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5.

첫 시작은 항상 두려우면서도 설렙니다. 우선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최근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2026.01.25 | 조회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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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담소

정성들여 쓴 편지 한 통. 바로 당신을 위해 쓰겠습니다.

첫 시작은 항상 두려우면서도 설렙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 같아요. 첫 편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제가 펜팔 친구와 첫 편지를 나눌 때 했던 그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제 소개를 해야겠지요. 

펜팔 친구를 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관심사 같아요. 나이가 몇 살인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보다는 겹치는 관심 분야가 있는지, 생각의 결이 비슷한지, 공감대가 있는지가 더 중요하죠. 저는 관심사가 자주 바뀌는 편이라 딱 잘라서 말하기가 애매하네요. 뭐든 짧고 굵게, 오래 끌고 가 본 적이 얼마 없었던 것 같아요. 한껏 기대하며 동아리에 가입했다가 첫 날 이후 안 나간 적도 있고요,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취미를 얼마 안 되어 그만두기도 하죠. 그만두는 걸 참 잘하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더 잘해요. 이 <소담담소>도 제가 시작한 여러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하고 싶은 일은 참 많은데 그것들이 다 쓸모있는 일은 아니에요. 2026년을 맞아 세운 버킷리스트에는 '매일 예습/복습하기', '과제를 미루지 말고 받은 날에 바로 시작하기'처럼 학업이나 향후 진로를 위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직접 케이크 만들어보기', '작약 꽃다발 사기'처럼 조금 사소한 내용도 있거든요. 하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든 쓸모있어 보이는 것이든 그 모든 것이 쌓여서 제 앞으로의 삶을 더 신나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어요. 

최근에는 '이벤트'나 '제철' 등의 키워드에 관심이 있습니다. 거창하고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매일 무미건조한 하루가 아니라 조금 더 특별한 하루를 보내게 하는 작은 이벤트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어요. 생일, 크리스마스처럼 모두가 특별하다고 여기는 날 말고도 나만의 기념일을 가지고 사는 게 좋아요.

삽사롱 작가님의 <탐조일기>를 읽었는데 새와 관련된 여러 기념일들이 나와서 그걸 달력에 표시해뒀어요. 특이한 신품종 과일에도 약간 관심이 있는데, 먹어보고 싶은 과일이 어느 시기에 출하되는지 찾아보고 메모해두기도 했고요. 우표 수집에도 관심이 생겨서 우표 발행 계획을 보고 빠짐없이 적어뒀습니다. 1월 28일 수요일에는 <아기 동물> 시리즈 우표가 출시된다는데 디자인이 참 귀여워요. 실사 동물이 아니라 한국풍의 귀여운 일러스트인데 그게 제 취향을 아주 저격했습니다. 저번에 다른 우표를 사려고 했었는데 재고가 다 떨어졌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첫날에 빨리 우체국에 가서 사올까 싶어요. 11월에는 시네필 달력을 구매했습니다. 영화 속 사건이 일어난 날이 표시되어 있어요. 이미 본 영화 속 사건이 적혀 있으면 괜히 반갑기도 하고, 모르는 영화면 기념 삼아 한 번 시청해볼까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해요. 선착순으로 예약 판매를 받던 거라 수강 신청할 때처럼 알람을 맞춰 두고 기다려서 샀어요. 

향수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향수는 DS&DURGA의 스팀드 레인보우예요. 세탁소 수증기 냄새가 납니다. 처음 맡았을 때는 그냥 특이하다 싶었는데 2ml 샘플을 다 쓸 때쯤이 되어가니 이 향을 꼭 소장하고 싶어져서 결국 구매했습니다. 새 걸 사기에는 돈이 모자라서 기다리다가 중고로 좋은 가격에 구했어요. 잠자기 전에 양 손목에 한 번씩 뿌리는데 기분이 좋아져요. 힘들었던 하루의 피로를 싹 씻어내려 주는 향입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끼실지는 잘 모르겠네요. 직관적으로 예쁜 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100ml 용량이라 한참 쓸 것 같아요. 질리지 않고 다 비울 수 있기를요. 

저는 2025년에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3~7월은 서울에 살다가 수능을 한 번 더 쳐보려고 휴학하고 내려와서 지금 본가에서 지내는 중이에요. 흔히 말하는 반수를 했는데 성적이 마음에 안 들어서 아마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만년필과 잉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 딴 곳으로 샜네요. 서울에 살았을 때는 만년필과 잉크를 판매하는 블루블랙 펜샵에 자주 갔습니다. 잉크 샘플을 구경하고, 5ml짜리 소분 몇 개를 사오는 게 작은 즐거움이었어요. 처음으로 산 만년필은 파이롯트 커스텀 74였습니다.

