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으면 스스로 세 번의 기회를 줍니다. 새로운 달력을 펼치는 일월 일일. 떡국과 함께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는 설. 계절의 시작과 함께 시작하기 적당하다 느끼는 삼월. 어느덧 삼월이 한 주 정도 흘러가고 있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는 세 번의 기회를 마다하고 조금 애매하지만 제 마음이 바로서기 시작한 이월부터 덥석 기회를 잡았습니다. 더는 이월할 수 없는 마음을 따뜻하고 든든하게 먹고 지내고 있어요.
조금씩 식습관을 바로잡으며 운동에 재미를 붙이는 중이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 곁에서 현재를 온전히 느끼며 지내는 중입니다. 첫 시집으로 묶을 초고도 보냈고, 언젠가 다음 시집에 묶일 또 다른 첫 시도 얼마 전에 썼습니다. 요즘은 모든 게 신기하고, 한동안은 이전과 다른 결로 불안했어요. 좋은 걸 받아들일 힘이 부족했으니까요. 근래 무엇보다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은 평일 점심에 회사 건물 옥상에 올라가 하늘도 보고 하루하루 날씨와 계절을 감각할 힘이 생겼다는 거예요.
이렇게 되기까지 여러 고마움도 많았지만, 작은 고마움도 고깝게 여기는 버거운 저 자신이 있었어요. 뉴스레터를 자의적으로 쉬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겉으로 확연하게 보이는 변화는 없지만, 환하고 유해진 표정과 인상이 달라졌다고 말해주는 매일입니다.
지난 이월에 휴대폰 메모장에 남긴 글 중 하나는 시작이 이렇습니다.
"들였습니다"
들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특히나 삶에서 무언가를, 또 누군가를 들인다는 것은요. 첫 시집은 마음의 공간감에 천착하며 썼어요. 왜 이렇게 내 마음은 비좁을까 비관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기 이전에 미리 걱정하고 낙담하는 생활을 했어요. 실제 거주하는 공간은 짐으로 번잡해졌고, 제가 견디는 저의 몸은 많이 늘어지고 무거워졌어요. 작년 가을부터 저를 위축시키는 모든 일과 관계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혼자 해도 좋은 일들을 사소한 일들을 조금씩 해보았어요. 그 과정 중에 제 삶에 무언가를, 누군가를 들였습니다.
천천히 가자고,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는 존재 하나만 있어도 세상은 이렇게 버틴 만큼 피어나는 광경이구나 깨달아요. 그 존재가 꼭 타자일 필요는 없겠죠. 나라는 한계와 가능성의 줄다리기 속에서 사람은 대개 무수한 투영을 하니까요.
제가 부쩍 사랑하게 된 존재는 제가 머무는 공간에 얼룩진 거울부터 닦아야 한다고 짚어준 사람이에요. 모르고 있었던 문제는 아니지만, 누군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기분 나쁘지 않은 걸 보니까. 아 나 이 사람 좋아하네 싶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저를 좋아할 희망을 거기서 본 것일 수도 있고요.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을 때, 타자와의 관계도 원만하다는 그 당연한 사실도 경험이 있어야 배우는 미숙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제야 온 모든 순간에 고맙고, 모르고 스친 모든 순간에 감사합니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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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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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424)
일기가성 님, 오랜만에 레터를 보내니 이렇게 감사한 댓글도 더욱 반갑게 받게 되네요. 창작과비평 겨울호도 읽어주셨군요. 시집은 가을에 나올 듯한데 계절마다 몇 편씩 지면에 발표할 수 있도록 열심히 써 나아가겠습니다. 이번 봄 너르고 따뜻하게 들이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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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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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424)
ssari님 댓글을 읽고 레터 띄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한 번 미루다 계속 밀린 마음을 어떻게 청산하지 했는데 역시 그 고민할 시간에 움직여야 하나봐요 (4월의 연재로 바지런히 돌아오겠습니다) 매번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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