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5일 발행 콘텐츠 ( ! 현재 상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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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호텔, 재난이 일어나면 피난민 숙소로 변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좋은 호텔을 다 놔두고 굳이 언제 피난민 숙소로 바뀔지 모를 곳에 머물까요? 그리고 호텔이 어떻게 피난민 숙소로 변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의구심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이 독특한 호텔에 대해 하나하나 비밀을 풀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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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를 낳은 트라우마
지진이 꽤나 생활화된(?) 일본 국민들에게도 2011년 어느 봄날의 쓰나미는 너무나 치명적이었습니다. ‘동일본지진’이라 일컬어지며 여전히 수습 중인 이 지독한 자연재해는 대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죠. 직접 피해를 입은 해당 지역민들은 물론, 전 일본 국민들, 하물며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직, 간접적인 트라우마를 입혔습니다.
이미 소는 잃었지만 그래도 외양간을 다시 지어야 했습니다. 정부 부처와 각종 단체는 물론, 디자이너, 건축가, 투자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또다시 닥칠지 모를 재해를 대비함과 동시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 아이디어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엔 2007년 컨테이너 모듈 제조회사로 시작된 ‘주식회사 디벨로프(株式会社ディベロップ)’도 있었습니다.
이 회사는 원래 트렁크 룸 임대, 부동산 개발, 에너지 개발, 육아 지원 등의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이었습니다. 그런 이곳의 사장 오카무라(岡村)가 지진 직후 비즈니스를 위해 현장을 찾으며 이전엔 없던 새로운 비즈니스가 시작되었죠.
디벨로프는 지진이 일어난 얼마 후, 복구 사업에 투입된 노동자들을 위한 간이 숙박시설 및 창고용 컨테이너 제작을 주문받았습니다. 컨테이너의 모듈 형식을 활용한 공간을 설치하는 것이었죠.
그렇게 오카무라 대표는 현장을 찾았고, 아직 제대로 된 가설주택이 만들어지기도 전이라 체육관 등에서 힘겹게 지내는 피난민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하루아침에 가족과 친구, 집을 모두 잃은 그들의 모습은 매체를 통해서만 상황을 지켜보던 대표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복구에 투입된 노동자들의 지친 모습 또한 마음의 짐을 남았고요.
대표의 이러한 직접적인 경험은 하루빨리 감상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가설 주택마저 설치까지 수개월 이상 걸리는 상황에서 피난민들과 노동자들을 방치할 순 없었습니다. 최대한 빠르고 쾌적하게 공간을 제공하여 그들의 삶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주고자 했죠. 그 결과 설치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가설주택 대신 지금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컨테이너 호텔’ 콘셉트를 떠올렸습니다. ‘컨테이너’와 ‘호텔’이라는 서로 거리가 있는 두 요소를 믹스한 것입니다. 그렇게 일종의 호텔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레스큐(Rescue) 호텔’이 탄생했습니다.
모듈형 호텔을 누가, 왜 이용할까?
레스큐 호텔은 브랜드명을 ‘더 야드(The Yard)’로 확정하여 2022년 7월 기준, 관동지역, 아이치, 시코쿠, 큐슈, 오키나와 지역에 53 거점 1,780여 개의 객실을 두고 있습니다. 레스큐라는 이름 하에, 다양한 지역에 객실을 구축한 시스템입니다. 객실들은 만약 자연재해에 피난민이 발생할 경우 바로 대형 트럭에 실려 해당 지역으로 출발합니다. 설치까지 수개월이 필요한 가상 주택과 달리, 단 24시간 이내에 부족하나마 개별 공간을 제공하게 되지요.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항상 대기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습니다. 즉, 모듈 형태라는 독특함을 브랜드의 핵심 무기로 사용합니다.
‘더 야드’는 한 마디로 ‘건축용 컨테이너 모듈을 이용한 1동 1 객실형의 숙박시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컨테이너이기에 한 동이 한 객실을 의미하고, 그러한 형태는 다른 객실과 벽체를 공유하지 않아 소음 등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또한 주로 자연 속에 자리하여 심신이 지친 사람들을 달래주는 기능까지 제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주목할 점은 디벨로프의 컨테이너가 해상 수송용, 또는 기타 화물 컨테이너들과 확연이 다른 재질 및 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으나, 내부와 주변 환경적인 요소들은 자체 개발된 ‘주거용 컨테이너’입니다.