만년필 덕후들에게는 그리 비싼 가격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제게 15만원짜리 만년필은 정말 비싼 물건이었어서 살지 말지 한참 고민했었어요. 쥐는 방식이나 종이에 닿는 각도에 따라 잉크가 잘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해서 처음에 조금 애먹었습니다. 만년필을 오래 사용하면 길들여져서 더 잘 나오게 된다는데 아직 처음 샀을 때와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마니아들이 말하기를 커스텀 74는 야생마 같은 친구여서 길들일수록 유연하고 매끈한 필감을 보여준다는데 언제 이 야생마를 저만의 명마로 길들일 수 있을지 기대해봐야겠습니다. 천리마나 적토마였으면 좋겠네요. 제일 좋아하는 잉크는 고베 잉크의 센가리 워터 블루예요. 이상적인 하늘색을 찾으려고 잉크 컬러차트를 뒤지며 한참 고민하다가 마침내 제 맘에 쏙 드는 푸른색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단종되어 한국에서는 파는 곳이 없길래 배송비를 좀 크게 주고 직구로 구했습니다. 어렵게 구해서 아직도 애정이 많이 가요. 

차도 좋아합니다. 옛날에 처음 차에 관심을 가졌을 때는 네이버 카페나 여러 SNS에서 차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들 유럽 홍차를 마셨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중국차로 사람들의 관심 분야가 옮겨간 것 같더라고요. 라오상하이에서 진행하는 다회에 참여해서 여러 종류의 차를 마셔보고 설명도 들었어요. 차문화대전 행사도 갔는데 그날 몸이 안 좋아서 오래 구경하지 못한 게 조금 아쉽습니다. 다회에서 마셨던 대만 동방미인 차가 제일 맛있었어요. 차는 아직 잘 모르지만 더 알고 싶은 분야입니다. 

또 최근에는 기록에 관심이 생겨서 신년을 맞아 다이어리 2개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는 OAB에서 구매한 만년형 다이어리인데, 2025년 초에 샀다가 얼마 못 채우고 버려뒀어요. 8개월 정도 남아있어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먼슬리 칸에 그날 있었던 사건을 키워드로 짧게 쓰고, 위클리는 취미 기록용으로 써요. 책 발췌나 짧은 감상을 쓰기도 하고, 새로 구매한 향수에 대한 시향기를 쓰기도 합니다. 가끔 스크랩하고 싶은 것들은 프리노트에 덕지덕지 붙여둬요. 두 번째 다이어리는 아날로그키퍼의 데일리 다이어리입니다. 저는 먼슬리를 잘 안 쓰는 편이고 (일정 관리는 핸드폰 캘린더 앱이 더 편하다고 생각함) 위클리에 하루 일기를 쓰는데 이 부분이 좀 더 컸으면 하고 바라던 참이라 아예 매일 기록할 수 있는 부분이 크게 나온 이 제품이 딱이었습니다. 그리고 가로로 글씨를 쓰면 자꾸 삐뚤빼뚤해지는데 이건 칸이 세로로 길게 나 있어서 좋아요. 먼슬리에 아까 언급했던 이런저런 기념일이나 일정을 쓰고, 그날을 표현하는 마스킹 테이프를 작게 잘라서 붙이고 있어요. 일기를 쓸 수 있는 데일리 페이지에 일기를 쓰고, 가끔 감사일기를 같이 쓰기도 합니다. 

요즘 시작한 것 중에 제일 오래 지속한 건 명상입니다. 무려 오늘이 69일차예요. 연속 69일차. 한 번도 안 빠지고 69일 동안 쭉 진행했습니다. 잘 잊어먹는 편이라 이렇게 오래 지속한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에요. '마보' 어플을 월간 결제해서 명상 가이드를 듣고 있어요. 연속 명상 며칠을 했는지 기록도 되고, 상황과 필요에 어울리는 여러 명상 가이드가 있어서 들으며 마음을 집중할 수 있어요. 제가 자주 듣는 건 [아침] 새로운 하루를 여는 6분 명상, [행복] 지금의 행복을 누리고 싶을 때 하는 명상, [틱낫한] 집착 내려놓기 명상 이 세 가지예요. 

