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인생의 숙제

“안녕하세요.”

“어 왔니. 우리 시집 가기 프로젝트 좀 진행하자.”

사촌 조카의 돌잔치에서 일년만에 만난 친척 어르신이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이 자리가 마냥 편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어쩐지 입맛이 뚝 떨어지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올 때부터 높은 텐션은 아니었으니 가라앉을 것도 없나? 태어난지 일년이 된 귀여운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려 모인 자리이거늘 참석자인 나에게 가시 방석이 덤으로 주어졌다. 가시 방석에 앉으면 엉덩이만 따가운 게 아니라 방황하는 눈을 여기저기 굴리게 된다. ‘음, 넓네. 사람도 많네.’ 어색하게 붕 뜬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다 또 다른 사촌과 눈이 마주쳤다. 모르는 여성 분과 성큼성큼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여자친구예요. 내년에 결혼하려고요. 인사도 할겸 같이 왔어요.” 명절마다 마주치면 짓궂게 놀려대던 사촌오빠가 여자 친구를 데려온 것이다. 아, 너도 가는구나. 외갓집에서 내 위의 언니 오빠들이 다 결혼하고 사촌오빠 한 명 남았는데 그마저도 떠나간다니, 최전방으로 등떠밀린 심정이었다. 오늘밤 이 가족 모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겠지만 돌잔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요새 썸타거나 만나는 사람 있니?”

어른들의 분주한 대화가 핑퐁핑퐁 이어지다가 갑자기 나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숨길 생각은 없어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인지 질문이 이어졌다. 미래를 함께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예선을 통과한 분위기였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두 가지 경우로 갈린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며 부지런히 만나라고 훈수를 두거나, 그래 만날 사람이 없지 하며 위로 섞인 목소리로 더 말을 잇지 못하는 경우다. 중요한 건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하지 않다는 거다. 주어진 숙제를 여태 못하고 교실에 남아 나머지 공부를 하는 느낌도 들고 남들이 내게 궁금한 건 결혼을 하냐, 언제 하냐 그런 것들 뿐이라는 것도 여간 씁쓸한 일이 아니다. 내게 결혼은 모두가 주목하는 숙제가 되어버렸다.

세상이 예전과 아무리 달라졌대도 무엇이든 적령기라는 게 있고 명절마다 아무리 명절잔소리판 얘기가 나와도 듣는 이야기는 바뀌지 않는다. ‘요새 결혼적령기가 어디 있냐, 때 되면 가는 거고 혼자 살아도 된다.’ 이런 말은 극소수의 어르신만 공감하신다. 때로는 이 말이 정신승리를 위한 말로 여겨진다. 나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전방위로 인생 과업에 대한 공격을 받는다. 결혼을 한 친구는 아이는 언제 낳을 거냐는 말을 때마다 듣고, 아이가 하나인 친구는 둘째는 언제 낳을거나는 말을 듣는다. 그냥 인사치레나 관심 표현으로 하는 말로 넘기기엔 모두가 크고 작은 타격을 입는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가 인생을 건 큰 고민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모여 폭풍 공감하다가 허공에다 외친다. “압박 안해도 충분히 고민스럽다구요!”

격동의 30대를 통과중인 우리는 그 질문의 굴레에 제대로 갇혀있다. 누군가는 결혼은 꼭 해야하는가 하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느라 고민이고, 누군가는 아이는 꼭 낳아야 하나 두려워하며 결정을 유보한다 자신에게 결정권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삶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사람들에겐 주변의 관심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모른다. 나조차 모르는 미래로 걸어나가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압박의 쳇바퀴를 돌까봐 두렵다.

어른들 말씀은 일리가 있고 배울만한 삶의 지혜가 분명 존재한다. 혼자보단 같이가 좋고, 가족이 많을 수록 나이 먹어서도 외롭지 않다는 거, 집은 어떤 집에 살아야하고 어떤 사람과 결혼하면 좋은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충분히 동의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대부분 걸어간 그 길을 나 또한 착실히, 때에 맞게 걸어왔다면 적어도 간섭의 스트레스는 덜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나이를 먹을 수록 선명해지는 진리가 아니던가요? 목구멍까지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있는데 막상 말할 만한 상황이 되면 전부다 삼켜버린다. 뭐랄까, 그 곳에 내 말에 동의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랄까. 그렇기에 느리게 걷는 사람들은 갈수록 외로워진다.

지금 이대로 좋다는 생각과 내 삶의 과업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수시로 충돌한다. 남의 말은 신경쓰지 말자는 생각과 다음번엔 꼭 받아치잔 생각도 늘 부딪친다. 어떤 게 맞는걸까? 그 답은 찾기도 어렵고 정해진 정답도 물론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만은 분명하다. 간섭받기 싫어서, 숙제를 해치우듯이 삶의 속도를 끌어올릴 수 없다. 내 삶의 화두가 뭐냐 묻는다면 솔직히 ‘인생의 과제’이지만 그것도 결국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가, 내가 행복해지는 길인가가 가장 중요하다. 내 삶이 언제 어떤 변화를 맞이할지 모르겠다. 만약 변화가 생긴다면 그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내가 원해서 한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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