목욕탕 또한 소재로 선택되고요.
이때 인터뷰를 진행하며 깊이 알아볼 목욕탕을 선정하기 위해 매끈목욕연구소는 세 가지 기준을 세웠어요. 깨끗한 물을 사용하는가, 청결하게 유지하는가, 그리고 친절한가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기준들을 검증하기 위해 반드시 목욕탕을 미리 방문해 봅니다. 직접 물을 먹어보기도 하고 청결함을 둘러보며, 주인의 친절함도 체크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특히 주인의 친절함은 유념하여 체크하는 부분인데요. 그것은 동네 목욕탕이라는 공간에 요구되는 친근하고 편안한 서비스와 경험을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동네’라는 공간적 특성, 그리고 기억 와 추억이라는 문화적 특성을 잘 보존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선 이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매우 중요하다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한편, 잡지가 글과 이미지를 통해 동네 목욕탕을 기록하는 매체라면, 언제 없어질지 모를 공간 자체를 기록하기 위해 매끈목욕연구소는 한 단계 더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방법도 실행합니다.
방법은 목욕탕 공간 구조를 3D스캔으로 기록하여 그 데이터베이스를 남기는 것입니다. 만약 공간이 사라지더라도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언제든 다시 복원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놓은 것이죠. 이러한 조치는 매우 중요하고도 직접적인 기록의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요. 간접적인 기록이 잡지라면, 데이터베이스는 직접적인 기록이라, 탄탄한 아카이브를 만들었다는 데 큰 의의를 갖는 것이죠.
그 외에도, 동네 목욕탕을 주제로 한 팝업 이벤트 공간을 열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하고 즐거운 방식의 소통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공간, 그 이상의 의미
동네 목욕탕은 또 하나의 동네 커뮤니티 센터와 같은 역할을 했었어요. 주말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이웃들이 모여 함께 목욕을 하며 최소 몇 십 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했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통해, 동네 정자에 모여 수다를 떠는 시간을 통해, 반상회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행하는 행위가 다를 뿐 지역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이게 하는 구심점이라는 것이 동네 목욕탕의 또 다른 역할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동네 목욕탕에 많은 사람들이 가던 시절과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진 지금은 그 독특한 커뮤니티 또한 사라져 간다 할 수 있어요. 그러한 의미에서 매끈목욕연구소가 동네 목욕탕이라는 좁지만 뾰족한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며 공유하고 남기는 과정은 어쩌면 한국 고유의 커뮤니티 문화를 기록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목욕탕이라는 공간 하나에 연계된 보이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의미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독특한 아카이브. 과연 앞으로 어떠한 기록을 쌓아갈 것이며, 그 기록은 어떠한 형태로 한국만의 목욕 문화에 영향을 주게 될까요?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문화를 보존하는 매끈문화연구소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 공식 홈페이지 | smoothlab-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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