독서도 좋아합니다. 어릴 때는 정말 책을 많이 읽었는데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독서량이 줄어들었어요. 그래도 요즘에는 부지런히 읽고 있습니다. 제일 최근에 읽은 건 <종횡무진 서양사 1>입니다. 2도 같이 빌려오려고 했는데 대출 중이어서 못 빌렸어요. 세계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빌렸는데 고대~중세 쪽은 제가 관심이 덜하다 보니 모르는 이름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조금 지루했어요. 2편은 더 빨리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횡무진 서양사 시리즈를 입문용으로 좀 빨리 읽어버리고, 진득하게 읽을 만한 서양사 책을 사서 3번 정도 반복하면 어느 정도 흐름이 잡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중이에요. 또 북한 역사에도 최근 관심이 생겨서 책을 몇 권 빌렸고, 비건이나 제로웨이스트 관련한 책도 자주 읽어요. 곧 다시 서울에 올라가게 되면 비건 실천을 해보려고 합니다. 오래 지속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 관심사에 대해서 중구난방으로 늘어놓았는데, 어쩌면 이게 가장 편지스러운 자기소개가 아닐까 합니다. 각각의 관심사에 대해 더 깊게 말하거나, 아니면 관심분야 말고 다른 제 이야기를 꺼내게 될 날도 오겠죠. 다음 편지는 그 주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형식에 더 가깝게 쓸 예정입니다. 이 편지를 읽어주시는 구독자님들께서도 관심사에 대해 마구 이야기하며 답장해주시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_^ 

 

 

+ 2026. 1. 23. 

시네필 달력은 두껍고 빳빳한 종이에 스케치북처럼 12장이 모여 있는 달력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얇은 재질인 데다가 낱장 달력이라서 처음 배송받고 조금 놀랐어요. 그래도 제 방문에 붙여두었는데 꽤 마음에 듭니다.

적혀 있는 영화 목록들을 보다가 제목을 하나하나 검색해 봤습니다. 1월과 관련 있는 영화는 10개인데 그 중 넷플릭스로 볼 수 있는 건 하나였어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1월 23일은 조애나 크레이머가 아들 빌의 양육권을 얻은 날이라고 해요. 오늘이죠. 호기심이 들어서 영화를 틀었어요. 2026 버킷리스트 중에 영화 50편 보기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얼마 못 봤거든요. 1년에 영화 50편을 보려면 한 달에 4편 정도 봐야 하는데 새학기가 시작되면 바빠질 테니까 시간이 있을 때 많이 봐둬야 해요.

 

영화는 일하느라 바빠서 가정에 소홀한 남편 테드에게 아내 조애나가 결별을 고하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조애나가 떠나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와중에도 업무 전화를 하며 아내의 이야기는 뒷전인 테드, 조애나가 싼 짐을 뺏는 테드를 보며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대략 짐작이 되었어요. 아무래도 대화와 조율과 이해와 포용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관계는 아니었겠죠. 테드는 조애나가 곧 돌아올 거라고 믿지만 조애나는 돌아오지 않아요.

조애나가 떠난 날, 테드가 처음으로 아들 '빌리'의 식사를 차려주는 모습을 보고 저는 테드가 변하지 않을 거라고 느꼈어요. 프렌치 토스트를 만드는데 계란을 머그컵에 풀어서 빵을 계란물에 제대로 담그지도 못하고, 커피를 타느라 토스트에 신경을 쓰지 못해서 토스트가 싹 타 버려요. 빌리를 학교에 데려다줄 때도 다른 엄마들은 아이와 손을 잡고 학교 앞까지 가거나 같이 들어가는데 테드는 대뜸 다른 사람에게 빌리를 맡긴 후 택시를 잡아 회사로 떠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테드는 변했어요. 빌리를 데리러 가기 위해 회사에서 일찍 나오고, 잠들기 전에 빌리를 위해 책을 읽어줬습니다. 빌리가 아빠에게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떠난 것'이냐고 물었을 때는 눈물이 났어요. 저는 테드가 빌리에게 아내 조애나에 대한 악담을 쏟아놓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의 대답은 제 예상과 완전히 달랐어요. 자신이 조애나에게 과한 것을 요구했고, 잘못했고, 그래서 엄마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하죠. 상대를 탓하는 대신 자기 잘못을 인정한 겁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제가 너무 테드를 나쁜 캐릭터로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조애나가 돌아왔어요. 그리고 아들 빌리의 양육권을 자신에게 달라고 말하죠. 두 사람은 양육권을 얻기 위해 소송전을 시작했습니다. 테드의 변호사는 조애나를 몰아붙이며 이렇게 말해요. 당신 인생에서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맺었던 사람은 누구인지 묻죠. 조애나가 남편이라고 답하자 그러면 남편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 아니냐고 몰아붙여요. 이혼하게 되었으니 당신은 '가장 중요한 관계에서 실패한 것'이라며 소리를 지릅니다. 조애나는 '결혼이 실패한 것'이라고 대답하지만 변호사는 결혼이 아니라 '당신이 실패한 것'이라고 말해요. 조애나가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자 테드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당신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말해 주려는 것 같았어요. 

