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제주 3년차 서흘입니다.
제주에 살다 보면 스스로를 둘러볼 시간이 많아집니다.
제주는 취향이 세분화되어 있고, 혼자 여행하기 좋은 곳들이 많으며,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거리를 분리할 수 있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것,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 등을 더 정교하게 알게 됩니다.
나에 대해 새롭게 알고 싶다면 ‘제주살이’는 특효처방약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호는 저희가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된 '나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소개해볼게요.
<오늘의 주제>
"제주에 살아보며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
❶ 서흘 - 사람이 그립지 않은 섬
❷ 서림 - 외로움이라는 감정
❸ 서나 - 살아보니 알게 된, 나의 제주
1. 사람이 그립지 않은 섬
서흘
“제주 살면 외롭지 않아?”
“…어… 전혀?”
제주살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외롭지 않다는 거예요.
제주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제주에 내려왔다가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던데,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나거나 연인을 사귀면서 해결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주에 내려와서 오히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그 시간이 매우 편하고 행복합니다.
제주는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사람과의 만남을 가지기 가장 좋은 장소인 것 같아요.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친절한 사장님들이 말을 걸어주시기도 하고,
설레는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이 고프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요.

딱 필요한 만큼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딱 필요한 만큼 사람을 채울 수 있는 곳.
그게 제주가 지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습니다.
2. 외로움이라는 감정
서림
제주에 살면서 처음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깊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원체 외로움을 잘 안 타는 성격이라 어딜 가든 혼자서 밥을 먹고, 카페를 가고,
혼자서 노는 일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내려와서야
처음으로 ‘깊은’ 외로움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로 언제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에 살았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는 사실이 주는 거리감이 생각보다 컸습니다.
혼자 살며 갑자기 찾아오는 외로움에 재미도 없는 숏츠들을
1시간 넘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밤들이 늘어났고,
이런 날이 늘수록 이 섬 생활이 답답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외로움이 꼭 나쁜 감정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외로움 덕분에 알게 된 것도 있습니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 나를 지탱하는 작은 루틴들, 그리고 나 스스로를 다루는 방법들.
아마 제주에서의 시간은 그런 의미에서 나를 정리해주는 기간 같아요.
떠올라야 할 감정은 떠오르게 하고, 붙잡고 싶지 않은 것들은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게 만드는 곳.
외로움조차도 결국 나를 위한 감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문득문득 외로움이 느껴질 때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나는 지금 나를 다시 배우는 중이구나.’
그게 제주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3. 살아보니 알게 된, 나의 제주
서나

성인이 되고 난 후 잠시 부산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데요.
제주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니, 이전과는 다른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어요.
첫 번째, 나는 자연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점.
부산에서도 바다를 종종 보러 가곤 했지만,
제주로 돌아오니 조금만 움직여도 오름과 바다를 볼 수 있었어요.
계절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제주만의 매력이고,
그게 저에게는 일상 속 확실한 행복이라는 걸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나는 관계의 결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
제주에 살 때 저는 제가 사람들의 시선을 유난히 신경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부산에서 지낼 때에는 어딜 가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남의 시선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더라고요.
반대로 제주에서는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행동 하나도 더 조심스럽게 하며 지냈던 것 같아요.
작은 섬 특유의 가까운 관계망 속에서
사소한 행동 하나도 더 조심스러워지는 제 모습을 발견했는데요.
덕분에 ‘나는 사람 사이의 분위기나
시선을 은근히 신경 쓰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나는 유행을 좇기보다 ‘나답게’ 사는 것이 편한 사람이라는 점.
제주에 살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물론 있어요.
지하철이 없는 교통, 주문할 때마다 붙는 배송비, 느린 유행까지.
그런데 그런 ‘느림’이 저에게는 편안함에 가깝더라고요.
부산에서는 사람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버거운 느낌이 들곤 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아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느낌이에요.
덕분에 저는 유행보다 ‘지금의 나에게 편한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가 좋아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워졌어요.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화려하게 사는 것 보다
나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살다 보면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고,
삶의 형태 또한 정말 다양하다는 걸 자주 느끼곤 합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들은 타지에서 살다 다시 제주로 돌아왔기 때문에
비로소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여러 경험을 해보는 건 ‘나’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튼 조금 불편할지라도,
매일이 여행처럼 느껴지는 제주에서의 삶이 저에게는 참 좋습니다.
<서흘 pick>
제주에서 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하는 것
처음에 제주살이를 할 때는 일단 유행하는 곳들을 다 가다보니 몰랐는데
이런 것들을 할 때 나에 대해 잘 알게 되더라고요.
가장 좋았던 것들을 정리해서 공유드려봐요.
1. 올레길 걷기
- 추천 코스: 9코스(가장 짧은 코스 중 하나), 5코스(남원 큰엉해안경승지 부근)
- 게하 스텝으로 일할 때, 유명한 올레길 코스가 게하를 지나갔거든요. 올레길을 걸으시는 손님들이 좋다고 추천해주셔서 궁금해서 걸어보았습니다.
- 계속해서 바뀌는 풍경에 감탄했고, 감정을 다스리거나 머리를 비우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짧은 코스나 일부 구간부터 걷기를 추천드려요.

2. 책방 가기
- 추천 책방: 유람위드북스, 또또공간(현재 휴무 중)
- 책방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가 정말 좋았어요.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읽고,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알 수 있게 됩니다.
- 책 종류가 많고 오랜 시간 편하게 책을 읽다 갈 수 있는 곳은 유람위드북스였고, 제 취향에 맞았던 예쁘고 디저트도 맛있던 조용한 북카페로는 또또공간을 추천드립니다.

3. 카페 가기
- 추천 카페: 흘, 고산의 낮 고산의 밤
- 유명한 카페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사장님의 철학과 취향이 묻은 카페를 방문해보는 걸 추천드려요. 마음이 평안해지고, 공간 그 자체를 오롯이 즐길 수 있습니다.
- 어떤 카페가 좋았는지, 그 카페를 어떻게 즐겼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나를 찾아가는 데 단서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뉴스레터의 주제인 <제주에 살아보며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는 어떠셨나요?
저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너무나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라
스스로에 대해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주에 살면서 저에 대해 새로운 점들을 정말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제주에서 새로운 ‘나’를 많이 발견하고,
그 모습을 반갑게 맞이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주제는 <신기한 제주 문화>입니다.
그럼 다음 주에 또 만나요 :)
서서히, 제주에 스며들도록
서서히 뉴스레터 https://maily.so/seoseo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