각 공간의 크기는 13㎡로, 다소 아담한 크기입니다. 아무리 주거용이라 하더라도 건물 형태의 호텔이나 집만큼 넓고 쾌적하기는 힘들지요. 중요한 기능인 이동성 또한 확보되어야 하고요. 하지만 유명 글로벌 브랜드의 침대, 냉동고 또한 포함된 중형 냉장고, 책상, 전자레인지, 하물며 공기청정기까지 알차게 구비되어 있어 일반적인 비즈니스호텔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일반 호텔과 달리 도심이 아닌 고속도로 옆과 같은 외진 지역에 위치하여 자연환경이 탁월합니다. 머무는 고객들에게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은 환경이 주는 휴식과 자유로움을 선사하지요. 하룻밤에 7,000엔(약 6만 8천 원)인 요금 또한 합리적입니다. 장기 파견일 경우엔 사용 일수에 따라 다양한 금액으로 요금 체계가 구성되어 있어 더욱 합리적이고요.
그런데 잠깐.
더 야드 호텔은 어떤 고객들을 타깃으로 할까요? 아무리 가격이 합리적이고 자연환경이 좋다 한들 더 편한 호텔들 대신 굳이 이곳까지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게다가 관광지나 시내가 아닌 외진 지역에 위치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그들의 세 가지 수익모델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익 구조에 담긴 차별성
우선 첫 번째 수익구조의 비밀은 타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호텔의 주요 타깃은 산업개발 지구를 찾아오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여행객이 아니라, 그것도 특별한 지역으로 출장을 오는 비즈니스맨들이지요. 다시 말해, ‘아직 인프라 구축이 되어있지 않았거나 시내와 떨어져 있어 숙박 공간이 마땅치 않은 현장을 방문한 비즈니스맨’이라는 좁은 레드 오션을 주목한 것입니다.
이러한 타깃을 설정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컨테이너가 가진 이동성과 모듈형 형태 때문입니다. 트럭에 싣기만 하면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진 지역에 호텔을 짓는 것은 대부분의 회사에게 하기 싫거나 힘든 일이죠. 즉, 디벨로프는 그러한 이유로 경쟁자가 별로 없는 시장에서 안정적인 사업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해당 비즈니스맨들 또한 현장과 먼 호텔까지 왔다 갔다 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자연까지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그만한 곳이 없고요. 그야말로 서로 win-win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수익구조는 B2B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호텔이 아닌 재난 시 피난민 숙소로 사용할 각 지자체들이 그 대상입니다. 미리 상호 계약을 체결해 두고 일정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지요. 디벨로퍼라는 회사가 컨테이너 호텔 사업을 시작한 애초의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수익 형태입니다.
마지막으로 회사는 컨테이너 호텔이 지어지는 부지의 주인들을 통해 수익을 얻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요? 호텔을 지으려면 땅 주인에게 땅값을 지불하거나 다른 형태의 금액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을 상대로 돈을 벌다니요? 해답은 바로 호텔 운영 위탁에 있습니다. 디벨로프는 땅 주인에게 ‘우리 호텔을 당신 땅에 지을 테니 구입하세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건 강매나 마찬가지니까요. 대신, 호텔로 또 다른 수익을 내고자 하는 주인들에게 그 땅에 호텔을 지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하기 힘든 운영을 대신해주는 것입니다. 즉, 주인은 호텔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구입’하게 되지만, 운영권은 전문 업체에 맡겨 원하는 수익 구조만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또한 서로에게 win-win인 것이지요. 게다가 재난 시 피난민들의 숙소 마련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는 자긍심까지 가질 수 있어 의미 있는 경험이 됩니다. 물론 더 야드 호텔은 이동식 컨테이너의 형태라 원한다면 호텔 비즈니스를 그만 두기에도 여타의 호텔들보다 용이하고요. 도전에 대한 부담까지 덜한 것입니다.
선한 영향력과 실행의 의미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얼마 전, 동일본지진 이후 거의 10여 년의 세월을 가설주택에서 보낸 피난민들이 드디어 새로운 집에 입주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그간의 어려움과 슬픔, 후유증과 트라우마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자신의 잘못이 전혀 없음에도 많은 것을 잃었죠.
지난한 시간들 속에 마음이 약해져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들 마저도 마치 자신의 잘못으로 잃게 된 양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점차 시간이 지나며 그들의 고통에 관심이 줄어드는 사회와 사람들의 외면도 상처로 남았을 것이고요.
바로 그 점에 레스큐 호텔은 가장 주목했습니다. 억울하고, 길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조금이나마 존엄성을 존중받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리며 상처의 회복을 앞당길 수 있도록 꾸준히 돕고자 한 것입니다. 누군가는 결국 돈을 벌고자 하는 것 아니냐 할지 몰라도, 레스큐 호텔의 선한 영향력과 실행은 앞으로 또 언제 올지 모를 재난 앞에 분명 이전보다 나은 변화를 이끌어줄 것입니다. 끝까지 잊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 그것만큼 피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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