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단상 - 2024. 10. 17

2023 우기의 태국 (17)

2024.10.17 | 조회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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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기억의 단상

매일 아침마다 당신에게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전합니다.

 

오늘은 간을 좀 해독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래서 해장 겸 점심으로 정의 언니, 소희 언니와 함께 리틀 서울에 가서 김치말이국수를 먹었다. 시원한 국물을 들이키니 해장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와서 낮잠을 자고, 로비로 내려와 노래를 들으며 앉아서 쉬다가 정의 언니가 저녁으로 집밥을 먹자고 해서 빵집 바로 옆의 정의 언니네 집에서 소희 언니와 함께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소희 언니 말로는 정의 언니네 집에서 밥만 먹으면, 너무 맛있어서 한 공기 더 먹게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정말 밥 맛집이었다. 맛있고 든든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와 로비에 앉아서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방으로 올라갔다. 정말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은 날이 되었다.

 

밤에 술을 먹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클럽을 가는 것도 쉬게 되었다. 그 참에 잠도 평소보다 일찍 자게 되었다. 한 번씩은 이런 심심한 날도 좀 있어야 체력이 회복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푹 쉬었으니, 내일 그만큼 더 열심히 보내야지.

 

*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눈이 평소보다 더 일찍 떠졌다. 일찍 눈이 떠졌으니, 당연히 옥상에 가야지. 아직 해가 덜 뜬 치앙마이의 새벽 하늘에 구름이 하늘거렸다. 구름의 모양을 보니 오늘의 날씨가 쾌청할 모양이었다. 그래도 우기인지라 언제 맑음이 사라지고 다시 비구름이 몰려올지 모르지만.

 

모닝 커피를 마시고, 간단하게 로비에서 글을 쓰고 있다가 점심으로 정의 언니, 소희 언니와 함께 크레이지 커리에 돈가스 카레를 먹으러 갔다. 두 사람이 이곳에 내가 가면 좋아할 만한 귀여운 것들이 많다고 해서, 크레이지 커리로 걸어가는 길에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다. 과연 내가 좋아할만한 게 뭘까.

 

크레이지 커리는 이름처럼 일식집의 느낌이 가득했다. 외관부터가 일본풍이었는데, 외관만 언뜻 보아서는 치앙마이가 아닌 일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내부도 일본풍으로 잘 꾸며져 있었는데, 오래된 옛날 티브이에서 후레쉬맨 뮤비 같은 게 나오고 있었고, 바 형식으로 된 1인 좌석 자리에는 온갖 피규어들이 귀엽게 장식되어있었다. 벽에는 후레쉬맨, 원피스 등등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고 각 테이블 마다 도깨비 가면 같은 게 놓여져 있었다.

 

언니들의 말처럼 정말 취향저격이었다. 이곳의 인테리어를 비롯해 소품들까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신나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언니들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신난 막내의 모습이 귀여웠던 걸까.

 

언니들에게 도깨비 가면을 같이 쓰고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다들 가면을 집어 들었다. 가면을 쓴 도깨비 셋의 모습이 다소 웃겨서 사진을 찍고 난 뒤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재밌는 쓰리샷이었다.

 

돈가스 카레의 맛도 좋았다. 보통 태국에 있는 음식점들은 다들 양이 적은데 비해, 여기는 생각보다 양도 많았다. 토핑도 이것저것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았고.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는 이제는 한국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해서, 설정샷도 하나씩 찍고 왔다.

 

빵집으로 돌아와 소화도 시킬 겸 로비에 앉아 있는데, 비가 갑자기 후두둑 내리기 시작했다. 역시 치앙마이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방금까지 햇살 쨍쨍하고 맑은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울한 구름들이 몰려와 지상으로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으니까.

 

비가 오니 낮술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는 맥주를 까기 시작했다. 근데 맥주를 마시다보니, 비 오는날은 역시 막걸리인데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막걸리 이야기에 정의 언니가 눈을 빛내더니 가지고 있는 막걸리가 한 병 있다고 했다. 비 오는 날에 막걸리라니! 귀한 막걸리를! 여기서 한국 술은 비싸니 귀하디 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막걸리를 먹으니, 이번에는 전이 먹고 싶었다. 때마침 토니 사장님이 등장했고, 폰이라는 태국 친구에게 배추전을 좀 해오라고 해서 덕분에 배추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아아, 이곳이 천국이 아니라면 천국은 어디 있으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막걸리에 배추전을 곁들이고 있으니 행복해졌다. 인생 뭐 없다,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쭉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9월 21일부터 9월 30일까지 '기억의 단상' 10월호 신청을 받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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