 

결말이나, 이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주된 메시지보다 저는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가장 오래된 관계가 가장 중요한 관계라는 보장도 없으며, 갈라서게 된다고 해도 관계에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요. 저에게는 5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소꿉친구가 있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이사를 간 뒤로 보지 않았으니 그 아이와 관계를 유지했던 시간은 10년 정도인 셈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와 약속을 잡을 때는 집전화기로 전화를 걸었어요. 친구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안녕하세요, 00이 친구 00이에요. 혹시 00이랑 지금 전화할 수 있을까요?'를 속사포처럼 뱉기도 했죠. 

그 애와 놀이터에서 한참 놀다가, 하루는 우리 집에서 또 하루는 그 애 집에서 놀던 기억이 나요. 엄마가 해 주는 밥보다 친구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 게 더 좋았어요. 저는 외동이었고 친구는 동생이 두 명이나 있었어요. 막내인 남동생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고 둘째인 여동생과 친구, 그리고 저. 이렇게 세 명이 항상 같이 놀곤 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죠. 약속을 잡지 않아도 시간이 있으면 서로의 집을 찾아가서 초인종을 누르는 게 당연했어요. 친구와 저는 비밀을 공유하기도 하고 싸웠다가 화해하기도 하고 같은 취미를 즐기기도 했죠. 

이제는 그 친구와 만나지 않아요.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이사를 오고 나니 거리가 멀어져서 자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언제나 놀 수 있었던 어린 시절과 달리 해야 할 일이 생겼고 공부를 해야 했어요. 그 무렵엔 스마트폰도 있었지만 별로 연락을 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엄마들끼리도 친해서 가끔 소식을 듣긴 했지만 그게 다였어요. 

저는 제가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실패했다고 생각치 않습니다. 누군가와 멀어지거나, 싸우거나, 관계를 끝내거나, 결별하는 건 실패가 아니에요. 다만 상태의 변화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했던 사람이 미워졌다고 해서 그 사람과 잘 지냈던 시간이 땅에 버린 아까운 시간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 시절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제 삶에 영향을 끼치고 흔적을 남기죠. 우리는 먼 훗날 그 흔적을 바라보며 내가 좀 더 잘해봤어야 한다고 후회하기도 하고, 상대가 내게 저지른 짓에 분노하기도 해요. 사람과 사람은 친했다가도 멀어지고, 싸우다가도 화해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인간관계의 당연한 작용을 실패라고 부른다면, 너무 쉽게 우리 자신을 악평하며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물이 흘러가듯 관계도 상황도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떠난 것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는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꼭 끌어안으며 살아가기로 해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누군가가 제 삶에 벌여놓고 간 만행에 분노하기보다는 제가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에 죄책감을 느낄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후회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이게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도록 매번 진심으로 부딪히고 싶어요. 

많은 관계를 맺었고 또 많은 관계를 끊어냈지만 그 모든 것이 실패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다시 만나 사과하고 싶은 사람도 있네요. 가끔 미워져버린 사람들과 잘 지내던 때를 떠올립니다. 지금 그들이 미운 감정도 진짜고, 오롯이 제가 느끼는 감정이고,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또 그들과 함께 즐거웠던 감정 역시 그러합니다. 옳고 그름은 없어요. 이미 일어난 일과 지금 이 순간만이 있지요.

지금은 연락하지 않게 된 펜팔들, 이사한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고향 친구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온통 미안한 마음뿐인 첫 룸메이트에게 이 글이 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답장을 쓰실 용의가 있으시다면 i.am.yeojin0918@gmail.com 으로 부탁드립니다. 꼼꼼히 읽겠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다음 편지에 답장을 녹여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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