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위한 노트

2장 원근감을 허무는 시

2023.02.05 | 조회 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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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새로운 별이 발견됐다./ 그렇다고 하늘이 더 밝아졌다거나/ 부족했던 뭔가가 채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거대하지만 동시에 까마득히 멀리 있는 별./ 너무 멀리 있어서, 작게만 보이는 별,/ 때로는 저보다 훨씬 작은 다른 별들보다/ 더 조그맣게 보이는 별./ 만일 우리에게 놀라움을 음미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게 되련만.// 별의 나이, 별의 무리, 별의 위치,/ 이 모든 사실은 그저 박사학위 논문 한 편 쓰기에/ 충분할 정도다./ 하늘과 가깝게 지내는 동료들이 모두 모여/ 포도주 한잔 들이켜기에 충분할 정도다./ 천문학자와 그의 아내, 친척들과 친구들은/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세속적인 잡담을 나누며/ 지구에서 생산된 땅콩을 씹어 먹고 있다.// 별이 제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까이 있는/ 우리의 여인들을 위해/ 축배를 들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별은 언제나 좌충우돌, 계획성도 일관성도 없다./ 날씨와 유행, 경기의 결과,/ 정책의 변화나 가계의 소득, 가치의 위기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선동적인 과업이나 중공업 발전에도 보탬이 되지 못하고,/ 회담용 탁자의 번쩍이는 광택 속에 투영되는 일도 없다./ 별은 우리가 열심히 헤아리는 인생의 무수한 날들보다 더 많고 아득하다.// 얼마나 많은 별들 아래서 사람들이 태어나는지,/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별들 아래서 사람들이 죽어가는지,/ 대체 이런 질문들이 다 무슨 소용이람.// 새로운 별이 출현했다./ ―그 별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좀 보여줘./ ―저 멀리 회색빛 구름 보이지?/ 뭉게구름의 들쭉날쭉한 가장자리와 저기, 왼쪽에 있는 아카시아 가지,/ 그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잖아./ ―아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과잉」

구독자 님, 혹시 이 시를 다 읽고 별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드셨나요. 그럴 땐 그냥 이 시가 말하는 별이 무엇인지 맞히려고 하지 말고 자유롭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지난 레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 하나에 여러 생각을 포개는 경험이 중요하니까요. 

이 시를 읽은 저 역시 별의별 생각을 다해봤습니다. 그중 제일 도드라진 생각을 하나 물고 이 시를 여러 번 읽었는데요. 나란 인간이 느끼는 수두룩한 비참함이 결국 원근감을 극복하지 못한 아둔한 감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모든 게 내 기준이라서 쓸데없이 슬프고 화나는 일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기쁨은 있지요. 그중에서도 오래가는 기쁨들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이 시에서 언급한 날씨와 유행, 경기의 결과, 정책의 변화, 가계의 소득, 가치의 위기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부족했던 뭔가가 채워졌다는 의미는 아니"지만요. 

구독자 님도 가끔 살면서 슬프도록 기쁘다는 감정을 느끼시나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와 기쁨이가 함께 만든 기억의 구슬처럼. 하루하루 살수록 마냥 기쁘거나 마냥 슬픈 일로만 인생을 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인간으로서 타고난 한계이자 능력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조금씩 천천히 시를 여러 편 읽어 나가다 보면 제 안에 있는 감정의 포즈를 읽을 수 있게 되는데요. 다음에는 여러 번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원근감을 허물고 슬프도록 기뻐지는 그런 시 소개해 드릴게요. 우리에게는 "놀라움을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추신,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의 키팅 선생의 말을 이어 적습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등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겠지.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다음 레터에서도 삶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도 레터 끝에 노래 하나 달아 두어요. 제가 시를 쓰고 잠들기 전에 한 번씩 듣는 사라 강의 노래인데요.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노래 가사처럼 그때 알았으면 좋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알게 된 것을 시를 읽으며 새겨보심 좋을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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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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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이아닌연두

    1
    almost 2 years 전

    매우매우 감동입니다🫶🏼….따뜻해요

    ㄴ 답글 (1)
  • 쉼보르스카

    1
    over 1 year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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